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보고가 끝나고 산회하고 나니 나는 넓은 모래사장에 박힌 콜라병 꼴이 되었다. 구미시의회는 8월에는 회기를 잡지 않았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하나라도 더 많이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몰랐다. 의정활동을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한번은 주민자문회의를 소집했더니 딱 1명만 방문했다. 여름 휴가철이니 사생활을 찾고 좀 즐길 만도 했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인동동에 새로 동장이 부임해오면서 구역별로 통장 등을 모시고 주민간담회를 진행했다. 조금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나를 만나는 주민들이 구역별로 반응이 적잖게 달랐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지역구 다른 의원에 반비례하는 성향이 있었다. 어떤 구역의 간담회에서는 내게 말을 거는 사람조차도 드물었다.

 

마지막으로 간담회를 가진 구역의 통장들은 사뭇 달랐다. 내가 선거 때 후보자 본인 재산으로 80만원을 신고한 것을 기억하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학교무상급식을 꼭 실현해달라는 부탁이 많았다. 우연찮게도 그 자리에서 세자녀 학부모가 넷이나 있었다. “요즘에는 나라에서 혜택도 주지만 우리 애들은 이미 다 커서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여기서 나는 학교무상급식이 몇학년에서 실시되든 간에 세자녀 가정에는 꼭 적용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끝내는 지켰다.

 

그해 여름 나는 실책도 하나 범한다. 처음 열리는 삼족오아시아연극제를 앞두고서였다. 이 연극제는 2009년 구미에서 열린 전국연극제가 대성황을 이루며 힘을 받은 연극인들이 주도했다. 나도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축제가 지역 연극계의 일부를 배제하고 치른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에 나는 우려하고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이를 읽은 주최측 관계자 두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구미의 극단들을 통합해 만든 극단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 논평을 보고 연극제에 악영향이 있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역 극단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배제되었다고 하는 그 극단이 참여하겠다고 하면 신청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그들이 운영하는 소극장으로 초청해 견학도 시켜주었다.

 

그때도 눈치 챘고 추후에도 파악한 사실은, 그 극단과 배제되었다는 극단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다. 주최측 극단도 상대를 껴안을 수 없었고, 배제되었다고 주장한 극단도 선뜻 참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분열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종류의 분열이 아니었다. 섣불리 끼어들었다는 후회도 잠시 했다. 게다가 나는 연극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 입장이었다.

 

나는 연극제 자체에 누가 되지 않도록 곧바로 번복 논평을 냈다. 사실 주최측에서 내게 번복 논평을 요구한 적은 없다. 아마 나에게 잘 설명하면 될 일이라고만 여겼을 것이다. 나는 논평을 낸 후 잠깐동안이나마 빈축을 샀다. 막 출범한 제6대 구미시의회에 관심이 지극한 동시에, 나에게 허점이 없나 살피던 이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처음에 낸 논평이 맞는 이야기다. 왜 뒤집냐”고 훈계했다. 2억이 넘는 예산이 구미시에서 지출하기에는 꽤 규모가 크다며 아시아연극제는 구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하는 이들이 특히 그랬다.

 

