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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11) 보육교사처우개선비 두고 신경전

나는 총무과 업무보고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총무과에는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교육지원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교육정책은 나의 기획행정위 활동 중심에 있었다. 학교무상급식, 학습준비물비 및 교복비 지원 등 교육복지에서부터 고교평준화 등 대안적 교육담론을 지원하는 일까지에 목표를 두었다.

 

교육지원계가 총무과에 속한 사정은 조금 우습다. 공무원의 후생복지를 담당하는 총무과는 직원 교육도 맡고 있었는데, 직원 ‘교육’을 맡은 김에 학교 교육지원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주요 공약이었던 무상급식 추진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 경북 지역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 치고는 비교적 어렵게 재선된 남 시장은 선거를 치르자마자 “시민단체 요구사항 중 학교무상급식과 주민참여예산제,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채 6대 구미시의회가 출범하면서 시의원들도 거의 모두 언론사 인터뷰에서 학교무상급식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반대 입장에 가까웠던 윤영철 의원도 “그게 가능하냐”는 투였지 “반대한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시민 여론이 먹힌 결과였다.

 

학교급식은 그런데 유통축산과 소관이었다. 농축산물 공급을 유통축산과가 담당하는 탓이었다. “애들이 가축이냐”는 풍자성 농담도 있었다. 나는 무상급식 등을 시행하려면 학교급식 또한 ‘교육’ 영역이므로 총무과 교육지원계로 일원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밖에도 방과후돌봄학교의 체계화, 체험적 학습활동 지원 등을 주문했다.

 

사회복지과 업무보고에서는 보육교사에게 시가 지급하는 처우개선비가 쟁점이 되었다. 구미시는 이전까지 경북 다른 시군보다 낮은 보육교사 처우개선비를 지급하고 있었고, 정부지원대상이 아닌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교사의 처우개선비는 더 낮았다. 선거 충격 때문인지 구미시는 정부미지원시설 보육교사의 처우개선비를 월 1만원에서 3만원으로 올렸으나, 포항 8만원, 김천 7만원, 경주 5만원에 비해서는 낮았다. 보육교사 인건비는 사립의 경우 해당 어린이집이 노력해서 올릴 일이기는 하나, 지자체도 일익을 담당하는 게 옳았다. 그러라고 지급하는 것이 보육교사처우개선비였다. 나는 의정활동 기간 내내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며 보육교사 처우개선이 가장 시급한 보육정책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날 사회복지과장은 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식언도 있었다. 우리보다 처우개선비가 훨씬 높은 포항의 경우 “시장 친척이 어린이집 원장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공개석상에서 피해나가듯 답변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설을 흘려도 되는가?’ 내 눈에서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겨졌다. 나는 이렇게 응답했다. “오히려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 ‘포항하고 구미에 보육지원에 따라서 선거 득표율의 차이가 생겨났다’.” 보육교사 처우개선비가 가장 낮은 구미 지역의 시장이 다른 지역 시장, 군수보다 낮은 득표율을 받았음을 비꼰 이야기였다. 며칠 뒤에 어느 어린이집 관계자가 “김 의원, 우리한테 스타로 떠버렸네”라고 귀띔했다. 저 장면을 어느 보육시설 관계자가 어린이집연합회 홈페이지에 퍼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이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게 된 계기는 좀 다른 데 있다. 이것이 회의 석상에서 집행부와 주고받은 최초의 공방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기념사업에 대해서도 첫 토론이 있었다. 문화예술담당관실 업무보고에서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이 새마을운동테마공원과 중첩되어 있는데 일원화하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질의했고, 평가가 이리저리 갈리는 박 전 대통령에 비해 박상희 선생(박 전대통령의 형) 같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념사업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마침 그즈음 박상희 선생의 묘비가 제막식을 가진 참이었다. 그밖에도 박 선생의 부인이었던 조귀분 선생,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허형식 선생, 테러노선의 독립운동가 이내성, 장진홍 선생 등을 거명했다. 해당 부서장은 “해당 기념사업은 사실상 보훈처에서 하고 있다”고 약간 발을 뺐다. 넌센스였다. 박정희 기념사업과 관련 행사는 문화예술담당관실에서 벌이면서 독립운동가 기념사업은 왜 정부 보훈처 소관이기만 한 건가. 불세출의 지도자 여운형 선생마저 공식적으로 기념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부가 움직이기 전에 지역사회가 기념사업을 벌여야 했다. 참고로, 박상희, 조귀분, 허형식, 이내성, 장진홍 선생은 모두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다.

