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을 맞으며 나는 지난 반 년의 의정활동을 돌아보았다. 학교무상급식과 같은 사안을 추진하며, 또 박정희 기념사업에 맞서면서 앞서 나간다는둥 너무 진보적이다라는둥의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진보성에서든 담대함에서든 너무 미진했다는 자평을 내렸다.

 

구미시는 경북도의 예산 삭감에 흔들리면서 초등학교 1~3학년 무상급식 실시를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예산이 비교적 작은 편인 영유아 무상예방접종은 계획대로 20111월부터 민간병의원에서도 시행했다. 대상은 구미시 관내 거주(주민등록상)0~12세까지의 아동이었고, 지원내용은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해당하는 내역이었다.

 

17일 구미고등학교 교지 <높이뛰기>의 기자들이 지도 교사와 함께 방문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직업정치인을 희망하는 학생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정치에 관심이 깊었다. 나중에 학교로 불러주면 정치에 관한 특강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막바지에 담당 교사가 짧은 연속 질문을 할 때 "정치란?"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부대낌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어울림이다."

 

학생 중 누군가가 "시의원이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다. "국회의원은 지역에 너무 자주 나타나면 안됩니다. 여의도에 주로 있어야 할 사람이 그러면 일을 안한다는 거죠. 국회의원이 가끔 동네를 돌아봐야 그건 과외활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의원이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동네를 돌면 그게 일입니다. 그 일은 즐겁고 일상적인 일이지요. 다른 정치인이 누릴 수 없는 정치인의 특권입니다."

 

정례회도 끝나고 해서 1월에는 관내 경로당을 많이 돌아다녔다. ‘자전거 타고 선거운동했던 의원을 예상 외로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민원을 접수받다가 한 할머니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나는 바라는 게 한 개밖에 없는데 들어줄 수 있능교? 못 들어줄 것 같은데.” “어떤 건데요?” “얼마 뒤에 우리가 놀러가는데, 찬조 좀 해줄 수 있는가?” “못 합니다. 공직자 기부행위가 금지되어 있어요.” 그러더니 할머니들이 와락 웃는다. “거 봐라, 못 들어준다 안 카드나. 하하하.”

 

노인잔치가 열린 인의동의 한 경로당을 방문했다가 덜덜 떤 경험도 있. 행사가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가방을 놔둔 방의 문이 잠긴 것이다. 할아버지들이 안에서 고스톱을 치고 계셨다. 경로당 총무격인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제 가방이 방 안에 있는데요. 문이 잠겨서......” 그러자 할머니께서 득달 같이 방앞으로 달려가시더니 문을 차며 소리를 지르시는 게 아닌가. “이 영감탱이들, 또 화투 치제? 문은 와 걸어잠그고 지랄이고. 문 열어라, !” 이 할머니는 방 안 할아버지들에 비해 연세가 낮아 보여서 조금 당황했다. 말리려고 했으나 아니 그러실 것까지는......”하고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니, 아뿔싸, 건너편에 입구와 통하는 문이 또 하나 있었다. 열린 문이었다. 그쪽으로 들어가면 될 것을.

 

구평동에 있는 경로당에서는 할머니들끼리 언성을 높이는 가운데서 덜덜 떨기도 했다. 어느 할머니께서 시의원이 왔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저짜 아래 점방집 아들내미도 시의원하겠다고 하면서 집에도 늦게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말씀하신 게 화근이었다. 옆에 앉은 할머니들이 차례로 흥분하시기 시작했다. “뭐라꼬? 그 집 아는 초등학생이라!” “초등학생이 무슨! 이 할매가 이야기를 지어내나?” “또 벌로 지낀다, 벌로!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단 한 분만이 가만히 계셨는데, 알고 보니 귀가 안 들리시는 분이었다. 처음 말씀을 꺼낸 분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계셨다. 말리려고 했으나 또 나는 굳어버렸다. 어르신들끼리의 싸움은 무서웠다.

 

구평2동의 어르신들은 구평초등학교 앞 교통사고를 우려하고 계셨다. 그러잖아도 나 역시 지나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한 바 있었다. 칠곡군 가산면에서 구미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에서 차들은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일단 보행 안전이라도 유지해야겠다 싶어 인도 설치를 추진했다. 1차적으로 영무예다음1차아파트에서 구평초등학교까지 인도가 놓였다.

 

2011년이 밝으며 나는 최초로 대표발의할 조례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원구성 당시 나는 의회운영위원에 여성 의원이 하나도 없다며 구미시의회 위원회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나는 의회운영과 예산 심사, 의회내 사고시 열리는 윤리특별위원회 등에서 여성적 관점과 양성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의회운영위원회와 각종 특별위원회에 여성의원의 4할 이상이 참여하도록 하는 개정조례안을 준비했다.

 

지방의회에서 조례안 발의는 전체 의원의 1/5 이상이거나 10명 이상이 서명하면 가능했다. 구미시의회는 23명이므로 5명 이상이 서명하면 된다. 나는 이 개정조례안을 발의하면서 발의선을 훌쩍 넘기는, 전체 의원의 2/3에 달하는 16명의 서명을 받았다. 나는 연초 여성 의원 네 명에게 <지방자치 가이드북>이라는 책을 선물하며 조례안 추진 소식을 알렸는데, 네 명 모두 배려해줘서 고맙다며 가장 먼저 공통발의자로서 서명했다.

 

그러나 210일 막상 의회운영위원회에 개정조례안이 상정되자 반대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회운영위원을 여성에 할당하다 보면, 여성 의원이 현재보다 늘어날 경우 상임위 부위원장을 여성으로 위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뭐가 문제인지 나는 알 수 없었으나, 산업건설위원회에서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던 김태근 의원(당시 무소속/인동, 진미)과 강승수 의원(당시 무소속/고아, 선산, 무을, 옥성)여성이 건설 분야에 전문성이 있기가 어려운데 산업건설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길 수 있느냐는 논리를 폈다.

 

전문가 운운은 편협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시의회 의원 누구도 시험을 쳐서 당선된 사람은 없다. 상임위 위원장, 부위원장도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될 뿐 전문성 검증 따위의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그리고 전문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김태근 의원이나 강승수 의원처럼 건설업체 대표 출신이어야 건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인가. 의회운영위원회에 만일 여성 의원이 있었다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결국 조례개정안은 의결이 보류되었다.

 

나는 반대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으나 조례개정안은 다시 상임위에 상정되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규정을 만들어서까지 여성 할당제를 관철시켜야 하는지 의문이 든 탓도 있었다. 다만 이 조례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여성 의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도 4명의 여성 의원 중 2명 이상은 자연히 들어가는 관례가 생겨났다.

 

한편 나는 지역구에서 이른바 진평동 본동어린이집과 인의예림아파트 사이의 언덕길을 복원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 언덕길은 오래 전 산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절반만 남게 되었고, 이 길을 활용할 수 없게 되자 주민들은 인동도서관을 빙 돌아서 먼 길을 다녀야 했다. 나머지 절반은 옹벽 뒤편으로 돌아서 어설프게 생긴 돌계단을 밟아 가까스로 올라야 하는 길로 바뀌었으므로, 여전히 이 길을 이용하는 주민들도 불편을 겪고 있었다. 또한 인의주공아파트 뒷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은 이 길을 거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직접 현장에서 점검하니 은근히 이 길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 출근길에 자전거를 매고 오르막을 오르는 주민도 있었다. 이 길은 옛날에는 경운기도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이었다.

 

담당 부서인 도시과로 가서 과장과 용지개발계장을 만나 옹벽 일부를 허물고 언덕 정상부를 조금 깎아서 언덕길을 다시 만드는 방안을 논의했다. 며칠 뒤 김태근 의원은 소식을 듣고 이것이 되겠냐?”면서도 김 의원이 알아서 해보시라고 했다. 이쪽 토지의 지주들과는 쉽게 협의가 되었다. 다름아닌 그들이 민원을 제공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2011년 제1차 추가경정예산에서 사업비가 마련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언덕을 많이 깎을 수가 없어 복원한 길이 옛날 그 길과 달리 가파르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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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에서는 정책 대안을 제시해 몇몇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기계약직 공무원 복지포인트였다. 과천에서 만난 장시원 의원이 건네준 아이디어였다. 무기계약직은 정년은 보장되어 있지만 여러 노동조건에서 정규직 공무원에 뒤처지는 중규직이었다. 구미시는 그때만 해도 무기계약직에는 복지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공무원이 아닌 지방의원도 받는 복지포인트를 명백한 구미시의 식구인 그들도 받아야 했다. 공공부문 노동정책 제1호로 이 사안을 찍어두고 감사에서 총무과장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건강검진 등 무기계약직 대상 혜택을 늘리고 있던 총무과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결국 실현하게 된다.

 

구미시설관리공단 채용 특혜 문제를 놓친 안타까운 기억도 있다. 나는 공무원 자녀는 물론 모 정치인들의 조카들이 특별채용으로 시설공단에 들어갔다는 제보를 입수한 바 있었다. 그냥 최근 취업자의 명단을 달라고 하면 될 일인데, 조사 의도를 들킬까봐 우려되어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구미 경실련에 행감 기간 막바지에 이 사건을 터트린 것이다. 감사 마지막날 내가 시설관리공단을 상대로 공무원 자녀가 있냐고 질의하자 관계자는 순순히 있다고 대답해버렸다. 나는 그로부터 얼마 전 발생한 외교부 채용 특혜 논란을 거론하며 공채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명단을 요청해 건네받았는데 조사 결과 모 정치인의 조카가 있는지는 끝내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설관리공단은 신입사원 모집을 공채로 바꾸게 된다.

