그무렵 일을 주로 만들어서 하던 내게도, 의원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민원들이 가을경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등 신설 민원이 많았다. 인동동 동쪽 끝, 칠곡군 가산면과의 접경 지대에 있던 농촌 마을 신동에도 있었다. 신동은 크게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지고, 북쪽 마을은 솔숲 언덕을 기점으로 동서로 나뉘어진다. 신동 경로당은 솔숲 언덕 서쪽에 있었는데 해가 기울면 솔숲 동쪽에 사는 할머니들이 어두운 숲길을 걸어가야 했다. 나무 옆에 불을 밝히는 것이 다소 반환경적이긴 했지만 어두운 길을 위험하게 걸어가시는 게 마음에 걸렸다.

 

솔숲은 사유지였고 외지에 사는 땅주인의 허락을 받느라 시일이 좀 지체되었지만 결국 설치를 했다. 전대 의원들에게 건의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며 조금 의구심을 갖고 계셨던 어르신들 얼굴이 밝아졌다. 집행부에서도 이런 길을 밝혀달라는 민원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민 3, 4백명이 거주하는 신동은 공단지역인 우리 동네에서 숨통과 같은 농촌이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 신동을 가끔 들르고는 했다. 경로당 부근에 말고 하나 더 있는 솔숲에서 바람을 쐬었다. 그러나 어르신들에게 마을은 하나의 짐이었다.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어르신들이 드물었다. 다들 동네가 택지로 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와 보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답답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신동은 당장에 엄청난 회오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20107월 임기가 개시되자마자 신동 주민들과 일부 지주들이 의회를 찾아왔다. 의장과 지역구 세 명의 의원이 그들을 맞았다. 한국전력은 신동에 고압 송전탑을 꽂을 작정이었다. 전압은 154KV가 아니라 345KV. 이 사안이 내게 크나큰 질곡이 될 줄이야. 그때부터 나는 틈틈이 고압 송전선로와 철탑에 얽힌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소위 전자파로 인한 건강 침해였다. 또 고압 송전철탑이 있는 이상 주민들은 택지 개발의 꿈조차 이룰 수 없었다. 어르신들의 개발지상주의가 서글프나, 이점은 주민들이 분열하지 않고 반대운동을 펼 수 있는 요건이기도 했다.

 

구평동 부영 아파트단지에서 들어온 민원도 기억난다. 아마도 7단지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고교 선배로 조금 알고 지내는 분께 연락이 왔다. 지하주차장에서 무슨 공사를 시행하고 나서 한동안이 지났는데도 공사폐기물이 쌓여 있다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해당 업체를 상대로 즉각 철거를 요구하도록 집행부에게 연락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데, 며칠 지나 깨끗이 치워진 현장을 보니 뿌듯함이 솟구쳤다. ‘아 이런 일도 재미나구나.’ 연신 ‘before/after’ 사진을 감상했다.

 

위와 같은 일들은 사실 의원의 본연 임무는 아니었다. 이런 사업들은 주민이 구미시에 직접 건의하면 공무원이 현장을 둘러보고 곧바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다. 요즈음엔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의원을 통해 일을 해결하지 않고 곧바로 시 홈페이지에 요구 사항을 올리는 주민들도 많아졌다. 나는 찾아온 주민이 직접 시에다 얘기해볼까요?”라고 하면 말리지 않았다. 직접 해결의 경험도 소중하다. 대신에 담당부서의 반응을 지켜보며 민원 처리 수준을 파악했고,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 내가 직접 나서곤 했다.

여전히 관을 다룰 줄 모르는 주민도 많았고, 주민 건의를 다 소화하기에 집행부가 역부족인 측면도 있었다. 이 지점에서 의원들이 나서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의원을 아는 주민과 아닌 주민 사이에도 불평등함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의원을 통해 들어온 민원은 좀 더 큰 힘을 얻으니 해결이 빠른 민원이 있고 더딘 민원이 있었다.

