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 논란을 계기로 오히려 지역사회의 관용성을 느꼈다. 나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일각에 크게 괘념치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지만 양론이 있는 걸 인정해야 한다. 지자체 지원은 신중해야 했다거나 시의원이 예산을 다루면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거나 저런 시의원도 있어야 된다. 있다고 기념사업 예산이 곧바로 없어지나?”라는 등 한층 여유롭고 관대한 여론도 있었다. 논란은 내 활동을 훼방할 수 없었다. 나는 임시회가 끝나고 편안하게 추석을 맞이했다.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전술적으로 너무 강경하고 섣부르지 않았느냐는 지적은 있었지만, 나는 거꾸로 좀 더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야 했다는 사후 평가를 내렸다. 박정희 추모제와 탄신제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참석을 안 하면 보기 싫은 꼴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미시립체육관인 박정희체육관’, 도로명 주소인 박정희로등은 사정이 달랐다. 공공 시설이나 도로 명칭부터 비판하면서 이것이 교정되면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을 일부 인정할 수 있다고 대타협을 공세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었다. 최선의 경우에는 일말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에도 체육관조차 구미시민체육관이 아닌 박정희체육관을 고집하는 세력을 옹졸하고 편협한 집단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안타깝다.

 

나의 걱정거리는 다른 데서 찾아왔다. 학교무상급식 전선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9월 임시회가 끝나기 전 열린 의원간담회에서 유통축산과의 무상급식 추진계획을 보고받았다. 여기서 무소속 김정곤 의원(신평, 비산, 공단, 광평)이 반대 의견을 최초로 표명했다. 그가 보수 성향임은 알고 있었으나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 의원이라는 점에서 조금 낭패를 느꼈다. 김정곤 의원은 선거 당시 구미풀뿌리희망연대의 정책제안에 전적으로 수용한다고 답변했다. 정책제안에 학교무상급식이 끼어있음은 물론이었다. ‘공약 파기임을 지적하려다가 접었다. 반대 여론이 있으니 반대 의원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김정곤 의원이 하루는 정성껏 전자우편을 써서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는 이유를 밝힌 적이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부유층까지 무상급식을 해야 하느냐. 구미는 성장이 더 급한 도시고 거기에 예산을 우선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상급식은 무료 급식이 아니다. ‘무상은 상품으로 거래하지 않으며 공공적으로 비용을 부담한다는 의미다. 따질 것은 부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교육은 상품이어야 하는가, 아니어야 하는가?’학교급식은 교육복지냐, 식당에서 파는 것과 같은 상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무상급식이다. 김정곤 의원에 이어 반대에 가담한 윤종호 의원은 급식까지 교육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했으나, 그렇게 따지면 의원들이 회의를 멈추고 먹는 점심식사도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없으니 의회 경비로써가 아니라 사적으로 부담해야 했다.

 

학교 책걸상도 돈을 받고 팔지 않는다. 학교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이 무상급식 대신에 신경쓰자는 학교안전예산을 보자. 학교안전시설을 설치할 때 학부모님들은 돈을 내십시오. 다만 저소득층은 증명 서류를 떼오면 면제해드립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학교급식은 개별로 판매되지 않는다. 한꺼번에 밥을 지어서 학생들이 덜어 먹을 뿐이다.

 

이래도 고개를 젓는다면 간명한 사례를 들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군인들이 돈 내고 밥을 먹던가? 하물며 교도소에서도 죄수들이 급식값을 내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군인들과 죄수에 비해서도 차별을 받고 있었다.

 

저소득층부터 소득순으로 점차적으로 확대하자는 제안도 있다. 무상급식이 실시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이게 차선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 형편에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기준선을 사이에 두고 급식비 지출과 면제가 갈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은 조금도 합리적이지 않다.