 

나는 첫 업무보고를 하면서 정치가 여 대 야의 싸움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단체장이 의원들 가운데서 나오는 의회중심제와 달리 (중앙정부로 치면 대통령제격인) 집행부-의회 기관대립형에서는 여 대 야 이상으로 집행부 대 의원(또는 의회)이 중심구도가 된다. 한나라당이 다수파라는 구미 정치 현실도 오히려 같은 한나라당인 단체장과 의원끼리 싸우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다수파는 다수이므로 내부에서 쪼개지기 쉬운 법이다. 업무보고에서 엿본 바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해서 한나라당 시장이 주도하는 집행부를 감싸지는 않았다.

 

살벌한 풍경도 펼쳐졌다. 어느 다선 의원은 체육진흥과장을 그야말로 이리저리 닦아버렸다.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체육진흥과장도 어쩔 줄 몰라 했다. 한편으로는 그 다선 의원도 대단하다 싶었다. 중간중간 안경도 놔둔 채로 회의장 밖으로 나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던 그가 들어오면 질문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가며 집행부를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문의해가며 포스트 잇도 붙여가며 회의를 준비한 나로서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다 나도 2년쯤 지나서는 업무보고의 경우 보고서를 일독했고 깊이 준비하지 않아도 토론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파악되는 업무가 있는 데다가 설령 처음 보는 사업이라도 나름대로 읽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한편 나는 7월 첫달에 공약 달성이라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것도 그해 6.2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에 남유진 집행부가 내놓은 작품이었다. 영유아 무상예방접종이었다. 원래 국가필수 영유아 예방접종은 보건소에서만 무상으로 이뤄졌었다. 보건소에서 집이 먼 사람들에게 불편했고, 보건소 앞에 줄이 늘어서는 것은 다반사였다. 구미시는 2011년 1월부터 이것을 지정 민간병의원에서도 무상접종하도록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적용 대상은 만12세 이하 어린이 및 영유아였다. 영유아 무상예방접종은 내가 선거에서 내건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였고, 아이 부모 표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예산이 10억을 갓 넘기는 수준이라 집행부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농반진반으로 “나는 당선자 시기에도 공약을 하나 지켰다”라고 밝히고는 했다. 나는 선거기간에 ‘세종시 수정안, 수도권 규제완화, 낙동강공사’를 구미의 ‘3대적’으로 규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행정도시인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바꾸는 방안으로, 충청권의 강력한 반발 여론에 휩싸였지만 실상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도시는 구미였다. 충청권에 기업도시가 들어서면 경북 내륙의 구미공단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수도권규제완화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나는 환경파괴는 기본이고 준설토에서 날리는 먼지로 공장까지 위협하던 낙동강공사까지 포함시켜 ‘3적’으로 지목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선거 당시 큰 화두였다. 남유진 시장을 비롯해 구미 지역 한나라당은 우물쭈물했다. 이명박 정부가 한나라당이었기 때문이다. 선거 막판 나는 “구미 한나라당은 서울 한나라당을 못 이긴다”며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반대되는 성향의 후보를 뽑아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외쳤다. 선거 결과 충청권은 물론 경북 구미 같은 지역에서도 한나라당이 쇠락하자 그해 6월 국회는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