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기, 의정활동 4년

(14) 박정희 기념예산과의 숙명적 대면

나의 첫 5분자유발언은 일단 동료 의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의원들 대다수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재벌마트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들도 여러 중소상인 이웃을 두고 있었고 자신이 중소상인 출신인 사례도 많았다. 이것은 중앙 한나라당과 지방 한나라당의 중대한 차이점이었다. 본회의가 끝나고 김상조 의원은 더 세게 갔어야지! 이마트 불매운동다고.”라고 말했다. 상인 출신인 김재상 의원(선주원남, 도량)내가 해야 할 발언인데 김 의원이 해버렸네라며 웃었다.

 

나는 5분자유발언 이전에 각오한 바가 깊었다. 지역 여론은 대형마트 입점 찬성 쪽이 훨씬 우세했다. 더구나 젊은층의 찬성률이 높았다. 젊다고 다 개혁적인 건 아니지만 개혁층을 포함한 젊은층이 대형마트를 선호한다는 것은 내게 정치적인 부담을 주었다. 구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정말로 5분자유발언 뒤에 내게 비판이 들어왔고 개중에는 욕설까지 동원된 경우도 있었다.

 

반면 상인층에서는 환영 의사가 많았다. 다행히 시운이 따라 상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에 돌입한 통 큰 치킨논란 덕분이었다. 소비자들도 점점 중소상인들도 먹고 살아야지 않겠느냐며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운 좋게 시대를 반발짝 앞서 나갈 수 있었다.

 

나의 5분자유발언을 접한 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왜 하필 본회의 첫 발언이 그 주제였냐며 완곡하게나마 이견을 표했다. 올바르지 못한 지적이었다. 노동 문제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듯 중소상인 문제는 중소상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노총이야말로 신음하는 골목상권을 돌보고 재벌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시위의 전면에 나서야 할 일이었다. 노조도 노동자가 자꾸 해고되거나 비정규직화되면 소비가 위축되어 상인들이 힘들어진다고 주장하지 않던가. 중소상인과 노동자의 이익이 부딪힐 때도 있다. 그러나 재벌마트 문제는 지역경제를 파괴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상인들의 상당수는 취업이 어려워 창업했거나 노동자로 일하다가 해고된, 노동자의 이웃이고 친구이고 형제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 나의 5분자유발언을 덮을 만한 사건을 내가 일으키고 만다.

 

20109월 회기에는 2009년도 결산 심사와 함께 2010년도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가 있었다. 구미시의회는 본디 매년 7월에 전년도 결산 심사를 했으나, 선거를 거쳐 의회가 다시 구성되는 해에는 개원 직후인 7월에 결산 심사를 할 수 없어 9월로 미루었다. 의회에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예결특위는 상임위별 예비심사를 토대로 심사를 벌이나 상임위 논의 결과에 구애받지는 않았다. 또 한편 예결특위의 결정은 본회의에서 수정하지 않는 게 관례라서 예결특위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추경예산은 본예산에서 감액이나 증액 또는 추가로 신설되는 예산이었으므로 규모가 매우 작았고 다선 의원들은 굳이 추경예산 심사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려는 특징이 있었다. 다 쓴 재정을 두고 벌이는 결산 심사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의원들이 많았다. 자연히 나를 비롯해 초선 의원들이 대부분 이때 예결특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결산 심사라 심혈을 기울였는데 결산 심사의 요령은 간단하다. 세 가지만 짚자면 첫째, 집행되지 않아 잔액이 많이 발생한 사업 내지는 전액 불용처리된 사업을 분석해야 한다. 왜 면밀하지 못하게 쓰였는지, 아예 집행조차 할 수 없었는지를 따지면서 사업의 타당성을 재고하기 위해서다. 둘째, 예산의 이용, 전용, 이체, 사용변경 등 용도가 변경된 사례다. 이런 용도변경 중에는 집행부 전횡의 결과도 있다.

