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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자라난 길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교 한국학), 김수민 후보를 응원하다 우리 한국사회의 큰 약점 중의 하나는 '머리'가 '몸통'보다 크다는 기형적 구조입니다. 주요시민단체들조차 주된 활동 무대는 서울, 즉 '중앙'이고, 지방에서는 뿌리가 약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사실 복지 증강이나 전인적인, 탈경쟁적인 교육 등은 무엇보다 '풀뿌리'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하는데도 말씀입니다. 김수민 씨는 구미 풀뿌리정치의 기수입니다. 그가 구미에서의 '풀뿌리' 강화에 큰 보탬이 되어 시의회에 입성할 경우에는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 정책의 대변자가 될 것입니다."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에 유학온 뒤 한국에 귀화하였습니다. 여느 한국인보다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으며, 흔들림 없는 태도로 복지구현과 진보정치를 주장해 왔습니다.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국립대학교의 한국학 교수로 .. 더보기
노회찬, 임종인 전 의원과의 인연 얼마 전 한 지지자 분께서 저에 대한 지지 선언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위치가 낯설기도 합니다. 지지 선언을 써보기는 했어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2004년 총선에서 탄핵역풍을 업고 수많은 초선의원들이 국회에 진출했습니다. 그 가운데 돋보였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임종인 변호사였습니다. 시종일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견지했고, 평화주의, 노동자 배려도 남달랐습니다. 비록 자신의 정당 내에서는 철저한 비주류로 머물렀지만 '국회의원은 여러번하는 게 아니라, 한번에 저렇게 하는 거'라는 본보기를 보여줬습니다. 그분이 위기에 처할 때면 저는 지지 칼럼을 쓰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임종인 의원 쪽에서도 저를 잘 알고 있었고, 홍보에 필요할 때마다 제 칼럼을 가져다 쓰셨습니다. 그러나 저.. 더보기
2008년의 교생실습 어제 선거운동에서는 가슴에 꽃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게 선거용 복장의 일환이라고 아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아마도 '스승의 날'을 깜빡하신 것 같습니다. 제 선거캠프의 인권특보는 교생 실습 시절 제 제자입니다. 2008년 5월, 모교인 구미고등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습니다. 제가 교육학과 역사학(한국사)를 이중전공했으므로 역사교사로서 임했습니다. 가르치게 된 과목은 2학년 선택인 '한국근현대사'였습니다. 한국근현대사는 제 전공 분야 가운데서 제가 가장 관심이 깊은 과목이기도 합니다. 가끔 제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정치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려는 유권자 분들도 만납니다. 물론 많은 것들을 배우고 갑니다. 유권자들의 지식이 만만치 않구나 하는 탄식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거의 모두가 제가 다 알고 있는.. 더보기
조중동, 황우석광풍과의 싸움 사람들은 여러 차례 다툽니다.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싸웁니다. 그러면서도 남의 '싸움'에는 양비론으로 일관하고 싸움 자체를 무시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려면 싸워야 합니다. 2001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가자마자 거대권력, 비대권력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한국의 언론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오욕의 역사에 분노하였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언론개혁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대학가 학생운동은 NL(민족해방파), PD(민중민주파)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멀리 존재하는 적'에 맞선다면서, 추상적 대의로 교조적 노선을 펼치기보다는 스스로 일어나 동조하는 학생들과 만나 신학생사회운동을 펼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NL, PD 노선이.. 더보기