 

행감 기간 막바지에는 인동 지역에서 수돗물 파동이 터진다. 특히 진평동, 구평동 일대에서 누런 수돗물이 공급된 것이다. 나도 제보를 받고 인의동 사무실에서 수도를 틀어보니 아니나다를까 물이 누랬다. 인의동 지역 중에서는 번지수가 6백번대인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행정사무감사는 상임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나는 기획행정위가 아닌 산업건설위 소관의 상하수도사업소 심사에 참여하지 못해 이를 집요하게 따져물을 기회가 없었다. 처음 주민들은 4대강공사를 의심했다. 공사 도중 발생한 흙탕물이 가정으로 유입되었다는 추측이었다. 그런데 그 수돗물은 누렇기는 했지만 흙탕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상하수도사업소 해명처럼 녹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저수조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녹물이 생겼고 또 동네에서 공사를 하던 도중 중장비가 관을 때리면서 관에 붙은 물질이 물에 섞여 들어간 것이다. 얼마 지나 물이 회복되었지만 이 녹물은 며칠 뒤 다시 등장해 구평동, 진평동 주민들이 몹시 분노했다. 어떤 아줌마들은 사정도 모르고 아이들과 남편들에게 왜 오줌 누고 물을 내리지 않느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색깔은 안 좋지만 이게 유해한 물질은 아니다라며 직접 물을 마셔보이기까지 했으나 주민들은 오히려 그런 태도에 더욱 분개했다. 나도 상하수도사업소에 유해 성분이 아니더라도 육안으로 봐도 혐오감이 드는 것 자체로 이 물은 유해하다고 반발했다.

 

행정사무감사가 끝나고 2011년도 본예산 심의에 돌입했다. 당시 의회는 집행부를 상대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구미시 선산출장소에 시장 집무실이 별도로 크게 마련되어 있고 별로 사용도 않은 채 먼지가 쌓여 있었던 것이 대립에 더욱 불을 붙였다. 선산출장소 시장실 문제는 해결해야 마땅했지만 내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나중에 돌아보면 의원들 몇몇이 집행부로부터 언짢은 일을 겪고 껀수를 잡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예산 심사에서는 일단 각 부서의 업무추진비와 각종 행사 비용이 문제가 되었다. 의회 분위기가 양쪽에서 다 대체로 일괄 삭감을 선택하면서 의회 안팎이 더욱 뜨거워졌다. 업무추진비야 일괄 삭감이 정당한데, 행사들이 왜 분별 없이 일거에 일괄적으로, 같은 비율로 삭감을 당해야 하는지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포함되지 못했다. 어떤 의원은 김수민 의원이 고의로 배제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나는 흥분하지 않았다. 4년 임기 동안 2회 정도 본예산 예결특위에 들어간다면 공정하다고 볼 수 있었다. 2010년이 아니면 2011년에는 반드시 들어가면 되었다.

 

2010년 연말의 2011년도 본예산안 심사에서, 의원 사이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낙동강변 수상비행장 설계용역비와 한국노총 지원 예산이었다. 내가 예결특위에 없었으므로 김성현 의원이 싸웠다. 수상비행장 건설은 온 국토를 유린해놓은 4대강공사의 후속 작업이었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효용성이 없었으며 난개발로 강을 추가로 훼손할 사업이었다. 한국노총 지원 예산은 크게 보면 노동조합의 자주성 훼손이었고, 해외벤치마킹을 비롯한 연수 사업들은 외유성 예산이자 특혜성 사업이었다.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김성현 의원은 자정을 넘어서까지 결사항전했다. 표결을 실시하지 않고 합의를 중시하는 의회 관행이 오히려 마지막 보루가 되었고, 한국노총 지원 예산 중 해외 벤치마킹 사업과 수상비행장 설계용역비는 전액 삭감되었다.

 

내게도 예산 심의는 순조롭지 않았다. 초창기에 공약을 달성하게 된 영유아 무상예방접종과 장난감도서관에 태클이 걸렸다. 연말 국회의 예산 전쟁에서 한나라당은 예방접종예산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구미시 영유아 무상예방접종의 30퍼센트 정도는 국비 사업이었다. 황급히 보건소에 알아보니 시 예산을 더 들여서라도 2011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안심했건만 시 본예산안에는 필요 비용의 절반쯤만 올라왔다. 사업 부서인 보건소의 바람과는 달리 기획예산담당관이 예산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잘라버린 것이다. 나머지는 2011년도 추경예산에서 덧붙이겠다는 심산이었다. 나는 상임위 예산 심사에서 중요한 사업인데 왜 예산 전액을 책정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아마 보건소장은 내심 내 비판을 반겼을 것이다.

 

장난감도서관 관련 예산은 아예 한 푼도 예산안에 올라오지 않았다. 원래 이 도서관은 경북도와 구미시가 공동으로 기획했는데, 경북도가 2011년도 예산 지원 계획을 세우지 않자 구미시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것이었다. 경북도는 뒤늦게 지원 계획을 마련해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구미시는 늦장이었다. 울산 북구청장이 벤치마킹하러 찾아올 만큼 구미시 보육정책의 자랑거리였던 장난감도서관이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을 상대로, 장난감도서관으로 장난을 치겠다는 것인가? 수탁기관인 구미YMCA 쪽도 난리가 났다. 결국 지원 계획을 세워 예산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편 연말 정례회에서 나는 조례개정안의 수정을 주도해 주목받았다. 베트남전 참전유공자들은 지자체로부터 명예수당을 받고 있었는데 만65세 이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구미시가 수당을 인상하는 조례를 올리자 나는 연령 제한을 폐지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베트남전은 미국의 침략과 베트남인들의 민족해방운동이 충돌한 전쟁이었고 과거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한국이 여기에 파병을 한 것은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였다. 그러나 참전유공자들도 피해자인 측면이 있고 국가의 지원과 보상이 필요했다. 이런 일에 연령을 가릴 일이 아니었다. 나의 수정안은 상임위에서 아무 반대 없이 수용되었다. 소식을 들은 참전유공자들이 기뻐했다. 나는 이를 보편적 복지사례로 적극적으로 규정하며 학교무상급식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미시는 초등학교 1~3학년을 상대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시행하겠다고 확정 짓고 예산안에 이를 반영했다. 몇몇 의원들이 반대에 가담해 있었지만 예산 심사에서는 아무 탈 없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예산 심의 후 올라온 무상급식 조례안을 두고 김정곤 의원이 또다시 반대 의사를 밝히자 의결이 보류되고 말았다. 예산은 통과되고 조례안은 보류라니, 앞뒤가 안 맞았다. 일단은 예산이 잡혀 있었으니 안도할 뿐이었다. 그러나 비보가 전해졌다. 경북도의회에서 구미시 무상급식 지원금을 포함한 무상급식 예산안을 전액 삭감해 버린 것이다. 이로써 구미시 학교무상급식은 무산되었다.

Posted by 김수민

해마다 가을은 구미시 산하 각종 위원회가 활발히 열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예산안을 확정지어야 했기 때문에 각 부문별로 위원회들이 일제히 열렸다. 의원들도 여러 위원회의 위원을 맡고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해 중앙정부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그들도 현실은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위원회는 대체로 공무원,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 그리고 지방의원으로 구성된다. 원론적으로는 시민 위원의 참여 폭이 넓은 것이 옳다. 그러나 우선 인력의 한계와 행정에 남은 폐쇄성으로 시민 참여의 폭이 무척 좁았다. 그리고 대개의 시민 위원들은 시나 시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고, 노골적으로 집행부 입장을 변호하거나 별 말도 없이 회의 수당만 챙긴 채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지방의원 외의 다른 위원이 적극적으로 시의 계획에 반대하고 나서는 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용역심의위원회, 사회단체보조금심의위원회, 민간보조금 심의위원회 경제농업분과, 교육경비보조금 심의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예산안의 윤곽을 미리 알 수 있었다. 특히 각종 연구용역이나 설계용역을 심의하는 용역심의위원회가 큰 도움을 줬다. 2010년 첫 참석 때는 구미시가 낙동강변 수상비행장을 계획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예산안 심의에서 이를 삭감해서 무산시킬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그러나 위원회 단계에서 잘못된 사업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성공한 적이 없다. 낙동강변 수상비행장 설계용역도 위원회를 통과했다. 사회단체보조금 심의위원회에서는 자유총연맹 구미지부가 계획한 학생 병영체험캠프에 문제제기했다. 군인이 아닌 사람을 병영체험캠프에 보내는 것은 군사주의적 문화였고, 더구나 자발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을 참가시키는 것은 강제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만일 병영캠프에서 총이나 탱크 탑승과 같은 행위를 한다면, 유엔 아동인권협약에서 금지하는 적대 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위원들이 이 사업의 예산 책정에 찬성했다.

 

교육경비보조위원회에서는 관내 고교 진학 우수 학교에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준비하는 예산을 반대했다. 학생들의 역외 이탈을 막으려면 고교 교육 환경 전반을 개선해야 할 일이었다. 이런 인센티브로 강하게 인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경우 교사들의 일방적 진학 지도로 학생들의 고교 선택권이 침해될 공산이 커졌다. 또 무엇보다 근소한 차이로 우수 학교가 가려질 텐데 어떤 학교는 인센티브를 받고 어떤 학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불공정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들어온 공무원과 교육청 관계자, 학교장들 대다수는 별 논리도 없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표결을 불사했으나 큰 차이로 지고 말았다. 회의가 파하면서 나는 앞으로는 절대 위원회에서 힘을 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의회 예산 심사에서 삭감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 뒤 나는 내가 반대하는 사업이 통과되는 순간 허허 웃으며 의회에서 삭감할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1113일자 <한겨레> ‘왜냐면에 나의 투고문 박정희 찬양론에 드리워진 전체주의가 실렸다. 9월 추경예산심사에서 나의 박정희 추모제 및 탄신제 지원 예산 삭감 시도가 만든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었다. 잠복되어 있는 내게 대한 비난에 대해 박정희 탄신제인 14일을 앞두고 반격을 거행했다. 파문은 주로 구미 지역 내부의 수구적 여론 내부를 맴돌고 있는 시기 쟁점을 전국화한 것이다.

