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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자라난 길

조중동, 황우석광풍과의 싸움

사람들은 여러 차례 다툽니다.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싸웁니다.
그러면서도 남의 '싸움'에는 양비론으로 일관하고 싸움 자체를 무시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려면 싸워야 합니다.

2001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가자마자 거대권력, 비대권력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한국의 언론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오욕의 역사에 분노하였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언론개혁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대학가 학생운동은 NL(민족해방파), PD(민중민주파)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멀리 존재하는 적'에 맞선다면서, 추상적 대의로 교조적 노선을 펼치기보다는
스스로 일어나 동조하는 학생들과 만나 신학생사회운동을 펼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NL, PD 노선이야 학생운동 간부들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어디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대로 활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참여했고 결국 편집주간을 맡았던 <조선바보>는 이름 그대로 조선일보에 맞서는 싸움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선일보를 '보수신문'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보수'의 개념을 오남용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보수주의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공동체질서를 지키는 태도인데
조선일보는 외려 그것을 철저하게 파괴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념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조선일보의 끊임없는 침소봉대, 사실왜곡입니다.
우리 신문은 역사적, 시사적으로 조선일보의 모든 거짓말을 낱낱이 파헤쳤습니다.

2000년경은 조선일보거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는데 당시
"중앙, 동아일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또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동아일보는 중도적 색채를 띠고 있었고, 중앙일보도 조선일보와의 차별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시장 정상화와 언론사 세무조사를 두고 중앙, 동아가 반발하면서
조선일보2, 조선일보3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조선일보거부운동은 조중동거부운동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가 언론개혁운동을 한창 하였던 2002년은 조중동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급감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했고 오히려 그해 말 미군장갑차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에 포위됩니다. 그때 느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어찌 보면 조선일보보다 더 무서운 힘과 싸우게 됩니다.
황우석광풍입니다.
상식적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그리 쉽게 진행되어 성과를 거뒀다는 게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황우석 씨는 우리가 아는 '과학만 아는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계와 언론계에 두루두루 인맥을 만들고 로비를 벌인 사실상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온국민이 황우석광풍에 휩쓸려 갔습니다.
헬싱키협정에서 금하고 있는 연구원 난자 공급이 밝혀진 뒤에도
"줄기세포->국익->무조건 지지'라는 희한한 공식으로 내달려갔습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이해찬, 유시민 등은 물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까지 황우석광풍에 휩싸여
PD수첩 등 당시 진실을 밝히려던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외면했습니다.

그때 저는 동료들과 연세대학생 학술네트워크를 준비하면서
황우석연구의 진실을 알리던 기자와 연구자를 초청해 강연회를 꾸리게 됩니다.
그리고 딱 그즈음 황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조작이 밝혀집니다.

2005년말 온 나라를 경악시켰던 '황우석 반전극'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95 대 5의 불리한 구도였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지금도 사건의 현재진행형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단지 황우석이 줄기세포를 몇개 만들었느냐,
만드는 능력은 과연 있느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그쪽 연구팀이 얼마나 나쁜 방법으로 (가뜩이나 위험천만한) 난자 제공을 받았는지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연구원들을 괴롭혔는지
조선일보 등 언론들이 황우석과 어떠한 동맹관계를 맺었는지
궁극적인 문제점들은 뒤로 돌려버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황우석연구의 거짓이 폭로하기 이전, 내내 PD수첩을 비방하면서 황우석의 기관지 노릇을 한 조선일보가
황우석연구를 지원한 정부를 비난한 것은 한국언론 거짓보도 역사의 굵직한(!) 한획을 그은 장면입니다.)


옛말에 타산지석이라고 합니다.
조중동, 황우석광풍과의 싸움 속에서 저는 단순히 남을 비난하면서 제 영역을 꾸리기보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