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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15) "자네 뱃심 하나는 구미 최강일세"

임기를 걸고 싸우겠다는 나에 이어 예결특위에 들어온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이 나보다 조금 온건한 논조로 나를 거들었다. 시가 주최할 행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심사가 끝나고 나서 문화예술담당관실 과장이 찾아왔다. 그는 저도 70년대 학번이고 유신 반대 시위도 하고 그랬습니다며 옛날을 회고하더니 그래도 구미에서는...”을 되풀이했다. 나는 그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지역사회 기득권세력과 시장과 의원들이 만든 작품인데 과장급 공무원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동시에 나도 삭감 요망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평행선이었다. 그 뒤로도 문화예술담당 과장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저한테 이러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계수조정에서 의원들 뜻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그 이튿날 의회 전문위원실 과장과 이명희 의원이 시청앞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들자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내 어머니뻘쯤 되는 분이었다. 다들 걱정돼 죽겠다고 했다. 전문위원실 과장은 의원님 의견에 제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앞으로 닥칠 풍파가......”라며 애처롭다는 표정이었다. 식사를 들고 있는데 갑자기 담당 국장이 불려나왔다. 그도 내가 자리에 있는 것을 모르고 온 듯했다. 별 말 없이 술잔만 주고 받았다.

 

예결특위 마지막날 최종 계수조정을 위해 회의장에 들어갔더니 문화예술담당관실 특위를 비웠던 김상조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하필이면 내가 없는 사이에, 구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김 의원은 박정희 생가가 있는 상모사곡동을 지역구로 두고 있었다. 김 의원은 내가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이후로도 박정희 기념예산에 이의를 제기할 때에 부드럽게 타이르고자 했다. 내가 그런 발언을 할 때마다 김 의원은 곤경을 겪었다. 지역구 일부 주민들에게 김수민 의원이 그따위 말을 할 때 당신은 뭘하고 있었느냐고 타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랬던 것 치고는 나를 참을성 있게 대했다는 걸 인정한다.

 

계수조정에서 박정희 추모제 및 탄신제 예산 지원에 반대하고 나선 의원은 역시 나와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 뿐이었다. 민주당 김정미 의원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구미 민주당이 박정희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구미시의회는 표결을 하지 않는 관례가 있었다. 의회의 의견 분포나 찬반 의원을 알 수 없어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좋게 보면 단순 다수결보다 합의를 중시하는 관행이다. 의원 1명의 소신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분위기도 있어서 소수파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면 당초 삭감 요망을 불렀던 의원이 알아서 포기해야 했다. 당시 표결해보나마나 결과는 명약관화했다. 무기명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이 예산 삭감에 가담한다고 해도 11명 중 3표에 불과했다. 다른 의원들이 내게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표결을 해서 진 거나 진배 없었다. 뜻대로 하시라는 제스춰를 취했고, 추모제와 탄신제 예산은 통과되었다.  

 

의원 누구도 이 사건으로 나를 배척하지 않았다. 이점은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의회 밖으로 번진 파장은 임시회가 마무리되고도 가라앉지 않았다. 친박연합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분량이 짧아 전문 그대로 옮긴다.

 

우리 친박연합 구미시 당협의회에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이렇게 김수민 구미시의원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냅니다.

 

구미는 남한의 평양’ , ‘임기를 걸고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김수민의원은 구미시 의원직을 자진사퇴하라!

 

지난 913, 김수민 구미시 의원은 우리 구미의 자랑이요, 자존심인 박정희대통령을 무시하고 나아가 폄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 친박연합은 어떠한 조치를 불사하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김수민의원이 저지른 망언에 대해 명백한 사과와 함께 추후 이러한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확약 받아, 앞으로는 다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 김수민의원의 이 발언을 내일의 음해와 협잡을 차단하기 위해 일벌백계의 수단으로 삼는 바이다.

 

2010. 9.17.