 

학교무상급식은 초유의 관심사였고, 유통축산과 겸 의회 산업건설위원회 소관이었지만 교육 예산이기도 해서 상임위가 아닌 전체의원간담회에서 주로 토론을 진행했다. 그러나 내가 위에서 든 논리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았다. 토론이 붙을 만하면 급하게 식사하러 가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종결 지으려는 의원들이 있었고 의장단의 태도도 그랬다. 학교급식 토론 중에 자신들 먹을 식사를 고민하는 진풍경이었다. 분명한 무상급식론자였던 나와 김성현 의원도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러나 이런 인내에도 불구 찬물을 끼얹는 지역언론이 있었다. <경북문화신문>은 나와 김성현 의원이 학교무상급식을 주도하려다 다른 의원들의 반감을 샀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나는 학교무상급식 지원 조례안 초안을 작성해 의원 모두에게 메일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조례안을 대표발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의회 전반의 합의를 이룬다면 상징적으로 의장이 대표발의해도 되고 상임위를 떠나 찬성 의원 전원이 공통발의자로 서명할 수도 있었다. 특정 의원()이 아닌 상임위 차원에서 발의하는 위원회 발의 제도도 활용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는 산업건설위원이 아닌 내가 뒷전에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아무 상관 없었다. 내가 발의 의원이 아니더라도 학교무상급식을 관철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주민들게 보고하면 그만이다. 중대한 공약은 이행하는 데 가치가 있다.

 

그 보도는 어쩌면 실제 상황보다는 기자가 예측한 국면을 미리 당겨서 현실을 꾸며낸 산물일지도 모른다. 어떤 시민단체 간부는 의원 임기 개시 직후 내게 김수민 의원과 김성현 의원은 두 세달 지나면 의회내에서 고립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것이 관측을 넘어 현실 진단으로 등장한 것이 <경북문화신문>의 보도라고 보았다. 내가 이 보도를 비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경북문화신문> 기자는 웃으면서 그런 일이 있으면 즉각 연락해달라. 기사를 수정하겠다고 답했다. 나는 이런 행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기자가 남이 뭐라 한다고 기사를 내려서야 되겠는가. 그 밖에도 <경북문화신문>은 의회 관련 기사를 썼다가 의원을 대신해 압박을 가하는 의회사무국에 못 이겨 기사를 내리곤 했다.

 

학교무상급식은 다른 의원도 가세를 하게 되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나나 김성현 의원이 가려지는 데는 찬성 의원이 속속 등장하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의원 중 4명을 빼고는 나나 김성현 의원과 지역구가 달랐으니 무상급식 추진의 공을 빼앗길 염려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한편 당시는 지역사회를 총단결시킬 만한 이슈도 부상했다. 대구광역시는 자신들의 취수원을 구미 지역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것은 한꺼번에 많은 물을 끌어모아 멀리멀리 공급하는 광역상수도시스템에 대한 맹신이었고, 4대강파괴와 같은 대규모 토건사업과 같은 본질을 안고 있었다. 대구시가 맑은물을 얻으려면 대구와 그 인근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수질을 개선할 일이지 빨대만 길게 빼서 꽂을 일이 아니다. 취수원 이전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국기술연구원도 연구 용역에서 타당성 없음이라고 결론 내렸다. 갈수기 구미시의 수원 부족도 우려되었고, 이전 예상 지역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91일 구미시의회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범시민적으로 반대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관과 시민사회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진보 성향 2명의 의원은 <경북문화신문> 보도로 트집을 잡혔다. 나와 김성현 의원이 각자의 일정 탓에 대구취수원 이전 관련 토론회의 방청석에 앉지 못한 일이 있었다. 중대 사안이니 선약이 없었다면 참석했을 것이다. <경북문화신문>은 이를 두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실망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하필 토론 장소가 구미상공회의소였다. 구미상공회의소의 당선자 초청에 응하지 않은 의원들이었으니 토론 장소가 거슬려 불참했다고 여긴 탓일까. 진보 성향 의원을 비판한 익명의 관계자는 상공회의소 관계자, 그중에서도 당선자 초청을 거절할 때 내게 훈계를 늘어놓던, 그러고는 김수민 의원이 우리를 이렇게 빨리 실망시킬 줄 몰랐다고 여기저기 말을 퍼뜨리던 그 사람일 확률이 99%.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