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민주노동조합운동

장 조레스와 조봉암의 기일 1959년 7월 31일, 간첩 누명을 쓴 조봉암의 사형 집행이 있었다. 조봉암은 1950년대 이승만, 신익희, 조병옥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린 정치인이었다. 매캐한 포연냄새 사이로 '평화통일론'을 주창했고 독재여당과 보수야당과 달리 '피해대중'을 대변했다. 조봉암의 표묶음 앞뒤에 이승만 표를 놓고 부정개표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이로도 모자랐는지 정권은 조봉암의 사형을 감행했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당시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해방 후 옛 동료들과의 갈등을 겪고 전향했다. 조봉암은 자본의 전제와 계급의 독재(공산주의)를 모두 반대했다. 유럽의 사회주의인터내셔널과 비슷한 사회민주주의 노선이었다. 그러나 조봉암의 법살 뒤 사민주의 노선은 꺾였다. 군부 출신 독재정권의 치하에서 보수야당 이외의.. 더보기
KEC 사태, 사용자측 - 노동조합 양측 입장 보도 KEC 사측, “정도 경영 나설 것” 근로조건 관한 교섭은 언제든지 응할 계획 KEC가 직장폐쇄에 대한 회사의 입장을 밝혔다. 장기간 파업으로 인한 막대한 생산 차질과 영업 손실을 더 이상 감수할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러 불법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최후의 방어 수단인 직장 폐쇄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회사 사측은 노조의 요구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노조 전임자 처우의 현행 유지와 회사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 및 경영권에 관한 사항을 주된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은 노조 전임자의 경우 조합원이 500명 이상 999명 이하일 경우 3명을 규정하고 있으나 KEC노조가 전과 같이 7명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6월 29일까지 총 13일간에 걸쳐 전면파업을 강행했다는 .. 더보기
KEC 파업과 함께하겠습니다 6월 30일 낮 농성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용역 400명이 들이닥쳤더군요. 아주 젊은 분들이었습니다. 남자 300명, 여자 100명이었습니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하러 올 줄 몰랐다는 표정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들을 동원한 사람이 나쁜 거지요. 이명박 정부와 대자본은 노조전임자의 정당한 임무수행을 못하게 막는 노동법 개악안을 밀어붙였습니다. 지금 이것은 임금인상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특정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금의 행태는 이땅의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서민층에게 몰아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면적 탄압입니다. 못사는 사람은 조직되어서는 안 된다는 편협함에서 나온 겁니다. 전반적으로 노사정관계가 이러한 가운데 KEC에서 노동기본권 확보와 고용불안 해소가 되지 않으면서 지금의 사태까지 번져온 것입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