친박연합 구미시 당협의회

 

경지라는 단어에 웃음이 났다. 내가 무술고수라도 되나. 경고 내용도 인터넷에 난무하는 순순히 응하시면 유혈사태는 없을 것입니다라는 투였다. 한줌의 위협감도 심어주지 못하는 이 성명서는 친박연합의 홍보용으로 씌어진 게 틀림 없었다. 친박연합은 친박연대와는 무관한 정당이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짝퉁 친박이라는 야유까지 들은 마당이었다. 구미 지역 한나라당은 조용했지만 친박연합은 이런 성명서 발표를 불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나는 날도 지나기 전에 곧바로 반격에 나서며 성명서를 작성해 보도자료를 전송했다. 제목은 <박정희 정권의 북한화와 경제파탄, 친박연합은 피해대중에게 사죄하라!>. 박정희의 유신 독재는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려고 했던 반역사적 프로젝트이며 박정희 정권기 한국경제는 불로소득 및 부동산 폭등, 졸속건설, 시장통제 실패를 겪었으므로, 친박연합이야말로 박 대통령 찬양을 멈추고 피해대중에게 사죄하라는 내용이었다.

 

본인도 요구하겠다. 우리의 경제발전을 위해 피땀 흘려 일했지만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잊혀져간 수많은 김개똥들에게 절하라. 억울하게 짓밟히고 죽어간 민주애국 영령들 앞에 고개 숙이라. 인혁당사건 희생자들은 판결을 받자마자 사형당하고 시신은 탈취되어 화장되었다. 그들이 우리 이웃 대구 사람들이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기 바란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 안에 답이 있다고도 한다. 박대통령의 고향에서 기념사업 정부지원을 반대하는 시의원이 나온 것은 필연이다. 역사적 발전의 이치다. 아무리 깊은 어둠도 촛불 하나에 깨진다. ‘임기가 아니라 양심과 일생을 걸겠다. 민주시민으로서, 또 어려서부터 박정희 문제에 접근했으며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해 역사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이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전할 것이다. 이 땅이 정녕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논리의 힘힘의 논리를 이길 것이다.“

 

한 지역언론에서는 친박연합 박세진 대 풀뿌리희망연대 김수민이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짰다. 나에게 아무 비난도 하지 않던 박세진 의원이 느닷없이 불려나온 형국이었다. 박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나는 김 의원 뜻에 동의하지 않지만 특별히 비판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친박연합에서 성명서를 낼 때도 나는 반대했다고 해명했다. 친박연합 소속의 다른 세 의원을 제쳐두고 유별나게 박 의원이 등장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후에 수소문해보니 성명서 발표를 주도한 사람은 친박연합 이수태 의원이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확증이 없었다. 있었더라도 이 의원에게 따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나의 행보에 박정희 추모제 및 탄신제 예산이 깎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아무 변화도 없었을까. 일단 내 자신에게 고무적인 변화가 생겼다. 구미시 안팎의 야권 성향 유권자들에게 이름이 퍼져나갔다. MLB 파크 같은 동호회에서도 거론되는 수준이었다. 어떤 분들은 신변이 걱정된다힘을 조금 더 쌓고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주판은 내쪽이 더 정확했다. 의정활동 초창기에 벌어졌기에 거꾸로 부담을 덜 수가 있었다. 후반기에 했더라면 그동안 쌓은 성과의 일부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번 일로 타격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충분히 만회해도 되었다. 내게는 혁신적이면서도 대중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책들이 있었다. 중소상인들이 환영할 만한 내용의 5분자유발언을 미리 해둔 것도 결과적으로는 잘 둔 포석이었다.

 

나에게 쓸데 없는 참견을 일삼고 트집을 잡던 목소리들도 이 사건 이후 잦아들었다. 박정희라는 성역을 건드린 정치인에게 무슨 압력이 통하겠는가. 어느 시의원은 회식 자리에서 내게 거 참 박대통령 예산을 건드리다니. 자네 뱃심 하나는 구미 최강일세”라며 잔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