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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13) 첫 5분자유발언은 '재벌마트 규제'

연수에서 돌아오는 길 시민만족과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마트 동구미점 행정재판 선고 결과였다. 이마트 동구미점은 지역 중소상인들의 반발로 인동 지역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구미시도 이마트 동구미점이 산업단지 지원시설로 볼 수 없어 규모를 축소하라는 취지에서 건축허가 반려조치를 취했었다. 동구미점의 위치는 임수동(진미동 내) 구미제3국가산업단지였다. 또 구미시는 반려조치 사유로 교통 체증으로 인해 부지 부근 도로를 넓혀야 하고 교통섬과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직접적으로 건축을 불허하기 힘든 처지에서 그나마 지자체로서 최선을 다한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북도의 교통영향분석과 개선대책 심의에서 도로 확장 방안은 삭제되었었고 심의에서 지적되지 않은 교통섬 설치 등의 개선 대책을 추가 요구하며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건물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입주기업체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도, 공익상 필요에 의한 적법조치라는 구미시의 주장도 이유 없다는 것도 주요 판결 내용이었다.

 

구미시는 항소에 나섰지만 전망은 어두웠다. 당시의 법규로는 재벌마트를 규제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다. 이마트 동구미점이 들어오더라도 향후에 재벌마트를 제어할 수단을 가져야 했다. 재벌마트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베스나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다. 대형마트 뿐 아니라 골목골목을 장악해 들어오는 SSM도 문제였다. 소비자에게는 편하다고들 하지만 소비도 생산자들이 건재해야 활성화될 수 있는 법이었다. 재벌마트로 매출이 급락하거나 문을 닫은 가게의 상인들은 재벌마트에서 소비하는 건 차치하고 지갑을 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중소상인들이 연합해 대형마트형 업체를 차리면 될 것 아니냐고도 한다. 그러나 이미 위협받거나 쓰러지는 중소상인들에게는 그럴 여력은 없다. 우리나라는 중소상인들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골목상권 위협은 국가적 경제 위기로 치닫기 마련이다. 또 문닫은 중소상인이 대형마트에 취직한들 불안정노동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단호한 규제가 필요했고 법이 미비하다면 행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간접 규제라도 휘둘러야 할 판이었다.

 

대개 인구 15만명 당 1개의 대형마트 또는 백화점이 적당하다고 한다. 구미의 인구는 40여만명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두어개면 된다. 백화점으로서의 위상이 점차 떨어진 모 백화점을 제외하더라도 2010년 당시 이미 3개의 재벌마트가 있었는데 그것도 광평동에 죄다 밀집해 있는 희한한 구조였다(만일 구미역 부근이나 봉곡동, 도량동 등지에 하나, 광평동이나 송정동, 형곡동, 공단동, 상모사곡동 등지에 하나가 있었다면, 인동동, 진미동이나 양포동 등지에 하나의 대형마트가 더 들어서는 게 일말의 합리성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201091일 열리는 임시회에서 5분자유발언으로 대형마트 및 SSM 규제를 집행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원래 의원은 본회의에 올라온 의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20분씩 최대 2회의 발언을 보장받았는데, 5분자유발언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주제로 본회의 단상에서 5분동안 발언할 수 있다. 규정에 따라 그 전날인 830일에 의장에게 발언요지서를 제출했다. 의회사무국 전문위원들은 내가 원고를 직접 써버리니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원고를 절대 타인에게 맡기지 않았다. 대신 전문위원들은 원고 내용을 참고하여 이런저런 자료를 취합해 모아주었다.

 

마침 830일은 산업유통단지의 상인대학 졸업식이었다. 산업유통단지는 옛 명칭 공구상가로 더 유명했으며 지역구에 속하는 임수동(진미동 내)에 위치하고 있었고, 상인대학은 경영기법과 의식혁신을 교육했다. 졸업식장에는 남유진 시장과 이수태 의원, 그리고 내가 내빈으로 참석했고 축사 기회가 주어졌다. 제도권 학교에서처럼 상인들은 졸업생 가운을 입고 있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자영업자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런데 노동시장유연화에 이어 대형마트 및 SSM의 폭풍 같은 공세가 몰려오고 있다. 다만 교육에 열심인 여러분들을 보니 안심이 된다. 저도 지역정치인으로서 중소상인들의 권익을 챙기겠다고 말했다.

 

원론적이었지만 축사가 괜찮았는지 주최측은 몇 달 뒤에도 어느 행사에 들러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 산업유통단지가 지역구에 있어서 이곳 상인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다. 얼마 뒤 어느 대기업에서 공구상가와 같은 업종의 자회사를 일감몰아주기용으로 부근에 차린다는 계획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했는데 해당 기업이 계획을 취소했다.

 

이튿날 91일 본회의 연단에 섰다. 5분자유발언이었던 만큼 내용 일부를 옮겨 본다: “안녕하십니까? 인동 진미 지역, 무소속 김수민 의원입니다. 5분자유발언의 기회를 주신 의장님과 선배 의원 여러분, 그리고 행복한 구미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계신 시장님과 집행부 관계공무원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원래 전문위원실에서 가다듬어준 인사말은 이보다 배로 더 길었는데 내가 다시 줄였다.

 

우리 구미시는 중소상인 보호라는 명분으로 임수동 이마트 동구미점의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한 바 있습니다. 이마트는 그러나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818일 대구지방법원 행정부는 이마트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법적 대응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먹성 좋은 공룡과 마주친 듯한 중소상인들의 처지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

더구나 기업형 슈퍼마켙, 이른바 SSM까지 구미에 계속 몰려들 예정입니다. SSM은 대형마트보다 규모는 작지만 동네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골목상권을 직접적으로 뒤흔듭니다.

 

해외 여러 나라가 영업시간과 일수, 판매품목의 제한 등으로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는 300제곱미터 이상 중대형마트 입점을 허가하는 절차가 엄격하며, 때문에 대도시 중심에도 대형마트를 보기 힘듭니다.

(...)

(...) 대구광역시는 지난해 조례를 제정해 대형마트의 도심 신규 진입을 규제하고, 광주광역시도 전통상업보전구역 지정, 대형마트의 등록기준 강화, 입점 시 상권영향평가 실시를 골자로 한 조례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 노원구청은 식품위생 점검을 통해 SSM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행정수단까지 동원했습니다. (...)”

 

구미시의회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시장님과 집행부 관계공무원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께서 지역 중소상인과 전통시장의 권익 신장을 추구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제 구미시 지방자치가 선도적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어서 나는 지역유통업의 상생 발전을 위한 상설협의체 구성, 재벌마트가 중소상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 실시, 영업일수와 시간, 판매품목과 수량의 제한 등 시중에 거론되는 수많은 대책을 거론했다. 이중에는 법적인 이유로 실현불가능한 정책도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식품위생점검이라는 간접규제를 더욱 강조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종반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 논리가 그대로 관철되는 동물의 왕국은 아닙니다. 시장경제 역시 소위 보이지 않는 손보다는 언제나 사회적·정치적인 원리에 의해 움직여왔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이런 이야기를 의회 회의장에서 할 수 있다는 데 감회가 새로웠다.

 

끝으로 시민들께도 말씀을 전했다. “대형마트나 SSM에서의 소비가 가지는 장점이 분명 있고, 그들 업체 역시 엄연히 지역경제의 한 축입니다. 다만, 작은 장사를 하는 이웃이 온몸으로 맞이할 경제적 혹한, 그리고 그것이 지역민생과 자기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도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