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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는 박정희시가 아니다 (시사IN)

정치ㆍ경제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바꾼다고?
박정희 추모제와 탄신제에 예산을 펑펑 쓰는 도시다. 박정희시로 개명하자는 공약도 나왔다. 나는 끝까지 반대한다.
기사입력시간 [240호] 2012.04.26  09:14:17  조회수 1559 김수민 (구미시의원·녹색당)

“뭐 하는 분이세요?” “아 예, 시의원입니다.” “그래요? 어디 시의원이신데요?” “박정희시의원입니다.” “어머, 성함이 전직 대통령이랑 같네요. 근데 어느 지역 시의원이세요?” “박정희시의원이요.” “아뇨, 지역이 어디냐고요.” “박정희…” “참 나, 장난치세요?” “ㅠㅠ.”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가상 대화다. 경북 구미 지역의 한 총선 출마자가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개명하겠다’며 내놓은 공약을 풍자한 것이다. 또 다른 후보는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건립해 일자리 2만 개를 창출하겠다”라고 선언했다. 휴, 다행이다. “박정희-박근혜 쌍둥이빌딩을 지어서 일자리 4만 개를 창출하겠다”라고는 안 해서.

확실히 구미시 일부 특권층의 박정희 사모광적이다. 구미시 실내체육관 이름은 ‘박정희체육관’이다. ‘박정희로’는 박정희 생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까지 이어져 있다. 한때 박정희 지지자들은 박정희 동상을 구미역이나 고속도로 근처에 세우자고 주장한 적도 있다. 끝내 생가 부근으로 결정되었지만.


   
ⓒ뉴시스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거행되는 추모제. 구미시는 추모제뿐 아니라 탄신제에도 예산을 지원한다.


구미시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제뿐만 아니라 탄신제에도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탄신제 예산은 2008년에는 560만원이었는데 이듬해 6390만원으로 급증했으며 2012년에는 7500만원이다. 추모제 예산 700만원과도 크게 대비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경우 올해 11월께 있을 탄신제가 어떻게 치러질지는 명약관화하다.

나는 2010년 9월 추가경정예산 심사에서 추모제와 탄신제 예산의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삭감에는 실패했고 파장만 잠시 일었다. 내게 ‘사과 아니면 사퇴’를 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나는 더 공격적으로 임하면서 나름 기세를 올렸는데, 논전은 중단됐다. 나로 인해 현실이 바뀔 것도 아니니 ‘저쪽’에서는 그냥 놔두기로 한 모양이다.


젊은 노동자들은 관심도 없어

그렇다고 구미의 현실이 나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옛적 여느 곳처럼 농촌이었던 구미는 공단이 조성되고 노동자가 유입되면서 깊숙한 곳에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화 초창기에 취직한 시골 출신 노동자들이야 취업의 은혜를 박정희에게 돌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착된 공단에서 산업화 및 탈산업화가 겹쳐지며 일어나는 각종 노동문제, 문화적 욕구, IT 시대의 풍속들은 새로운 전선을 만드는 법이다. 오늘날 구미는 평균연령이 젊고 외지 출신이 절대다수인 도시가 되었다. 어느 구미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내 주변에 박정희 좋아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정확히 말해서 관심이 없거나, 특별히 지지할 이유를 못 느끼는 거죠.”

추모제 및 탄신제 예산의 전액 삭감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로 나는 ‘박정희’를 타이틀로 걸고 얼렁뚱땅 치러지는 행사, 특히 ‘국내외 석학’을 불러 ‘했던 이야기 또 하는’ 토론회 같은 예산은 ‘낭비를 막는 차원에서라도’ 의회에서 부분적으로 삭감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박정희 관련 예산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를 불쾌해하며 나에 대해 ‘그렇게 잘났으면 서울 가서 정치하지’라고 흉을 본다고 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전 끝까지 여기서 여러분과 아옹다옹 지내렵니다. 구미시 안에 박정희시가 있다고 할 수 있어도, 구미시가 박정희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말씀 더. 지방의원이 쿠데타로 지방자치 죽인 정치인을 비판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