 

“(...) 강박증에 물든 인간일수록 한없이 취약하고 우스워진다. 일개 시의원의 도전에 호들갑을 떨며 입장 변경 또는 침묵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라.

(...) 박정희 찬양자들이 과연 언제까지 구미의 재구성을 막을 수 있을까. 얼마가 걸릴지 몰라도 시간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힘을 편들 것이다. 만물은 변하며,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각지에서 격려 메시지가 쇄도했다. 충남 공주에 거주하는 63세의 약사 선생님은 편지와 함께 영양제를 넣어 보내오기도 했다.

 

1117일에는 구평동 아이누리 장난감도서관이 개관식을 가졌다. 별빛공원 옆 상현빌딩 2층에 자리잡은 이곳은 영유아에게 필요한 장난감을 대여하는 구미 최초의 장난감도서관으로 구미YMCA에게 운영이 위탁되었다. 장난감도서관 설립은 선거 당시 내가 발표한 공약이기도 했다.

 

1119일 과천시의회에서 열린 전국 지방의원 초청토론회에 참석했다. 모여든 지방의원들은 “(의회에서 부결된) 의안을 집행부가 다시 제출하는 관행을 지방자치법으로 제동 걸자”, “의원 휴게실을 민원 편의방으로 운영하자”, “동별 업무보고도 신설하자”, “편안하고 정확하게 조례를 읽을 수 있도록 국어전문가 자문을 받자”, “의원발의 조례안도 입법예고와 공청회를 거치자”, “기초의원 보좌관 제도가 필요하다등등의 제안을 내놓았다.

 

인근의 한 카페에서 뒷풀이에 참여하며 과천시의회 서형원 의장을 만났다. 환경운동연합 출신의 그는 나처럼 무소속이었다. 우리는 정당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우리가 당을 만들까요?”라고 말해버린다. 잊을 수 없는 복선이었다.

 

칼라TV’의 고문으로 과천에서 살던 정일욱 선생의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정 선생은 부인께 얘가 김수민이야. 떨어질 애가 당선이 돼버려서 시의원으로 나타났어라고 소개했다. 울진에서 올라온 장시원 의원(무소속)도 함께였다. 장 의원은 진보 성향의 지역 정치인으로 울진 반핵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었다.

 

의회는 연말을 맞이해 정기회를 열고 우선 1126일부터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다. 1년간의 행정을 점검하고 비판하는 자리로 국회의 국정감사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편하다. 혹자는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부른다. 의원이 된 지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소재가 풍부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단단히 준비했다.

 

의회사무국 심사에서 내가 입은 파란색 정장 재킷이 화제가 되었다. 이 옷은 내 옷이 아니라 구미에서 열리는 어느 행사에서 개최되는 단원복이었다. 의원 대다수는 행사 개최 당시 의원연수가 잡혀 있기도 해서 그 옷을 입지 않았다. 입었더라도 개막식 하루만이었다. 이런 옷을 포함한 각종 기념품들이 의회로 무분별하게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직접 옷을 입은 이유는 보라. 평소에 못 입는 옷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의회사무국 공무원들이 잘 어울리시는데요. 가끔 입으셔도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서 웃음이 터졌다.

 

첫 해라 아무래도 축적된 정보가 작다 보니 임기 중 네 차례의 감사 중 가장 내용이 빈약했다. 그래도 조례안을 살피며 행정이 그에 맞게 펼쳐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며 감사를 준비했다. 사회단체 보조금 심의위원회에 보조 대상 단체 회원이 들어온 것을 발견해 지적했고, 명예읍면동장 제도가 사문화되었음을 밝혀내며 조례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리더십 독후감에 극우 성향 단체와 공동으로 후원을 한 사실도 문제 삼았다.

 

애매한 경우도 있었다. 그즈음 각지에서 호화 시청사가 문제가 되고 면적이 너무 넓은 시장실들이 언론에 보도되고는 했다.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구미시장실은 99제곱미터 이하여야 했다. 그런데 회계과에 질의했더니 ‘101제곱미터였다. 법령 위반이 아니냐고 질의하자 씽크대 등은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거기를 빼면 기준 이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는 허위 답변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답변 공무원이 나를 찾아와 제가 잘못 알았다. 2제곱미터 초과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초과 면적이 작아서인지 중앙정부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나도 이 2제곱미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으니까. 여하간 이것은 허위 답변으로, 증인 선서까지 하고 입회한 공무원으로서 부당한 언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행정사무감사를 마무리하면서 의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허위 답변 재발 방지를 촉구하자고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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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진 시장의 답변에는 시종일관 두 가지의 논리가 엿보인다. 첫째, 노사 문제는 해당 기업에 맡기는 것이 좋다. 둘째, 산업평화 정착이 중요한데, 그 산업평화는 노사간 갈등이 없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나는 보충질문 순서에서 말했다. “'노사평화'라는 말이 있는데, 파업만 발생하지 않으면 '노사평화'인지, 파업이 발생하면 '노사평화'가 깨지는 것인지? 노사 이견을 억누르는 상태나 무노조 경영도 노사평화인가? '노사자율'이라고 하지만, 노조는 산별노조, 자본도 경총 등의 기구와 연관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노사자율에만 맡길 수 있는가?

 

남유진 시장: “어디까지나 기업의 문제는 기업의 문제다. 시장, 경찰서, 고용노동부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산업평화는 시민들이 많이 쓰는 용어다. 옛날 구미가 노사평화 부분이 많이 훼손되어 기업유치가 어려웠다. 지난 4년동안 구미에 노사분규가 단 한건도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자율의 협상에 맡겨야 한다. 다만 불법이나 한쪽의 힘이 너무 큰 것은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구미시에서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

 

김수민 의원: '평화''좋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노사분규가 없다고 해서 평화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갈등을 표현하는 것은 정상이다. 예컨대 무노조 경영을 하면 노사평화인가?

 

더 따져 물으려 했지만 허복 의장을 대리해서 본회의를 진행하던 김영호 부의장이 보충질문은 2회만 할 수 있다며 가로막았다. 회의 규칙에는 의제 관련 발언을 2번할 수 있게 되어 있을 뿐 보충질문을 2번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었다. 과거 회의 기록을 살펴보니 시정질문에 나선 의원들은 대개 답변을 듣고 보충질문 없이 마무리짓고는 했다. 준비와 논리의 부족이다. 보충질문에 대해 확립된 규정은 없었고 관례도 희박했다. 그러니까 김 부의장은 자의적인 의사 진행을 한 것이었다. 회의에서 의원의 발언 회수도 엄격히 제한된 것은 아니다. 의장의 허가 하에 추가로 발언할 여지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정질문이 끝나고 나서 파업만 안 하면 노사평화냐는 나의 발언이 대구MBC 라디오의 달구벌 만평에 소개되었다. 만평 성우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조차 무시당하고 있다는 개탄을 곁들였다. ‘달구벌 만평은 대구경북 주민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코너로 나도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등굣길에서 자주 들었다. 이날 시정질문을 방청한 어떤 시민은 산업평화는 시민들이 많이 쓰는 용어라는 남 시장의 설명에 대해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본다고 야유하기도 했다. 이 시민은 내가 질문을 마칠 때 손뼉을 치기도 했다(의회 내에서는 박수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지만). 그러나 남유진 시장은 이후에도 노사 갈등이 터질 때마다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시정질문에서 내가 다룬 주제는 두 가지가 더 있었다. 나는 몸이 아파 어린이집을 가기 어려운 환아들을 위한 간호보육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경기도 안성시가 한 요양병원의 소아과 시설을 만들어 한시적으로나마 운영한 전례가 있다. 안성시 어린이 간호보육센터는 일당 평균 1.2명 입원이라는 저조한 실적, 해당 병원의 운영 지속 실패 등으로 사업을 포기했지만, 영유아 수가 많은 구미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구미보건소측은 안성의 시설이 격리실과 안정실로만 구성되어 분리입원 치료가 어렵다며, 의료 사고 시 책임소재 불분명, 소아질환 특성상 보육보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점, 인근 병원 및 보육시설에 비해 지리적 접근성 부족, 보육센터에 상주하는 보육교사가 1회성으로 입소한 아동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 가장 큰 난제는 영유아의 낯가림 현상이었다. 집행부 입장은 센터 설치보다 아동 돌보미 사업의 활성화에 무게를 두었다. 돌보미가 환아 가정에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였다.

 

끝내 나는 보건소측 논리를 뛰어넘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고, 우선은 아동 돌보미 사업의 활성화를 주문하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이후에도 환아간호보육센터를 추진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다만 힌트를 구할 수는 있었다. 낯가림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공동체 운영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전후로 부모협동으로 설립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생겨나면서 간호보육센터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동체를 이루고, 평소 안면이 있는 어른의 손길을 받으면 영유아의 낯가림 현상도 완화될지 모른다.

 

당시 시정질문으로 다룬 또 하나의 주제는 나의 주요 정책이었던 주민참여예산제였다. 당시 예산 편성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보장한 지자체는 100여곳 수준이었는데 국회에도 참여예산제를 의무화하는 입법이 추진되어 힘을 얻고 있었다. 나는 각 지역 주민들의 지역회의, 예산안을 심의하고 편성하는 예산위원회, 예산위원과 공무원들이 예산을 조정하는 예산협의회, 예산제의 과정을 꾸려나가는 예산연구회, 시민 대상 예산교육을 담당하는 예산학교를 모두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위 시의원 재량사업비도 도마에 올렸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시범적 실험을 위해 주민편입사업비의 편성과 집행을 주민회의를 통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시의원이나 동장, 몇몇 유지들의 입김으로 좌우되던 재량사업비를 해방시키자는 얘기였다. 의원석에서 묘한 긴장감이 도는 것을 느꼈다.

