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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20) "파업 안 하면 노사평화인가?"

남유진 시장의 답변에는 시종일관 두 가지의 논리가 엿보인다. 첫째, 노사 문제는 해당 기업에 맡기는 것이 좋다. 둘째, 산업평화 정착이 중요한데, 그 산업평화는 노사간 갈등이 없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나는 보충질문 순서에서 말했다. “'노사평화'라는 말이 있는데, 파업만 발생하지 않으면 '노사평화'인지, 파업이 발생하면 '노사평화'가 깨지는 것인지? 노사 이견을 억누르는 상태나 무노조 경영도 노사평화인가? '노사자율'이라고 하지만, 노조는 산별노조, 자본도 경총 등의 기구와 연관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노사자율에만 맡길 수 있는가?

 

남유진 시장: “어디까지나 기업의 문제는 기업의 문제다. 시장, 경찰서, 고용노동부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산업평화는 시민들이 많이 쓰는 용어다. 옛날 구미가 노사평화 부분이 많이 훼손되어 기업유치가 어려웠다. 지난 4년동안 구미에 노사분규가 단 한건도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자율의 협상에 맡겨야 한다. 다만 불법이나 한쪽의 힘이 너무 큰 것은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구미시에서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

 

김수민 의원: '평화''좋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노사분규가 없다고 해서 평화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갈등을 표현하는 것은 정상이다. 예컨대 무노조 경영을 하면 노사평화인가?

 

더 따져 물으려 했지만 허복 의장을 대리해서 본회의를 진행하던 김영호 부의장이 보충질문은 2회만 할 수 있다며 가로막았다. 회의 규칙에는 의제 관련 발언을 2번할 수 있게 되어 있을 뿐 보충질문을 2번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었다. 과거 회의 기록을 살펴보니 시정질문에 나선 의원들은 대개 답변을 듣고 보충질문 없이 마무리짓고는 했다. 준비와 논리의 부족이다. 보충질문에 대해 확립된 규정은 없었고 관례도 희박했다. 그러니까 김 부의장은 자의적인 의사 진행을 한 것이었다. 회의에서 의원의 발언 회수도 엄격히 제한된 것은 아니다. 의장의 허가 하에 추가로 발언할 여지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정질문이 끝나고 나서 파업만 안 하면 노사평화냐는 나의 발언이 대구MBC 라디오의 달구벌 만평에 소개되었다. 만평 성우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조차 무시당하고 있다는 개탄을 곁들였다. ‘달구벌 만평은 대구경북 주민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코너로 나도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등굣길에서 자주 들었다. 이날 시정질문을 방청한 어떤 시민은 산업평화는 시민들이 많이 쓰는 용어라는 남 시장의 설명에 대해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본다고 야유하기도 했다. 이 시민은 내가 질문을 마칠 때 손뼉을 치기도 했다(의회 내에서는 박수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지만). 그러나 남유진 시장은 이후에도 노사 갈등이 터질 때마다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시정질문에서 내가 다룬 주제는 두 가지가 더 있었다. 나는 몸이 아파 어린이집을 가기 어려운 환아들을 위한 간호보육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경기도 안성시가 한 요양병원의 소아과 시설을 만들어 한시적으로나마 운영한 전례가 있다. 안성시 어린이 간호보육센터는 일당 평균 1.2명 입원이라는 저조한 실적, 해당 병원의 운영 지속 실패 등으로 사업을 포기했지만, 영유아 수가 많은 구미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구미보건소측은 안성의 시설이 격리실과 안정실로만 구성되어 분리입원 치료가 어렵다며, 의료 사고 시 책임소재 불분명, 소아질환 특성상 보육보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점, 인근 병원 및 보육시설에 비해 지리적 접근성 부족, 보육센터에 상주하는 보육교사가 1회성으로 입소한 아동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 가장 큰 난제는 영유아의 낯가림 현상이었다. 집행부 입장은 센터 설치보다 아동 돌보미 사업의 활성화에 무게를 두었다. 돌보미가 환아 가정에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였다.

 

끝내 나는 보건소측 논리를 뛰어넘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고, 우선은 아동 돌보미 사업의 활성화를 주문하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이후에도 환아간호보육센터를 추진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다만 힌트를 구할 수는 있었다. 낯가림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공동체 운영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전후로 부모협동으로 설립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생겨나면서 간호보육센터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동체를 이루고, 평소 안면이 있는 어른의 손길을 받으면 영유아의 낯가림 현상도 완화될지 모른다.

 

당시 시정질문으로 다룬 또 하나의 주제는 나의 주요 정책이었던 주민참여예산제였다. 당시 예산 편성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보장한 지자체는 100여곳 수준이었는데 국회에도 참여예산제를 의무화하는 입법이 추진되어 힘을 얻고 있었다. 나는 각 지역 주민들의 지역회의, 예산안을 심의하고 편성하는 예산위원회, 예산위원과 공무원들이 예산을 조정하는 예산협의회, 예산제의 과정을 꾸려나가는 예산연구회, 시민 대상 예산교육을 담당하는 예산학교를 모두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위 시의원 재량사업비도 도마에 올렸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시범적 실험을 위해 주민편입사업비의 편성과 집행을 주민회의를 통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시의원이나 동장, 몇몇 유지들의 입김으로 좌우되던 재량사업비를 해방시키자는 얘기였다. 의원석에서 묘한 긴장감이 도는 것을 느꼈다.

 

답변에 나선 박상우 정책기획실장은 주민참여예산제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라며 울산 동구에 벤치마킹을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고무적인 답변이었다. 울산 동구는 선도적으로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한 지자체로 그 과정 역시 가장 심도 있는 지자체로 꼽혔다. 이를 도입한 이갑용 전 구청장도 저서 <길은 복잡하지 않다>로 각별한 자부심을 내비친 바 있었다.

 

도입하는 단계에서 준비도 할겸 소규모 예산이나 부문별 예산에 대해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실험해보는 방안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년 3월말까지 조례제정과 시행규칙이 완료되고 단계적으로 절차를 거치려면 상당히 시기적으로 급박하다. 다만 제도화가 되기 이전에 있을 수 있는 예산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주민참여예산제 시행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지역회의, 예산연구회, 예산협의회, 예산위원회 등을 다 거치는 유형, 둘째, 예산위원회 중심으로 진행하는 유형, 셋째, 조례에 '할 수 있다' 정도로 정리하고 지자체 단체장의 재량에 많이 맡기는 유형이 있다. 이중에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행안부 표준조례안에 맞춰서 최상의 수준으로, 여러 기구가 다 망라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주민에게 예산 편성권을 돌리는 참여예산제에 관해서는 세 부류의 세력이 훼방할 위험이 있었다. 예산 편성권을 쥔 집행부,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해왔던 지방의원들, 그리고 관변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던 지역 토호 및 단체 간부들이다. 세 번째 부류는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방해할 실력은 갖추지 못해서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행부가 나서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니 걸림돌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시정질문이 끝나고 남유진 시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KEC 문제에 대한 추가 설명을 겸해 차 한잔 하자는 이야기였다. 본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지역구 사무실로 돌아온 탓에 면담에는 응하지 못했고 통화만 했다. 남 시장은 앞으로 일본 기업 유치를 해야 하는데, 파업이 터지면 그들이 싫어한다고 말했다. 일단 터져버린 파업은 어쩔 텐가, 실소가 나왔다. “금속노조 구미지부장 분신 직전에 구미경찰서와 사측이 작전을 짰다는 정황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구미시도 유의하셔서 행동하기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또 남 시장은 주민참여예산제는 반드시 제대로 실시한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