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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자라난 길

2008년의 교생실습

어제 선거운동에서는 가슴에 꽃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게 선거용 복장의 일환이라고 아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아마도 '스승의 날'을 깜빡하신 것 같습니다.
제 선거캠프의 인권특보는 교생 실습 시절 제 제자입니다.

2008년 5월, 모교인 구미고등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습니다.
제가 교육학과 역사학(한국사)를 이중전공했으므로 역사교사로서 임했습니다.
가르치게 된 과목은 2학년 선택인 '한국근현대사'였습니다.

한국근현대사는 제 전공 분야 가운데서 제가 가장 관심이 깊은 과목이기도 합니다.

가끔 제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정치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려는 유권자 분들도 만납니다.
물론 많은 것들을 배우고 갑니다. 유권자들의 지식이 만만치 않구나 하는 탄식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거의 모두가 제가 다 알고 있는, 복합적인 구도에 넣고 있는 것들입니다.

왜냐면 저는 어렸을 적부터 현대한국 정치사에 대해서 오랫동안 공부해 왔고
기존 학계나 정치논객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까지 곰곰이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수구보수적 유권자들에 대해서 '도덕적 훈계'를 하시려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도 10대 시절에는 그랬었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왜 대구경북이 수구보수화되었는지
그 맥락을 찬찬하게 뜯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호흡을 갖게 되었으며 절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08년 5월 제가 교생실습을 하면서 가르친 단원은 개화기(구한말) 시대였습니다.
개화기에는 위정척사파, 온건개화파, 급진개화파, 동학농민운동 등 온갖 세력이 다가오는
시대에 맞춰 치열한 경합과 서슬퍼런 투쟁을 겪은 시기였습니다.
저는 각 세력의 입장이 가진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그 시대를 굵직하게 관통했던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의 한계를 틈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설명하고는 했습니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학생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선생된 입장에서 공부를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 별 거 있나요.^^
공부 좀 못해도 안 죽습니다. 잘해도 소용 없는 경우 많습니다. 저를 보세요. 좋은 대학 갔다고
여러분들이 말씀하시지만 취직 걱정합니다.^^"

물론 "그래도 남은 1,2년 고교생활동안 열심히 해서 꼭 대학에서 하고픈 일을 시작하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합니다만...

학생들은 학교의 변화 이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활달하고,
귄워주의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교무실에 한 학생이 찾아와 한 선생님한테
무언가를 말씀드리는데, 예전의 수직적인 구도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차분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민주화의 성과를 느꼈습니다.

또 교생 실습을 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아 이제 구미에 다시 돌아와 살아갈 자신이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수도권 사람들은 지방에 가면 죽는 줄 아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대구 이하로는 모두 '시골'이라고 표현을 하지요.
지방 출신이라도 한번 수도권에 들어가면, 그 복잡한 곳에서 미어터지더라도 다시 지방으로 갈 생각을
못합니다. 그것은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교생 실습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제가 교육학과를 갈 때 은사님들은 제게
"선생 하지 마라. 그냥 너의 취지대로 교육 그 자체에 대한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던 분들이 제게 "꼭 임용 합격해서 선생이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그 사이 세상이 크게 달라져 있었던 겁니다.

교사는 참 좋은 직업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사는 임용제도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수행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립학교의 특수성이나 대안학교의 실험성으로 향해야 합니다.
딱히 교직을 준비하지 않은 저로서 교원임용 준비를 택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육이란 교육학개론 초입에도 나오듯 정형화된 것이 있고 비정형화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네 삶 전체가 교육이라고 봤을 때 학교 바깥에서의 교육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역교육, 시민교육, 협동교육을 모색하다가 기초의원 선거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학교현장 바깥에서, 다른 방식으로, 제가 교생실습 때 다짐했던 바와 어려서부터 지향한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