 

답변에 나선 박상우 정책기획실장은 주민참여예산제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라며 울산 동구에 벤치마킹을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고무적인 답변이었다. 울산 동구는 선도적으로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한 지자체로 그 과정 역시 가장 심도 있는 지자체로 꼽혔다. 이를 도입한 이갑용 전 구청장도 저서 <길은 복잡하지 않다>로 각별한 자부심을 내비친 바 있었다.

 

도입하는 단계에서 준비도 할겸 소규모 예산이나 부문별 예산에 대해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실험해보는 방안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년 3월말까지 조례제정과 시행규칙이 완료되고 단계적으로 절차를 거치려면 상당히 시기적으로 급박하다. 다만 제도화가 되기 이전에 있을 수 있는 예산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주민참여예산제 시행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지역회의, 예산연구회, 예산협의회, 예산위원회 등을 다 거치는 유형, 둘째, 예산위원회 중심으로 진행하는 유형, 셋째, 조례에 '할 수 있다' 정도로 정리하고 지자체 단체장의 재량에 많이 맡기는 유형이 있다. 이중에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행안부 표준조례안에 맞춰서 최상의 수준으로, 여러 기구가 다 망라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주민에게 예산 편성권을 돌리는 참여예산제에 관해서는 세 부류의 세력이 훼방할 위험이 있었다. 예산 편성권을 쥔 집행부,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해왔던 지방의원들, 그리고 관변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던 지역 토호 및 단체 간부들이다. 세 번째 부류는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방해할 실력은 갖추지 못해서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행부가 나서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니 걸림돌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시정질문이 끝나고 남유진 시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KEC 문제에 대한 추가 설명을 겸해 차 한잔 하자는 이야기였다. 본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지역구 사무실로 돌아온 탓에 면담에는 응하지 못했고 통화만 했다. 남 시장은 앞으로 일본 기업 유치를 해야 하는데, 파업이 터지면 그들이 싫어한다고 말했다. 일단 터져버린 파업은 어쩔 텐가, 실소가 나왔다. “금속노조 구미지부장 분신 직전에 구미경찰서와 사측이 작전을 짰다는 정황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구미시도 유의하셔서 행동하기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또 남 시장은 주민참여예산제는 반드시 제대로 실시한다고 약속했다.

Posted by 김수민

해외연수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내 원칙은 첫째, ‘다녀온다였다. 둘째, 외유성 연수는 안 된다. 연수를 내실있게 소화한다면 누구에게든 욕 먹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의원들과 단체로 의회에서 잡아주는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외유성이 아니더라도 관심사가 다르면 연수에서 얻는 성과가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의회 전체의 프로그램을 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둘째,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연수를 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넷째, 1년이 아닌 2년에 한 번을, 임기내에 2회를 다녀온다.

 

그런데 기초의원의 연간 해외연수 예산은 1인당 180만원이었다. 이 금액으로는 동북아나 동남아 지역 밖으로는 나가기 어려웠다. 고로 자비 부담을 한다는 것을 다섯째 원칙으로 세웠다. 이러한 원칙을 담아서 <경북일보>에 기고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연수 지역을 설정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주민참여예산제의 1번지 뽀르뚜알레그리(브라질), 협동조합의 도시로 유명한 볼로냐(이탈리아), 교통혁신으로 국내에도 크게 알려진 꾸리찌바(브라질) 등을 염두에 두었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미 현지 공무원들은 한국에서 찾아온 지자체 관계자, 지방의원,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안내를 하느라 상당히 지쳐 있다는 후문을 들었다.

 

하루는 다른 지역 지방의원에게 같이 연수를 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독일에서 기후변화 관련 회의에 참석한 다음 영국에서 사회적기업을 탐방하는 일정이라 내게는 매력적이었다. 특히 독일의 회의는 만35세 이하 청년 지방의원에게 참가비를 면제해준다고 했다. 그러나 제안을 한 의원도 나도 모두 이 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기억이 어렴풋한데 아마 연수단 구성 자체가 무산되었던 것 같다.

 

시기를 잡는 것도 어려워 나는 번번이 연수를 떠나는 데 실패했다. 결국 4년동안 단 한 번도 의원 연수를 가지 못했다. 2010년 가을, 다른 의원들 대다수는 몽골과 일본으로 나뉘어져 연수를 다녀왔다. 나를 뺀 모두가 간 것은 아니다. 황경환 의원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김성현 의원은 당시 해외연수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윤영철 의원은 지역에 현안이 많다는 이유로 그해는 연수에서 빠졌다.

 

한편 KEC 사정은 차도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현안으로 부상했지만 사측은 교섭요청을 계속해서 거부하며 실질 교섭과 무관한 간사 협의만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1015일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들에 섞여 회사 앞에서 시청 정문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특별히 몸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땅에 이마를 대는 중간중간에도 무념무상과 잡념을 오갔다. 정문앞 마무리 집회에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더 이상 할 말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사측은 삼보일배가 아니라, 일보삼배로 사죄하라"고 외쳤다.

 

KEC지회는 물리력을 거의 동원하지 않고 지극히 평화적으로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여성 조합원들이 많았다는 점도 큰 이유였을 것이다. 영남권 집회니 민주노총 집회니 대규모 집회가 회사 정문앞에 벌어질 때마다 밀고 들어가야 하지 않나라는 목소리도 노조 안팎에 있었다. 지나는 시민들 중에도 공장을 점거하든지 해야지, 정문앞에서 농성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는 논평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 KEC지회는 공장 점거를 택했고 일부 조합원들이 공장안에서 농성 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1030일이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김준일 지부장이 분신을 시도했다. 그날 저녁 7시쯤 김 지부장은 KEC 교섭대표와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사복 경찰이 들이닥쳐 김 지부장의 체포를 시도했다. 조합원들이 연행을 막으려 저항하다가 연행당했고, 김 지부장은 여자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몸에 지니고 있던 신너를 자신의 몸에 끼얹으며 항전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치지 않고 여자화장실 문을 깨고 진입했고, 이때 김 지부장은 불을 당겼다.

 

이를 두고 사측이 위장교섭을 제안하면서 경찰이 함정을 판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KEC 공장은 전장이 되었다. 무장한 경찰병력과 노동자들이 모두 모여 들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홍희덕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민주당 홍영표 의원 등 야당 국회의원의 방문이 잇따랐다. 나도 분신 사건 당일 밤에 KEC 정문으로 향했고 비어 있는 경비실에서 잠을 잤다. 이튿날에 있는 동네행사 어르신 걷기 대회도 불참한 채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나중에는 권영길 의원을 비롯한 몇몇 정치인들도 천막농성장에서 취침했다.

KEC 노사 갈등은 요즘 흔히 일어나는 정리해고 사태가 아니었다. 단체협상에서 뜨거운 쟁점이었던 타임오프 문제는 노조에서 먼저 철회했던 차였다. 그런데도 사측이 지극히 불성실한 교섭으로 일관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사측도 이런 사측은 처음 본다고 말하곤 했다. 30일 밤 집회 발언 때 나는 몹시 화를 냈다. 특히 어리석고 위험한 작전을 벌인 경찰 쪽을 향한 분노가 거세었다.

 

파업 현장에는 언론도 속속 나타났다. 그중에는 내가 2009년 말에 잠시 일했던 칼라TV’도 있었다. 스탭 중에 처절한 기타맨크롬이 구미를 찾았다. 내 원룸을 하룻밤 숙소로 내주었다. ‘크롬은 공교롭게도 인동동 내 구평동 부영아파트 쪽에서 거주한 적이 있었다.

 

내가 농성장을 잠시 비운 동안 남유진 구미시장, 구미갑 지역 김성조 국회의원, 구미을 지역 김태환 국회의원 등 소위 구미 정치 3’와 김용창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이 방문했다고 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이 중재를 위해 구미를 오가는 사이에도 이들은 정말이지 한 것이 없었다. 국회의원 지역구 제도를 회의하게 만들 정도였다. 조합원들이 맹렬히 항의하자 남유진 시장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고 한다. 구미 경실련도 성명서를 발표해 예전 노동쟁의 때 수차례 노동복지과 직원을 보내 중재 노력을 했던 김관용 전 시장(현 경북도지사)과 남 시장을 대조했다.

 

이즈음에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었다. 남유진 시장과 재계 리더들이 KEC 파업 지도자들의 구속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구미시의회 의장단까지 끼어 있다는 루머도 있었다.

 

1110일 의회 첫 시정질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KEC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리고 남 시장의 수수방관을 비판하기로 했다. 시정질문은 국회의 대정부질문과 비슷하다. 집행부를 출석시켜 질문을 하고 답변을 얻는 행위다. 회의 용어에서 질문질의과 구별된다. 질의는 상임위 등에서 출석한 공무원에게 앉은 자세로 묻는 것이지만, 질문은 사전에 신청을 하고 답변할 공무원을 불러내야 한다.

 

그런데 구미시의회 시정질문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다. 국회 대정부질문은 일문일답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질문이 가능하다. 서울시의회 등 여러 지방의회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구미는 일괄 질문-일괄 답변이었다. 그것으로 부족하면 보충질문-보충답변을 조금 더 하고 끝나는 수준이었다.

 

1110일 나는 구미시에게 그동안 우리 구미시는 KEC사태의 해결과 노사갈등의 중재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나?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노동과 자본의 갈등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요지의 시정질문을 했다. 나는 현장에서 느끼지 못했으나 한 지역언론은 분위기가 경색되었다고 전했다. 답변대에는 남유진 시장이 섰다. 남 시장은 그동안 사측과 노조, 노조 가족대책위와 면담을 했었고 구미시의 주선으로 8차례 실무협상이 이루어졌으나 노사측 서로간의 입장만 확인했을뿐 의견차이로 협상이 빈번이 결렬 되었다고 밝혔다.

