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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상희-조귀분 선생 추모비 제막식

7월 15일 오늘 상모동에서 독립운동가 박상희-조귀분 부부 추모비의 제막식이 있었다. 사정상 불참했지만 뜻깊은 행사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몇몇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박정희 생가를 찾았다면, 나는 출마를 며칠 앞두고 박상희-조귀분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그분들은 내게 구미 진보진영의 대선배들이다.

박상희 선생은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에서 언론활동을 폈으며, 선산청년동맹과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박 선생은 원래 칠곡 약목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의 이주와 함께 상모동에 거주하게 되었고, 김천 지역 출신의 조귀분 선생도 박 선생과 결혼해 구미에 정착했다. 조귀분 선생 역시 지역사회에서 저명한 독립운동가였으며, 신간회와 짝을 이루는 여성단체 근우회에서 활동했다.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는 전양자 씨가 나이들었을 적의 조귀분 역으로 분했다. 박상희 역은 김상중 씨였다. 두 사람을 중매시켰으며 훗날 월북과 남파를 거쳐 사형된 황태성 역은 김갑수 씨가 맡았다.

그동안 박상희 선생은 박정희 대통령의 형님으로 기억되었으나 두 사람의 길은 완전히 달랐다. 박 선생이 지역사회운동에 전념하는 동안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 일군의 일권이 되었고, 박 선생이 죽은 후 박정희는 남로당에 들어간 것이 적발되어 시련을 겪고, 이후는 반공지상주의자로서의 행로를 걸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박상희 선생에 대해 대중 앞에서 털어놓은 바가 없다. 따라서 커다란 오해가 많았다. 아직도 인터넷에서는 박상희 선생이 남로당원이었다는 글이 떠돌지만, 남조선노동당은 박 선생 사후에 결성되었다. 또한 10월봉기 당시 선산경찰서 습격을 주도하였다는 통설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중재역할을 맡아 살상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나 박상희 선생의 유복자인 박준홍 씨, 박상희 선생 재조명에 노력하면서 이번 행사에서 선생의 발자취를 소개한 구미경실련 조근래 국장이 밝힌, "선생은 좌익이 아니었다"는 견해에는 세밀한 해석이 필요하다. 일제 말기 대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은 좌익 성향이었는데, 이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조선공산당 계열, 다른 하나는 온건사회주의 계열. 그동안 온건사회주의자들을 '진보적 민족주의자'라고 소개해왔으나, 이것은 색깔론에 근거한 오해와 공세를 피하기 위한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여운형이나 김두봉, 백남운, 장건상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민족독립을 당면과제로 두면서도 '근로인민대중'의 세상을 꿈꾸었다. 부르조아민주주의를 긍정하며 자본주의를 당장 전복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런 독립운동가들은 '중도'보다는 '좌익'에 가깝고 구체적으로는 '중도좌익'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조선공산당 가입경력이 없는 박상희-조귀분 선생 역시 그러하다. '좌익'에 덧씌워진 북한 독재와 공산주의자의 이미지 탓에 '좌익'이라는 낱말을 피하는 것이 전략적인 효용성이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왜곡된 역사의 흐름을 교정하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것 같다.

보통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김구, 윤봉길, 유관순, 김좌진 정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김구는 우익 진영의 대표자였고, 윤봉길은 김구와 함께 활동한 청년이며, 유관순은 그의 사상과 실천을 더 꽃피우기 전에 숨진 청소년이었다. 김좌진이 말년에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젖어든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은 너무 편파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족대표를 자임하였으나 친일로 기울어진 지주, 대자본가들이 장악한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헤게모니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구미 지역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독립운동 기념사업이 왕산 허위 선생에서 더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육사의 시에 나오는 '초인'의 모델이었던, 중국공산당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허형식 선생이 있었다. 기념사업이 약간이나마 발을 떼면서 알려진 장진홍 선생이 동구미 출신이다. 진평동 543번지에서 출생하여 인동장날 3.1운동을 일으켰으며, 친구 장진홍과 함께 광복회, 국제공산당 가입, 폭탄테러투쟁의 길을 걸었던 이내성 선생이 있다. 그동안 주류지향적인 반쪽 독립운동 기념사업에서 미처 기려지지 못한 분들이다. 오늘의 박상희-조귀분 선생 추모비 제막식은 온전하고 적실한 지역 독립운동 기념사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당연히, 구미 시 당국의 지원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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