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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자라난 길

건상이 아버지

요즘은 강변에 놀러가시는 분들은 주로 동락공원을 들립니다만
예전엔 강 건너편 도로를 이용 많이 하셨죠.
당시만 해도 강변도로에는 홍합을 하는 포장마차들이 쭉 들어서 있었습니다.

낙동강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추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일곱 살이었을 겁니다.
유치원인가 학원인가를 마치고 외삼촌과 그 친구 분을 따라나섰습니다.
두 분 다 당시에는 비혼이었죠. 지금의 저보다 더 젊으셨을 땝니다.

너무 꿈 같은 기억인데 물고기들이 점프해서 수면 위로 점프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돌을 던지면 물고기가 맞을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죠.


이 사진은 아마 아홉살 즈음에 찍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배트맨 옷, 배트맨 모자, 배트맨 가방이 유행이었습니다.^^ 저 강이 요즘 몸살이라 안타깝네요.



저는 1982년 구미에서 태어났습니다. 칠성주택이라고... 행정구역상으로는 원평동인데
저는 오랫동안 신평동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신평시장이 바로 근처니까 생활권으로 치면 틀린 말은 아니죠.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분 모두 포항 출신입니다. 포항에서 결혼하신 건 아니구요.
구미공단 같은 회사에서 만나 사내연애를 하시다 결혼하셨습니다.

유년기에 대한 제 기억 대부분은, '장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요즘도 알고 보면 그렇지만 장난기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하도 장난을 많이 쳐서, 영문도 모른 채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혼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여섯살 즈음에 모 사원주택단지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마침 어머니가 신평시장에서 양품점을 하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돌보아 주셨지만 그래도 어머니 없이
좀 쓸쓸한 시절이었죠.

이사간 동네는 광평동이었고 따라서 저는 광평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게 어느덧 21년 전입니다. 그 첫해 저는 잊을 수 없는 일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저를 밀고 오는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광평초등학교 학생수가 200여명이지만 당시는 2000명에 달했습니다.
교가에도 보면 '이천의 용사'라고 나오죠. 물론 형곡초등학교가 생기면서 1500명 정도로 줄게 됩니다만...
학생수가 너무 많아 오전반, 오후반 수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학급은 가끔 쥐가 나오는
별도의 건물을 썼었죠.

그때 우리반에는 건상(가명)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건상이는 화장실에 가는 걸 겁내는 아이였습니다.
신체에 점이 났는데 오줌눌 적에 급우들이 놀려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죠.

어느날 그 구식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마침 건상이 혼자 오줌을 누고 있었습니다.
그는 흠칫 놀랐습니다. 기껏 애들을 피해서 들어왔더니 제가 들어간 겁니다.
하지만 저도 그의 표정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얼떨결에 하게 됩니다.
"나, 나는... 안 놀린다..."
그후로는 수십명의 아이들이 합창하는 "건상이 xx에 점났대요"를 하지 않게 되지요.

건상이는 착한 아이입니다만, 공부도 별로 못했고 겉으로도 가난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저는 건상이 아버지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하시길래 아이가 저런가.'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까지 해보았죠.

그러던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뒤에서 자전거 경적 소리가 나 길을 비켰습니다.
건상이였습니다. 건상이는 자전거 뒤에 타고 있었지만 건상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앞에 탄 분과 너무 많이 닮았으니까요.

우리는 건상이 아버님께 인사를 드렸고 건상이 아버님은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

건상이 아버님은 고된 일을 열심히 하는 분처럼 보였고
다정다감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상이 아빠는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건상이네 집은 가난하고 건상이는 공부를 못하는 편이다.
건상이 아빠는 TV에 나오는 회장님보다 일을 덜하는 것 같지도 않고 덜 착한 사람 같지도 않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회장님보다 훨씬 돈을 적게 벌고
또한 건상이네 집은 우리 집보다 가난하다.


어린 아이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만은...
저는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가지게 됐습니다.

아직도 이따금씩은 건상이 아버님이 울려주시던 따르릉 소리와
그 사람 좋은 얼굴, 그리고 얼굴을 스치는 봄바람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