Posted by 김수민

그무렵 일을 주로 만들어서 하던 내게도, 의원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민원들이 가을경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등 신설 민원이 많았다. 인동동 동쪽 끝, 칠곡군 가산면과의 접경 지대에 있던 농촌 마을 신동에도 있었다. 신동은 크게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지고, 북쪽 마을은 솔숲 언덕을 기점으로 동서로 나뉘어진다. 신동 경로당은 솔숲 언덕 서쪽에 있었는데 해가 기울면 솔숲 동쪽에 사는 할머니들이 어두운 숲길을 걸어가야 했다. 나무 옆에 불을 밝히는 것이 다소 반환경적이긴 했지만 어두운 길을 위험하게 걸어가시는 게 마음에 걸렸다.

 

솔숲은 사유지였고 외지에 사는 땅주인의 허락을 받느라 시일이 좀 지체되었지만 결국 설치를 했다. 전대 의원들에게 건의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며 조금 의구심을 갖고 계셨던 어르신들 얼굴이 밝아졌다. 집행부에서도 이런 길을 밝혀달라는 민원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민 3, 4백명이 거주하는 신동은 공단지역인 우리 동네에서 숨통과 같은 농촌이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 신동을 가끔 들르고는 했다. 경로당 부근에 말고 하나 더 있는 솔숲에서 바람을 쐬었다. 그러나 어르신들에게 마을은 하나의 짐이었다.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어르신들이 드물었다. 다들 동네가 택지로 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와 보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답답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신동은 당장에 엄청난 회오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20107월 임기가 개시되자마자 신동 주민들과 일부 지주들이 의회를 찾아왔다. 의장과 지역구 세 명의 의원이 그들을 맞았다. 한국전력은 신동에 고압 송전탑을 꽂을 작정이었다. 전압은 154KV가 아니라 345KV. 이 사안이 내게 크나큰 질곡이 될 줄이야. 그때부터 나는 틈틈이 고압 송전선로와 철탑에 얽힌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소위 전자파로 인한 건강 침해였다. 또 고압 송전철탑이 있는 이상 주민들은 택지 개발의 꿈조차 이룰 수 없었다. 어르신들의 개발지상주의가 서글프나, 이점은 주민들이 분열하지 않고 반대운동을 펼 수 있는 요건이기도 했다.

 

구평동 부영 아파트단지에서 들어온 민원도 기억난다. 아마도 7단지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고교 선배로 조금 알고 지내는 분께 연락이 왔다. 지하주차장에서 무슨 공사를 시행하고 나서 한동안이 지났는데도 공사폐기물이 쌓여 있다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해당 업체를 상대로 즉각 철거를 요구하도록 집행부에게 연락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데, 며칠 지나 깨끗이 치워진 현장을 보니 뿌듯함이 솟구쳤다. ‘아 이런 일도 재미나구나.’ 연신 ‘before/after’ 사진을 감상했다.

 

위와 같은 일들은 사실 의원의 본연 임무는 아니었다. 이런 사업들은 주민이 구미시에 직접 건의하면 공무원이 현장을 둘러보고 곧바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다. 요즈음엔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의원을 통해 일을 해결하지 않고 곧바로 시 홈페이지에 요구 사항을 올리는 주민들도 많아졌다. 나는 찾아온 주민이 직접 시에다 얘기해볼까요?”라고 하면 말리지 않았다. 직접 해결의 경험도 소중하다. 대신에 담당부서의 반응을 지켜보며 민원 처리 수준을 파악했고,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 내가 직접 나서곤 했다.

여전히 관을 다룰 줄 모르는 주민도 많았고, 주민 건의를 다 소화하기에 집행부가 역부족인 측면도 있었다. 이 지점에서 의원들이 나서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의원을 아는 주민과 아닌 주민 사이에도 불평등함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의원을 통해 들어온 민원은 좀 더 큰 힘을 얻으니 해결이 빠른 민원이 있고 더딘 민원이 있었다.

 

불쾌하게 남은 민원도 있었다. 어느 상인이 인동 로데오거리 일대 길이 울퉁불퉁하다며 재포장을 요구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기분이 언짢았다. 그는 다른 일도 좋지만 시의원은 지역구 일을 해야죠?”하면서 내가 하던 다른 사업들을 무시하는 늬앙스를 물씬 풍겼다. 시의원은 시의 일을 하는 정치인이고, 지역구 일도 한두가지가 아닌데 말이다.

 

인터넷 카페로 들어온 민원이라 만나뵙기 위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응답이 없었다. 현장을 나가보니 그가 묘사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재포장 대상에는 능히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인동동사무소 계장에게 문의하니 도로 보상을 해야 하는 땅이라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무턱대고 보챌 수는 없었지만 우선적으로 꼭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집행부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재포장을 했다. 어쨌든 성사되었으니 통보가 없었던 것에 불만을 품지는 않았으나 나는 봉변을 당했다. 처음 민원을 제기했던 것으로 보이는 주민이 내 블로그 방명록에서 항의했다. 시의원 세 명 모두 무관심에 빠진 상황에서 일대 상인들끼리 돌려가며 민원 전화를 넣은 끝에 재포장이 이뤄졌다면서. 민원 제기자이기도 하고 전화를 하는 수고를 하셨으니 본인들 공으로 생각하실 일이다. 그런데 내가 아예 손을 놓은 것처럼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났다. 재포장 구간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길고 큰 편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이 정도면 집행부가 의원에게 보고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민원을 넣은 사람들도 알아야 할 게 있다. 도로 재포장은 하겠다고 결정하는대로 곧바로 시행되는 게 아니다. 예산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리고, 명목을 잡아놓지 않고 책정해둔 풀(full)사업비에서 꺼내어 쓰더라도 업체가 정해지고 나와서 공사를 하기까지 시일이 걸리는 법이다. 물론 물정을 모를 수도 있지만 내게 그것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져야 했다. 그러나 집행부는 사업진행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민원 제기자도 달랑 댓글만 달고 연락을 끊었다. 도로 재포장했다고 보도자료낼 일도 아니니 언론으로 알릴 수도 없다.

 

몇몇 주민들이 즉각적인 예산 집행을 바라면서 옆구리를 찌르는 경우도 있었다. “시의원이 쓸 수 있는 재량사업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이 그렇다. 모든 예산을 일일이 명목을 잡아두고 책정할 수 없어서 각 읍면동에는 주민숙원사업비가 주어진다. 대개 1년에 7천만원씩이고, 인동동은 인구가 5만 명이 넘는다는 이유로 두 배인 14천만원을 받았다. 긴급한 도로 보수 작업이나 재포장 등으로 많이 쓰인다. 사실 쓰임새의 한도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동네는 나루터 축제용 동영상 제작에 쓰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의원 재량사업비라는 것은 본디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의원은 집행기관이 아니다. 소위 재량사업비는 동장의 결재를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게 되고 지방의원이 쌈짓돈처럼 용처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의원의 재량사업비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관청이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있거나 지방의원과 자주 만나는 주민들은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민원을 관철시키고는 했다.

 

처음 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내 주변에서는 재량사업비 문제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나쁜 관행이었기 때문에 혁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복지 사업이라든가 좋은 방향에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시의원 재량사업비가 아닌 주민숙원사업비였기 때문에 혁파하기가 대단히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의원들 대부분이 동의해주지 않을 게 뻔했다. 심지어 지역구가 따로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도 재량사업비의 용처를 정해주었다. 재량사업비가 동원되는 공사는 규모가 크지 않아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 의원은 공사업체까지 지정을 해주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은 자신과 별로 연고가 없는 외곽지 농촌 지역 공사로 재량사업비를 돌리기도 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주민들에게 의견을 수렴해서 동장 권한 하에 결정할 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 나에게는 재량사업비를 들일 만한 민원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공사의 경우도 주민숙원사업비보다는 따로 예산을 세워야 하는 것들이었다 

Posted by 김수민

201010월부터는 인턴 보좌관을 채용했다. 선거를 도왔던 친구 김광일 군이었다. 회의나 여타 일정 소화로 풀뿌리사랑방을 비울 때가 많아 보좌관이 필요했다. 또 보좌관을 두면 능률이 얼마나 오르는지 실험도 해보고 싶었다. 보좌관이라고 하나 지방의회에는 정식 보좌관 제도가 없었고 당연히 인건비도 나오지 않았다. 나의 사비를 털어야 했고 두둑한 급여를 줄 수가 없었다. 50만원쯤부터 출발해서 나중에 70만원까지 올렸다. 근무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고 자율 근무를 시행했다.

 

많은 월급을 줄 수 없어 공개채용할 수가 없었고, 이 급여로는 아마 공개채용에 응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검증한 바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김광일은 나의 중고등학교 동창이며 인동동 관내의 황상동 토박이다. 정치 분야에서 활동한 바는 없지만 성실하고 친절한 성품이었다. 업무파악 속도도 빨라서 특별히 공을 들여 교육하지 않았다. 김광일은 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근 시간을 정해주지 않아도 일찍 나와 사랑방을 지켰다. 차가 있어서 급할 때 얻어타기도 편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대다수 시민과 괴리되어 있는 의회에서 외롭게 활동하는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광일이 들어오면서 의정활동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동네에서도 점차 민원이 들어왔다.

 

처음 임기가 시작되고 사무실을 열자 의원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밀려왔다. 원룸에 홀로 사는 어느 어르신이 방문을 요청했다. 돈이 없어서 이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원의 지역구내 기부행위는 금지되어 있었다. 원룸에 거주하다가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는 바람에 낭패를 본 한 아저씨가 찾아온 적도 있다. 의원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밖에도 의원보다는 법률적 구조를 받아야 할 민원들이 줄을 이었다.