 

불쾌하게 남은 민원도 있었다. 어느 상인이 인동 로데오거리 일대 길이 울퉁불퉁하다며 재포장을 요구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기분이 언짢았다. 그는 다른 일도 좋지만 시의원은 지역구 일을 해야죠?”하면서 내가 하던 다른 사업들을 무시하는 늬앙스를 물씬 풍겼다. 시의원은 시의 일을 하는 정치인이고, 지역구 일도 한두가지가 아닌데 말이다.

 

인터넷 카페로 들어온 민원이라 만나뵙기 위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응답이 없었다. 현장을 나가보니 그가 묘사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재포장 대상에는 능히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인동동사무소 계장에게 문의하니 도로 보상을 해야 하는 땅이라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무턱대고 보챌 수는 없었지만 우선적으로 꼭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집행부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재포장을 했다. 어쨌든 성사되었으니 통보가 없었던 것에 불만을 품지는 않았으나 나는 봉변을 당했다. 처음 민원을 제기했던 것으로 보이는 주민이 내 블로그 방명록에서 항의했다. 시의원 세 명 모두 무관심에 빠진 상황에서 일대 상인들끼리 돌려가며 민원 전화를 넣은 끝에 재포장이 이뤄졌다면서. 민원 제기자이기도 하고 전화를 하는 수고를 하셨으니 본인들 공으로 생각하실 일이다. 그런데 내가 아예 손을 놓은 것처럼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났다. 재포장 구간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길고 큰 편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이 정도면 집행부가 의원에게 보고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민원을 넣은 사람들도 알아야 할 게 있다. 도로 재포장은 하겠다고 결정하는대로 곧바로 시행되는 게 아니다. 예산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리고, 명목을 잡아놓지 않고 책정해둔 풀(full)사업비에서 꺼내어 쓰더라도 업체가 정해지고 나와서 공사를 하기까지 시일이 걸리는 법이다. 물론 물정을 모를 수도 있지만 내게 그것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져야 했다. 그러나 집행부는 사업진행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민원 제기자도 달랑 댓글만 달고 연락을 끊었다. 도로 재포장했다고 보도자료낼 일도 아니니 언론으로 알릴 수도 없다.

 

몇몇 주민들이 즉각적인 예산 집행을 바라면서 옆구리를 찌르는 경우도 있었다. “시의원이 쓸 수 있는 재량사업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이 그렇다. 모든 예산을 일일이 명목을 잡아두고 책정할 수 없어서 각 읍면동에는 주민숙원사업비가 주어진다. 대개 1년에 7천만원씩이고, 인동동은 인구가 5만 명이 넘는다는 이유로 두 배인 14천만원을 받았다. 긴급한 도로 보수 작업이나 재포장 등으로 많이 쓰인다. 사실 쓰임새의 한도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동네는 나루터 축제용 동영상 제작에 쓰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의원 재량사업비라는 것은 본디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의원은 집행기관이 아니다. 소위 재량사업비는 동장의 결재를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게 되고 지방의원이 쌈짓돈처럼 용처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의원의 재량사업비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관청이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있거나 지방의원과 자주 만나는 주민들은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민원을 관철시키고는 했다.

 

처음 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내 주변에서는 재량사업비 문제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나쁜 관행이었기 때문에 혁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복지 사업이라든가 좋은 방향에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시의원 재량사업비가 아닌 주민숙원사업비였기 때문에 혁파하기가 대단히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의원들 대부분이 동의해주지 않을 게 뻔했다. 심지어 지역구가 따로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도 재량사업비의 용처를 정해주었다. 재량사업비가 동원되는 공사는 규모가 크지 않아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 의원은 공사업체까지 지정을 해주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은 자신과 별로 연고가 없는 외곽지 농촌 지역 공사로 재량사업비를 돌리기도 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주민들에게 의견을 수렴해서 동장 권한 하에 결정할 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 나에게는 재량사업비를 들일 만한 민원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공사의 경우도 주민숙원사업비보다는 따로 예산을 세워야 하는 것들이었다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