 

셋째, 예비비다. 천재지변을 포함해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비하려 집행부가 긴급하고 전격적으로 지출되는 예비비 역시 집행부 전횡의 여지를 안고 있다. 가령 20108월에 구미시가 코리아오픈태권도에 6억원의 예비비를 써서 의회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예비비는 아무리 봐도 체육대회용으로 쓸 예산이 아니었다. 예산안에 잡아두지 않고 급하게 계획해서 집행하느라 예비비가 쓰인 것이다. 이 사실을 미리 입수한 의원들이 회기가 없던 8월 의원간담회에서 강력히 문제제기했었는데, 소문에는 나도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나왔다. 반대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다른 의원들 발언에 밀려 내가 발언할 기회가 없었는데도. 이 소식을 듣고 태권도계에 있던 중학교 동창이 찾아오기도 했다. 술 한잔 걸치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핏대를 세워 반대했다고? 그래야 했는데 못 그랬다. 언론보도 다 뒤져봐라. 회의록? 의원간담회라 없어. 태권도대회를 절대 못한다고 반대한 게 아니고, 예비비 집행 때문이다. 예비비를 그렇게 쓰면 되나? 이제 진짜 문제가 뭔 줄 알겠지?”

 

결산 심사는 이미 다 쓴 재정을 두고 벌어지기도 하지만, 부조리한 행정을 집중적으로 밝혀내는 행정사무감사가 11월 말로 다가와 있기도 했고 결산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이미 회계사, 교수, 전직 공무원, 시의원 1명으로 구성된 결산검사위원회가 모조리 밝혀 놓아서 재미가 없었다. 의원들은 예산 심사에 훨씬 더 큰 흥미를 가진다.

 

이때 추경예산심사에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었지만 시선을 온통 내게로 모으는 사건이 터졌다. 예산안을 검토하다 보니 문화예술담당관실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모제와 탄신제 예산을 발견했다. 나는 이런 행사도 국고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매해 개최하던 행사의 예산이 본예산안이 아닌 추가경정예산안에 들어있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졌다. 박 전 대통령이 잘못한 점을 말하라면 수십시간이 필요하지만 다 각설하고 찬반 논란이 뜨거운 인물을 일방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비민주적이었다.

 

그러나 이걸 막아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거기에 정열을 써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예결특위 위원이었으니 상임위 심사 이후에도 시간은 있었다.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나는 간단히 언급만 하고 삭감을 요망하지 않았다. 되돌아보니 그게 내게 쏟아질 공격을 더 줄이는 효과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상임위 심사가 끝나고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사안은 나의 모든 활동을 가려버리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였다. 탄신제 예산이 2009년을 기해 급격하게 늘어난 대목도 거슬렸다. 미래권력인 박근혜 의원에게 보내는 아부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예산 전액삭감이 아니라 예산 급증에 문제제기하고 늘어난 만큼을 삭감하자고 의원들에게 요구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그렇지만 마침내 내가 내린 결론은 정면으로 부딪치기였다. 나는 구미에서 나고 자라며 거의 세뇌식으로 박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역사 서적을 여럿 접하며 10대 초반에 이미 비판적 의견으로 돌아섰고 친척들하고도 불편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토론은 지속되어야 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결론을 내리고 몰아갈 일이 아니었다. 2010년대에 들어선 구미가 예전 같아서는 안 되었다. 새로 의회에 들어간 내가 칼을 빼드는 것은 숙명이었다.

 

예결특위 심사에서 나는 예산 전액삭감을 요망했다. 분위기가 경색되었다. 녹화방송을 지켜본 후배마저도 가슴이 떨렸다는 후문이다. 처음 집행부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가 나의 발언이 지속될수록 반응은 당황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국장과 과장의 모습은 나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논란이 엇갈리는 인물이다라는 이야기를 지나 명암이 있다고 하지만 그가 잘했다는 경제정책에도 명암이 있다고 덧붙이며 "이 사업은 지지자들이 할 일이지 지자체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구미가 남한의 평양인가?”라고 반문했다. ‘평양단어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다. 굳어버린 국장과 과장은 별다른 논리를 펴지 못한 채 구미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을 구미가 기념하는 건 당연하다는 요지의 발언만 하다가 토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