 

선거 때부터 나를 자주 찾았던, 매우 곤궁한 처지의 아주머니가 하루는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며 호소했다. 잠시 생각 끝에 학교에 전화를 걸어 교감 선생님과 통화했다. 내 직분을 밝히지 않고 그냥 동네 주민이라고만 소개하고 아이들이 어느 아주머니께 돌을 던지는 일이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 색출하고 그러지 마시고, 이런 일이 없도록 교육만 한번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며칠 뒤부터 돌 던지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가장 황당한 민원이 있다.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찾아와 남편이 몇 년 전 바람을 피운 여자와 다시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그 여자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음성을 낮추었다. “지금도... 듣고 있어요. 나를 감시해요.” “?”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안 들리는데...” “잘 들어보세요. 들리시죠? 지금 그 여자가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어요.” 아마 그 순간 내 표정은 가관이었을 것이다. 그는 남편이 그 여자를 만나고 있는 현장을 포착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졸지에 심부름센터 직원이 된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것까지 할 시간이 못될 것 같아서요.” 그는 그래도 가능하면 해달라고 했다. “어딜 가면 촬영할 수 있습니까?” “00아파트요. 우리 집 근처요.” 알았다며 겨우 돌려보냈다. “... 제가 그 앞에 지나갈 일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엉뚱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동네에 활동가가 하나 생기는 것은 곧 근처 이웃들이 방문하고 상담할 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실상 상점, 교회, 학원 등이 이런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의원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는 둘째 문제였다. 마을로 들어온 이상 나는 1차적으로 동네 사람이어야 했다.

 

또 언젠가는 아들과 불화를 겪고 있던 한 어머님이 찾아왔다. 세 식구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고 더 사이가 나쁜 건 아버님과 아들이었다. 그는 아들이 부모 앞에서 자꾸 욕설을 하고 농땡이 치는 친구들과 어울려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여느 집처럼 아이가 게임에 열중하고 부모가 꾸중을 하는 생활도 되풀이되었다. 사랑방 앞에 교육상담을 한다고 붙여놨지만 나라고 딱히 방법이 있겠는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기는 했어도 하등의 전문성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듣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뭐, 라디오방송에서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를 진행하던 음악인 신해철도 어차피 상담전문가는 아니었지 않은가. 내 나름의 시각과 해법으로 그가 들려주는 집안 사정을 들여다보고 궤뚫어보기 시작했다.

 

부모든 교사든 권위를 세우기 좋아한다. 수직적 구조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녀와 제자도 여기에 호응을 해버린다. 반항을 하면서도 부모나 교사를 완벽한 어른으로 설정해놓는 것이다. 이것부터 깨지 않으면 나쁜 상황이 되풀이된다. 나는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자녀가 욕설을 쓰면 도덕적으로 훈계하거나 어른앞에서 입을 놀린다고 꾸중하지 마십시오. 아이가 욕을 하시면 심정이 어떻습니까?” “당연히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면 그렇다고 말씀을 해보십시오. ‘네가 험악한 말을 하니까 내가 마음이 아프다. 엄마한테는, 엄마 앞에서는 참아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입니다.

 

그 학생이 어떤 인물인가 어머님에게 여쭤 이리저리 탐색해보니, 당시 부모님은 그렇다고 여기지 않았겠지만, 평범하고 착한 성격이었다. “애가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다는 것도 어머님의 큰 걱정이었는데 다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재밌어 한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꿈이 많을 것 같지만 꿈이 없는 게 비정상은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쩌면 꿈 없이 세상을 살아보는 것도 환상에 젖지 않고 인생을 구상해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었다. 또 봉사활동을 재밌어 한다니 그런 학생이 악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술담배를 하는데 이 학생은 하지 않는단다.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주변에서 어떻게 놀든 거기에 휩쓸리는 부류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는 큰 근심거리가 아니었다. “집에 가서 아버님한테도 말씀을 해드립시오. 괜히 아이 모습을 확대 해석하면 안 됩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지금도 그리 심각한 상태가 절대로 아닙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더 심각해집니다.”

 

그래도 당장에 게임에 빠져 있는 건 좀 고쳐주고 싶다고 했다. 역시 게임은 난제중의 난제였다. 인터넷이든 핸드폰이든 빠져버리면 헤어나기가 어렵다. 나는 체벌이나 두발 규제에 대해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컴퓨터와 핸드폰은 조금 다르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컴퓨터를 없애버리는 극약 처방이나 PC방 출입을 막는 강제조치는 할 수는 없었다. “게임을 배워보겠다고 하시죠.” “어떻게요?” “그냥 네가 하는 게임, 얼마나 재밌냐. 나도 배워보자고 가르쳐달라고 하십시오.” “안 가르쳐주면요?” “졸라야죠. 부모라고 자식 못 조르겠습니까. 아버님도 꼭 같이 하시죠.” 내 심산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게임을 배워보며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고, 하나는 실제로 부모가 게임을 배워 자식이 독차지한 컴퓨터를 해방시키려는 거였다(흐흐).

 

어머님은 내게 아이를 사무실로 보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의원님이랑 닮았어요.” “그렇습니까?” 얼마 지나 정말로 학생이 찾아왔다. 순순히 오는 걸 보니 역시 모자 관계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나와 그다지 닮지는 않았고 신체 사이즈만 비슷했다. 학교 다니며 겪는 어려움을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기성세대와 학교문화를 욕했다. 그의 표정에 남은 약간의 긴장감이 다 풀어지는 것 같았다. 돌아가는 그에게 나는 사랑방에 있던 만화 <20세기소년>을 빌려줬다. 다 읽으면 다음 권을 빌려야 했기에 몇 차례 더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보면 볼수록 유순한 소년이었다.

 

몇 달이 지나서 어머님이 가족관계에 이제 별로 걱정이 없다고 하셨다. 당시 고2였던 학생은 2012년에 대학에 진학했다. 회계 쪽 전공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는 제 전공을 선택한 사유로 간단하게 적성에 맞아서 선택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어머님이, 그때 진짜로 게임을 배우셨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김수민

나는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 논란을 계기로 오히려 지역사회의 관용성을 느꼈다. 나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일각에 크게 괘념치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지만 양론이 있는 걸 인정해야 한다. 지자체 지원은 신중해야 했다거나 시의원이 예산을 다루면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거나 저런 시의원도 있어야 된다. 있다고 기념사업 예산이 곧바로 없어지나?”라는 등 한층 여유롭고 관대한 여론도 있었다. 논란은 내 활동을 훼방할 수 없었다. 나는 임시회가 끝나고 편안하게 추석을 맞이했다.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전술적으로 너무 강경하고 섣부르지 않았느냐는 지적은 있었지만, 나는 거꾸로 좀 더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야 했다는 사후 평가를 내렸다. 박정희 추모제와 탄신제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참석을 안 하면 보기 싫은 꼴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미시립체육관인 박정희체육관’, 도로명 주소인 박정희로등은 사정이 달랐다. 공공 시설이나 도로 명칭부터 비판하면서 이것이 교정되면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을 일부 인정할 수 있다고 대타협을 공세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었다. 최선의 경우에는 일말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에도 체육관조차 구미시민체육관이 아닌 박정희체육관을 고집하는 세력을 옹졸하고 편협한 집단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안타깝다.

 

나의 걱정거리는 다른 데서 찾아왔다. 학교무상급식 전선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9월 임시회가 끝나기 전 열린 의원간담회에서 유통축산과의 무상급식 추진계획을 보고받았다. 여기서 무소속 김정곤 의원(신평, 비산, 공단, 광평)이 반대 의견을 최초로 표명했다. 그가 보수 성향임은 알고 있었으나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 의원이라는 점에서 조금 낭패를 느꼈다. 김정곤 의원은 선거 당시 구미풀뿌리희망연대의 정책제안에 전적으로 수용한다고 답변했다. 정책제안에 학교무상급식이 끼어있음은 물론이었다. ‘공약 파기임을 지적하려다가 접었다. 반대 여론이 있으니 반대 의원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김정곤 의원이 하루는 정성껏 전자우편을 써서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는 이유를 밝힌 적이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부유층까지 무상급식을 해야 하느냐. 구미는 성장이 더 급한 도시고 거기에 예산을 우선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상급식은 무료 급식이 아니다. ‘무상은 상품으로 거래하지 않으며 공공적으로 비용을 부담한다는 의미다. 따질 것은 부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교육은 상품이어야 하는가, 아니어야 하는가?’학교급식은 교육복지냐, 식당에서 파는 것과 같은 상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무상급식이다. 김정곤 의원에 이어 반대에 가담한 윤종호 의원은 급식까지 교육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했으나, 그렇게 따지면 의원들이 회의를 멈추고 먹는 점심식사도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없으니 의회 경비로써가 아니라 사적으로 부담해야 했다.

 

학교 책걸상도 돈을 받고 팔지 않는다. 학교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이 무상급식 대신에 신경쓰자는 학교안전예산을 보자. 학교안전시설을 설치할 때 학부모님들은 돈을 내십시오. 다만 저소득층은 증명 서류를 떼오면 면제해드립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학교급식은 개별로 판매되지 않는다. 한꺼번에 밥을 지어서 학생들이 덜어 먹을 뿐이다.

 

이래도 고개를 젓는다면 간명한 사례를 들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군인들이 돈 내고 밥을 먹던가? 하물며 교도소에서도 죄수들이 급식값을 내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군인들과 죄수에 비해서도 차별을 받고 있었다.

 

저소득층부터 소득순으로 점차적으로 확대하자는 제안도 있다. 무상급식이 실시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이게 차선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 형편에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기준선을 사이에 두고 급식비 지출과 면제가 갈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은 조금도 합리적이지 않다.