문학특기자가 된 ROCK 매니아 어린이날입니다. 20여년 전 어린이날이 기억납니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회사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주최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백일장이 있었는데 처음 글짓기대회에 출전을 했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걸 괴발괴발 써내려갔는데 그만 장원을 타버렸습니다. 본격적인 칼럼니스트 활동은 스무살무렵부터 했지만, 과장을 섞어서, 제 글쓰기 인생은 어느덧 2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전 저는 문학특기자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제가 졸업한 대학을 보신 분들은 제가 고교 시절 공부를 꽤 잘했으리라고 생각하시지만, 당시 저는 성적 반영이 거의 없는 오로지 문학특기 하나로 인정받다시피하면서 합격했습니다. 고교 시절 저는 문학보다는 음악에 훨씬 관심이 컸습니다. 그중에서도 락음악, 그중에서도 70년대~90년대 초반의 하드록 계열 음악에 .. 더보기
10대 중반에 결정되는 것들 "인생에서 10대 중반에 결정되는 것들이 많다." 이런 말씀을 들으시면 많은 학부모님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저하고는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성적이 아닙니다. 중학교 때 잘해야 고등학교 때 잘하고 그래서 좋은 대학가야 성공한다는 그런 취지에서 말씀드리는 게 전혀 아닙니다. (올해 들어 대학진학률이 오랜만에 떨어졌습니다. 대학생 수의 증가와 일자리의 축소가 맞물리면서 우선 대학을 가기 어려우신 분들이 진학을 하지 않는 선택을 내린 결과입니다. 앞으로 이런 추세가 쭉 이어질 것이고, 대졸 불패 신화는 사그라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가치관' 문제입니다. 가치관이야 공부 열심히 하고 한눈 안 팔면 된다.. 더보기
고 김선명 상병의 모교에 다녀가다 이번 천안함 희생자인 고 김선명 상병이 금오공고를 나오셔서 모교에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역구를 잠시 나와 들렀는데 근조 화환이 눕혀져 있었고 분향소와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의원 예비후보란답시고 인사치레를 해야 하는가, 고민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어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선명 상병이 걸었을 교정을 조용히 따라 밟아 보았습니다. 슬픈체하지 않고 그가 그 시절 가졌을 그 기분으로... 금오공고. 제가 초등학교 배구부 시절, 학교에 체육관이 없어서 두달동안 동계훈련을 했던 장소입니다. 금오공고 동산으로 오르는 길은 체력훈련 장소로 쓰였습니다. 코치 선생님한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죽어라 뛰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도 힘들다 지칠 땐 저 동산 위 정자에서 땀을 닦았겠지요. 무력 없는 세상.. 더보기
수몰된 고향과도 같은... 경북도의원 구미 제1선거구에 출마한 백천봉 예비후보. 경북 교육의원에 출마한 박수봉 예비후보. 이 두분의 공통점은? 제가 어렸을 적 부활되어 치러진 지방선거에 나오셨던 분들입니다. 19년 전이지만 그때 기억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후보자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그분들과 저 사이에는 입장차가 꽤 크게 존재할 겁니다. 그래서 더 공교롭습니다. 백천봉 도의원은 당시에 무소속으로 나와 3위로 낙선을 하셨습니다. 1위는 구미의 사업가로 알려진, 지금은 고인이 되신 민자당 후보였고 2위는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하셨던 민중당 후보입니다. 당시 표가 꽤 나왔습니다. 지금은 다른 생업에 종사한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저런 데 올라가면 안된다. 도덕 시간에 그런 것도 안 배우나?" "냠냠, 도덕.. 더보기
건상이 아버지 요즘은 강변에 놀러가시는 분들은 주로 동락공원을 들립니다만 예전엔 강 건너편 도로를 이용 많이 하셨죠. 당시만 해도 강변도로에는 홍합을 하는 포장마차들이 쭉 들어서 있었습니다. 낙동강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추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일곱 살이었을 겁니다. 유치원인가 학원인가를 마치고 외삼촌과 그 친구 분을 따라나섰습니다. 두 분 다 당시에는 비혼이었죠. 지금의 저보다 더 젊으셨을 땝니다. 너무 꿈 같은 기억인데 물고기들이 점프해서 수면 위로 점프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돌을 던지면 물고기가 맞을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죠. 저는 1982년 구미에서 태어났습니다. 칠성주택이라고... 행정구역상으로는 원평동인데 저는 오랫동안 신평동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신평시장이 바로 근처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