배제되었다고 주장한 그 극단의 어느 관계자도 나중에 나를 맹비난했다고 한다. 내가 연극제 자체를 반대하지 않은 게 불만인 모양이었고, 또 내가 주최측 극단쪽에 선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두 극단의 갈등은 오래되었다는데 나로서는 누가 더 잘못했고 더 잘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 갈등을 치유할 수 없다면 다른 해법을 찾아서 각자 살아나가야 할 일이다. 아시아연극제를 주도한 극단은 옳고그름을 떠나 정치력과 수완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 극단도 기획과 실무로 차별화를 꾀해야 할 것 아닌가. 자신 편에 서지 않았다고 남의 편이라고 몰아붙이는 행태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후일 나는 지역사회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한 문화계 전문가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자문을 구했다. 그의 대답은 얼추 “첫 논평도 맞고 나중 논평도 맞다”는 얼핏 희한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솔직히 주최측 극단을 곱게 보지는 않는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국연극제는 성황리에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구미가 삼족오아시아연극제처럼 대규모 행사를 치를 만큼 연극쪽에서 준비가 된 도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극단의 분열도 거슬리는 부분이고요. 다만 한번 시작했으면 추진해보면서 감을 잡고 안착을 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조금만 부족하다 싶으면 반대하고 없애는 풍토로는 구미에서 제대로 된 축제는 영영 불가능합니다.” 제1회 삼족오아시아연극제는 무슨 액운인지 개막식에 비가 펑펑 쏟아져 버렸다. 그리고 연말 시의회 예산심사에서 된서리를 맞고 폐지를 맞이한다.

 

한편 KEC쪽은 상황이 악화되었다. 8월 3일 나는 의회에서 인동으로 들어가는 버스안에서 ‘오늘 KEC 농성장에서 자고 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더위에 지쳐 있어 KEC 정문 건너편 정류장에 내리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바로 4일 새벽 사건이 터졌다. 3시 30분쯤 사측 용역이 농성장에 난입해 조합원이 잠들어 있는 천막을 흔들며 폭언을 행사한 것이다. 조합원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자 다시 정문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나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폭력 사태를 비판했다. 노조가 사측에게 제시했던 단체협상에 들어 있었던 “회사는 구미공장 발전과 지역사회 공헌 투자약속 미집행 등을 고려하여 신규 사업은 구미공장에 최우선 투자”라는 요구안을 예로 들며 노조 활동은 지역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순기능을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나는 구미 경찰서에도 공문을 보냈다. KEC 노조는 당시 철저한 비폭력 투쟁을 전개중이었으므로 공권력이 함부로 농성장을 침탈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 폭력사태를 일으킨 용역과 그들을 고용한 사측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용역의 폭력이 재현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그랬더니 담당 경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공문 내용은 좋다. 참고하겠다. 그런데 왜 전화도 한통 안 주고 공문부터 보내느냐.” 맞대응하지 않고 “폭력사태가 없도록 해달라”고만 하고 끊었다.

 

나쁜 일은 또 있었다. 7, 8월경 한 달 남짓한 기간에 구미시 공무원 3명이 잇달아 돌연 사망했다. 사인은 명백했다. 3명 모두 6급 계장급 공무원으로 업무피로도도 높고 다른 직원에 비해 나이도 많았다. 나는 “공무원이 힘들어야 시민이 행복하다”는 남유진 시장의 모토를 새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8월 중순 나는 기획행정위원회 위원들과 연수를 다녀왔다. 해외도 아니고 국내였지만 처음에는 심경이 불편했다. 의원 연수에는 의회공통경비가 소요되기에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회의 중간에 정회를 하고 의원들끼리 갖는 중식도 껄끄러웠던 초선 의원이었다. 하지만 자리에 자꾸 빠지면 원내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 연수는 같이 가기로 했다. 행선지는 춘천과 원주였다. 양 도시의 시의회를 방문해 거기는 어떻게 의회를 운영하는지 살피고, 춘천에서 엄청나게 크게 조성된 체육시설과 원주의 박경리문학관을 다녀왔다. 내게는 큰 참고가 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의원들은 아닐 수 있으니 존중했다. 다만 그냥 놀러가는 것만 같아서 찜찜했다.

 

나도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연수에 너그러워졌다. 의원들도 사람이라 직장인들이 회식하고 엠티를 가듯 어울려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시민들도 이렇게 생각해줄지는 의문이지만. 시민들이 의원 연수에 부정적인 것은 연수 자체에 반대한다기보다 지방의원과 지방의회로 인한 효능감을 그리 느껴보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리고 설령 의회로 인해 시민에게 이로움이 생겼다 해도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너무 드물다.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