 

학교무상급식은 초유의 관심사였고, 유통축산과 겸 의회 산업건설위원회 소관이었지만 교육 예산이기도 해서 상임위가 아닌 전체의원간담회에서 주로 토론을 진행했다. 그러나 내가 위에서 든 논리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았다. 토론이 붙을 만하면 급하게 식사하러 가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종결 지으려는 의원들이 있었고 의장단의 태도도 그랬다. 학교급식 토론 중에 자신들 먹을 식사를 고민하는 진풍경이었다. 분명한 무상급식론자였던 나와 김성현 의원도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러나 이런 인내에도 불구 찬물을 끼얹는 지역언론이 있었다. <경북문화신문>은 나와 김성현 의원이 학교무상급식을 주도하려다 다른 의원들의 반감을 샀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나는 학교무상급식 지원 조례안 초안을 작성해 의원 모두에게 메일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조례안을 대표발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의회 전반의 합의를 이룬다면 상징적으로 의장이 대표발의해도 되고 상임위를 떠나 찬성 의원 전원이 공통발의자로 서명할 수도 있었다. 특정 의원()이 아닌 상임위 차원에서 발의하는 위원회 발의 제도도 활용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는 산업건설위원이 아닌 내가 뒷전에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아무 상관 없었다. 내가 발의 의원이 아니더라도 학교무상급식을 관철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주민들게 보고하면 그만이다. 중대한 공약은 이행하는 데 가치가 있다.

 

그 보도는 어쩌면 실제 상황보다는 기자가 예측한 국면을 미리 당겨서 현실을 꾸며낸 산물일지도 모른다. 어떤 시민단체 간부는 의원 임기 개시 직후 내게 김수민 의원과 김성현 의원은 두 세달 지나면 의회내에서 고립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것이 관측을 넘어 현실 진단으로 등장한 것이 <경북문화신문>의 보도라고 보았다. 내가 이 보도를 비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경북문화신문> 기자는 웃으면서 그런 일이 있으면 즉각 연락해달라. 기사를 수정하겠다고 답했다. 나는 이런 행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기자가 남이 뭐라 한다고 기사를 내려서야 되겠는가. 그 밖에도 <경북문화신문>은 의회 관련 기사를 썼다가 의원을 대신해 압박을 가하는 의회사무국에 못 이겨 기사를 내리곤 했다.

 

학교무상급식은 다른 의원도 가세를 하게 되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나나 김성현 의원이 가려지는 데는 찬성 의원이 속속 등장하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의원 중 4명을 빼고는 나나 김성현 의원과 지역구가 달랐으니 무상급식 추진의 공을 빼앗길 염려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한편 당시는 지역사회를 총단결시킬 만한 이슈도 부상했다. 대구광역시는 자신들의 취수원을 구미 지역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것은 한꺼번에 많은 물을 끌어모아 멀리멀리 공급하는 광역상수도시스템에 대한 맹신이었고, 4대강파괴와 같은 대규모 토건사업과 같은 본질을 안고 있었다. 대구시가 맑은물을 얻으려면 대구와 그 인근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수질을 개선할 일이지 빨대만 길게 빼서 꽂을 일이 아니다. 취수원 이전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국기술연구원도 연구 용역에서 타당성 없음이라고 결론 내렸다. 갈수기 구미시의 수원 부족도 우려되었고, 이전 예상 지역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91일 구미시의회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범시민적으로 반대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관과 시민사회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진보 성향 2명의 의원은 <경북문화신문> 보도로 트집을 잡혔다. 나와 김성현 의원이 각자의 일정 탓에 대구취수원 이전 관련 토론회의 방청석에 앉지 못한 일이 있었다. 중대 사안이니 선약이 없었다면 참석했을 것이다. <경북문화신문>은 이를 두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실망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하필 토론 장소가 구미상공회의소였다. 구미상공회의소의 당선자 초청에 응하지 않은 의원들이었으니 토론 장소가 거슬려 불참했다고 여긴 탓일까. 진보 성향 의원을 비판한 익명의 관계자는 상공회의소 관계자, 그중에서도 당선자 초청을 거절할 때 내게 훈계를 늘어놓던, 그러고는 김수민 의원이 우리를 이렇게 빨리 실망시킬 줄 몰랐다고 여기저기 말을 퍼뜨리던 그 사람일 확률이 99%.   

 

 

Posted by 김수민

임기를 걸고 싸우겠다는 나에 이어 예결특위에 들어온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이 나보다 조금 온건한 논조로 나를 거들었다. 시가 주최할 행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심사가 끝나고 나서 문화예술담당관실 과장이 찾아왔다. 그는 저도 70년대 학번이고 유신 반대 시위도 하고 그랬습니다며 옛날을 회고하더니 그래도 구미에서는...”을 되풀이했다. 나는 그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지역사회 기득권세력과 시장과 의원들이 만든 작품인데 과장급 공무원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동시에 나도 삭감 요망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평행선이었다. 그 뒤로도 문화예술담당 과장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저한테 이러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계수조정에서 의원들 뜻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그 이튿날 의회 전문위원실 과장과 이명희 의원이 시청앞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들자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내 어머니뻘쯤 되는 분이었다. 다들 걱정돼 죽겠다고 했다. 전문위원실 과장은 의원님 의견에 제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앞으로 닥칠 풍파가......”라며 애처롭다는 표정이었다. 식사를 들고 있는데 갑자기 담당 국장이 불려나왔다. 그도 내가 자리에 있는 것을 모르고 온 듯했다. 별 말 없이 술잔만 주고 받았다.

 

예결특위 마지막날 최종 계수조정을 위해 회의장에 들어갔더니 문화예술담당관실 특위를 비웠던 김상조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하필이면 내가 없는 사이에, 구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김 의원은 박정희 생가가 있는 상모사곡동을 지역구로 두고 있었다. 김 의원은 내가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이후로도 박정희 기념예산에 이의를 제기할 때에 부드럽게 타이르고자 했다. 내가 그런 발언을 할 때마다 김 의원은 곤경을 겪었다. 지역구 일부 주민들에게 김수민 의원이 그따위 말을 할 때 당신은 뭘하고 있었느냐고 타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랬던 것 치고는 나를 참을성 있게 대했다는 걸 인정한다.

 

계수조정에서 박정희 추모제 및 탄신제 예산 지원에 반대하고 나선 의원은 역시 나와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 뿐이었다. 민주당 김정미 의원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구미 민주당이 박정희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구미시의회는 표결을 하지 않는 관례가 있었다. 의회의 의견 분포나 찬반 의원을 알 수 없어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좋게 보면 단순 다수결보다 합의를 중시하는 관행이다. 의원 1명의 소신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분위기도 있어서 소수파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면 당초 삭감 요망을 불렀던 의원이 알아서 포기해야 했다. 당시 표결해보나마나 결과는 명약관화했다. 무기명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이 예산 삭감에 가담한다고 해도 11명 중 3표에 불과했다. 다른 의원들이 내게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표결을 해서 진 거나 진배 없었다. 뜻대로 하시라는 제스춰를 취했고, 추모제와 탄신제 예산은 통과되었다.  

 

의원 누구도 이 사건으로 나를 배척하지 않았다. 이점은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의회 밖으로 번진 파장은 임시회가 마무리되고도 가라앉지 않았다. 친박연합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분량이 짧아 전문 그대로 옮긴다.

 

우리 친박연합 구미시 당협의회에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이렇게 김수민 구미시의원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냅니다.

 

구미는 남한의 평양’ , ‘임기를 걸고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김수민의원은 구미시 의원직을 자진사퇴하라!

 

지난 913, 김수민 구미시 의원은 우리 구미의 자랑이요, 자존심인 박정희대통령을 무시하고 나아가 폄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 친박연합은 어떠한 조치를 불사하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김수민의원이 저지른 망언에 대해 명백한 사과와 함께 추후 이러한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확약 받아, 앞으로는 다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 김수민의원의 이 발언을 내일의 음해와 협잡을 차단하기 위해 일벌백계의 수단으로 삼는 바이다.

 

2010. 9.17.

친박연합 구미시 당협의회

 

경지라는 단어에 웃음이 났다. 내가 무술고수라도 되나. 경고 내용도 인터넷에 난무하는 순순히 응하시면 유혈사태는 없을 것입니다라는 투였다. 한줌의 위협감도 심어주지 못하는 이 성명서는 친박연합의 홍보용으로 씌어진 게 틀림 없었다. 친박연합은 친박연대와는 무관한 정당이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짝퉁 친박이라는 야유까지 들은 마당이었다. 구미 지역 한나라당은 조용했지만 친박연합은 이런 성명서 발표를 불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나는 날도 지나기 전에 곧바로 반격에 나서며 성명서를 작성해 보도자료를 전송했다. 제목은 <박정희 정권의 북한화와 경제파탄, 친박연합은 피해대중에게 사죄하라!>. 박정희의 유신 독재는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려고 했던 반역사적 프로젝트이며 박정희 정권기 한국경제는 불로소득 및 부동산 폭등, 졸속건설, 시장통제 실패를 겪었으므로, 친박연합이야말로 박 대통령 찬양을 멈추고 피해대중에게 사죄하라는 내용이었다.

 

본인도 요구하겠다. 우리의 경제발전을 위해 피땀 흘려 일했지만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잊혀져간 수많은 김개똥들에게 절하라. 억울하게 짓밟히고 죽어간 민주애국 영령들 앞에 고개 숙이라. 인혁당사건 희생자들은 판결을 받자마자 사형당하고 시신은 탈취되어 화장되었다. 그들이 우리 이웃 대구 사람들이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기 바란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 안에 답이 있다고도 한다. 박대통령의 고향에서 기념사업 정부지원을 반대하는 시의원이 나온 것은 필연이다. 역사적 발전의 이치다. 아무리 깊은 어둠도 촛불 하나에 깨진다. ‘임기가 아니라 양심과 일생을 걸겠다. 민주시민으로서, 또 어려서부터 박정희 문제에 접근했으며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해 역사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이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전할 것이다. 이 땅이 정녕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논리의 힘힘의 논리를 이길 것이다.“

 

한 지역언론에서는 친박연합 박세진 대 풀뿌리희망연대 김수민이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짰다. 나에게 아무 비난도 하지 않던 박세진 의원이 느닷없이 불려나온 형국이었다. 박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나는 김 의원 뜻에 동의하지 않지만 특별히 비판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친박연합에서 성명서를 낼 때도 나는 반대했다고 해명했다. 친박연합 소속의 다른 세 의원을 제쳐두고 유별나게 박 의원이 등장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후에 수소문해보니 성명서 발표를 주도한 사람은 친박연합 이수태 의원이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확증이 없었다. 있었더라도 이 의원에게 따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나의 행보에 박정희 추모제 및 탄신제 예산이 깎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아무 변화도 없었을까. 일단 내 자신에게 고무적인 변화가 생겼다. 구미시 안팎의 야권 성향 유권자들에게 이름이 퍼져나갔다. MLB 파크 같은 동호회에서도 거론되는 수준이었다. 어떤 분들은 신변이 걱정된다힘을 조금 더 쌓고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주판은 내쪽이 더 정확했다. 의정활동 초창기에 벌어졌기에 거꾸로 부담을 덜 수가 있었다. 후반기에 했더라면 그동안 쌓은 성과의 일부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번 일로 타격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충분히 만회해도 되었다. 내게는 혁신적이면서도 대중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책들이 있었다. 중소상인들이 환영할 만한 내용의 5분자유발언을 미리 해둔 것도 결과적으로는 잘 둔 포석이었다.

 

나에게 쓸데 없는 참견을 일삼고 트집을 잡던 목소리들도 이 사건 이후 잦아들었다. 박정희라는 성역을 건드린 정치인에게 무슨 압력이 통하겠는가. 어느 시의원은 회식 자리에서 내게 거 참 박대통령 예산을 건드리다니. 자네 뱃심 하나는 구미 최강일세”라며 잔을 권했다.

Posted by 김수민

나의 첫 5분자유발언은 일단 동료 의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의원들 대다수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재벌마트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들도 여러 중소상인 이웃을 두고 있었고 자신이 중소상인 출신인 사례도 많았다. 이것은 중앙 한나라당과 지방 한나라당의 중대한 차이점이었다. 본회의가 끝나고 김상조 의원은 더 세게 갔어야지! 이마트 불매운동다고.”라고 말했다. 상인 출신인 김재상 의원(선주원남, 도량)내가 해야 할 발언인데 김 의원이 해버렸네라며 웃었다.

 

나는 5분자유발언 이전에 각오한 바가 깊었다. 지역 여론은 대형마트 입점 찬성 쪽이 훨씬 우세했다. 더구나 젊은층의 찬성률이 높았다. 젊다고 다 개혁적인 건 아니지만 개혁층을 포함한 젊은층이 대형마트를 선호한다는 것은 내게 정치적인 부담을 주었다. 구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정말로 5분자유발언 뒤에 내게 비판이 들어왔고 개중에는 욕설까지 동원된 경우도 있었다.

 

반면 상인층에서는 환영 의사가 많았다. 다행히 시운이 따라 상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에 돌입한 통 큰 치킨논란 덕분이었다. 소비자들도 점점 중소상인들도 먹고 살아야지 않겠느냐며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운 좋게 시대를 반발짝 앞서 나갈 수 있었다.

 

나의 5분자유발언을 접한 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왜 하필 본회의 첫 발언이 그 주제였냐며 완곡하게나마 이견을 표했다. 올바르지 못한 지적이었다. 노동 문제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듯 중소상인 문제는 중소상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노총이야말로 신음하는 골목상권을 돌보고 재벌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시위의 전면에 나서야 할 일이었다. 노조도 노동자가 자꾸 해고되거나 비정규직화되면 소비가 위축되어 상인들이 힘들어진다고 주장하지 않던가. 중소상인과 노동자의 이익이 부딪힐 때도 있다. 그러나 재벌마트 문제는 지역경제를 파괴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상인들의 상당수는 취업이 어려워 창업했거나 노동자로 일하다가 해고된, 노동자의 이웃이고 친구이고 형제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 나의 5분자유발언을 덮을 만한 사건을 내가 일으키고 만다.

 

20109월 회기에는 2009년도 결산 심사와 함께 2010년도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가 있었다. 구미시의회는 본디 매년 7월에 전년도 결산 심사를 했으나, 선거를 거쳐 의회가 다시 구성되는 해에는 개원 직후인 7월에 결산 심사를 할 수 없어 9월로 미루었다. 의회에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예결특위는 상임위별 예비심사를 토대로 심사를 벌이나 상임위 논의 결과에 구애받지는 않았다. 또 한편 예결특위의 결정은 본회의에서 수정하지 않는 게 관례라서 예결특위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추경예산은 본예산에서 감액이나 증액 또는 추가로 신설되는 예산이었으므로 규모가 매우 작았고 다선 의원들은 굳이 추경예산 심사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려는 특징이 있었다. 다 쓴 재정을 두고 벌이는 결산 심사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의원들이 많았다. 자연히 나를 비롯해 초선 의원들이 대부분 이때 예결특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결산 심사라 심혈을 기울였는데 결산 심사의 요령은 간단하다. 세 가지만 짚자면 첫째, 집행되지 않아 잔액이 많이 발생한 사업 내지는 전액 불용처리된 사업을 분석해야 한다. 왜 면밀하지 못하게 쓰였는지, 아예 집행조차 할 수 없었는지를 따지면서 사업의 타당성을 재고하기 위해서다. 둘째, 예산의 이용, 전용, 이체, 사용변경 등 용도가 변경된 사례다. 이런 용도변경 중에는 집행부 전횡의 결과도 있다.

 

셋째, 예비비다. 천재지변을 포함해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비하려 집행부가 긴급하고 전격적으로 지출되는 예비비 역시 집행부 전횡의 여지를 안고 있다. 가령 20108월에 구미시가 코리아오픈태권도에 6억원의 예비비를 써서 의회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예비비는 아무리 봐도 체육대회용으로 쓸 예산이 아니었다. 예산안에 잡아두지 않고 급하게 계획해서 집행하느라 예비비가 쓰인 것이다. 이 사실을 미리 입수한 의원들이 회기가 없던 8월 의원간담회에서 강력히 문제제기했었는데, 소문에는 나도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나왔다. 반대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다른 의원들 발언에 밀려 내가 발언할 기회가 없었는데도. 이 소식을 듣고 태권도계에 있던 중학교 동창이 찾아오기도 했다. 술 한잔 걸치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핏대를 세워 반대했다고? 그래야 했는데 못 그랬다. 언론보도 다 뒤져봐라. 회의록? 의원간담회라 없어. 태권도대회를 절대 못한다고 반대한 게 아니고, 예비비 집행 때문이다. 예비비를 그렇게 쓰면 되나? 이제 진짜 문제가 뭔 줄 알겠지?”

 

결산 심사는 이미 다 쓴 재정을 두고 벌어지기도 하지만, 부조리한 행정을 집중적으로 밝혀내는 행정사무감사가 11월 말로 다가와 있기도 했고 결산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이미 회계사, 교수, 전직 공무원, 시의원 1명으로 구성된 결산검사위원회가 모조리 밝혀 놓아서 재미가 없었다. 의원들은 예산 심사에 훨씬 더 큰 흥미를 가진다.

 

이때 추경예산심사에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었지만 시선을 온통 내게로 모으는 사건이 터졌다. 예산안을 검토하다 보니 문화예술담당관실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모제와 탄신제 예산을 발견했다. 나는 이런 행사도 국고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매해 개최하던 행사의 예산이 본예산안이 아닌 추가경정예산안에 들어있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졌다. 박 전 대통령이 잘못한 점을 말하라면 수십시간이 필요하지만 다 각설하고 찬반 논란이 뜨거운 인물을 일방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비민주적이었다.

 

그러나 이걸 막아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거기에 정열을 써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예결특위 위원이었으니 상임위 심사 이후에도 시간은 있었다.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나는 간단히 언급만 하고 삭감을 요망하지 않았다. 되돌아보니 그게 내게 쏟아질 공격을 더 줄이는 효과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상임위 심사가 끝나고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사안은 나의 모든 활동을 가려버리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였다. 탄신제 예산이 2009년을 기해 급격하게 늘어난 대목도 거슬렸다. 미래권력인 박근혜 의원에게 보내는 아부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예산 전액삭감이 아니라 예산 급증에 문제제기하고 늘어난 만큼을 삭감하자고 의원들에게 요구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그렇지만 마침내 내가 내린 결론은 정면으로 부딪치기였다. 나는 구미에서 나고 자라며 거의 세뇌식으로 박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역사 서적을 여럿 접하며 10대 초반에 이미 비판적 의견으로 돌아섰고 친척들하고도 불편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토론은 지속되어야 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결론을 내리고 몰아갈 일이 아니었다. 2010년대에 들어선 구미가 예전 같아서는 안 되었다. 새로 의회에 들어간 내가 칼을 빼드는 것은 숙명이었다.

 

예결특위 심사에서 나는 예산 전액삭감을 요망했다. 분위기가 경색되었다. 녹화방송을 지켜본 후배마저도 가슴이 떨렸다는 후문이다. 처음 집행부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가 나의 발언이 지속될수록 반응은 당황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국장과 과장의 모습은 나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논란이 엇갈리는 인물이다라는 이야기를 지나 명암이 있다고 하지만 그가 잘했다는 경제정책에도 명암이 있다고 덧붙이며 "이 사업은 지지자들이 할 일이지 지자체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구미가 남한의 평양인가?”라고 반문했다. ‘평양단어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다. 굳어버린 국장과 과장은 별다른 논리를 펴지 못한 채 구미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을 구미가 기념하는 건 당연하다는 요지의 발언만 하다가 토론이 끝났다.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