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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Columnist

노무현 생각

3월 중순부터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얼마 전 길거리 펼침막을 다는 데도 그랬습니다. 몇번의 착오 끝에 인동네거리 국기봉에 달았습니다. 마침 다는데, 제 현수막의 우하단에 어느 도지사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더군요. 거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1년 전 오늘, 토요일이었지요,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한 친구에게서.
"자결한 것 같다. 실족일 수도. 확실한 건 모르겠다." 
노대통령이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오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황망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합니다. 지금도...

한때 그는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저는 그분 덕분에 "승패 너머에 진정한 승부가 있다"는 걸 깨우쳤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노사모에 가입했고 2002년 대선 때는
노사모 성원들이 만든 개혁국민정당의 연세대 대변인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 저는 군대를 다녀와서 그의 몇몇 정책에 반기를 들기도 했습니다. 칼럼니스트로서 비판하고 거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몇가지는 후퇴할 수밖에 없음을 내다보고
있었지만 해도 너무하단 원망도 했었습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은 한나라당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였습니다.
한나라당은 노대통령을 좌파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원래부터 중도적이었고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노대통령의 복지 정책을 두고 사상공세를 일삼았지만,
한국과 같이 복지의 기초조차 미비한 나라는 우파가 집권하더라도 복지를 확충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도개혁파'라고 할 수 있는 노대통령을 진보좌파라고 낙인찍음으로써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스스로를 아주 쉽게 '보수우파'로 자리매김하려 한 것이지요.

허나 제 눈에는, 이라크파병, 한미FTA [각주:1]등과 같은 굵직한 사안에서 조중동은 노 정부와 함께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조선일보를 비판한다면 노무현 정부도 비판할 수밖에 없었지요.

대통령 재직 시절 노대통령을 가끔 TV로 보면 참 낯설었습니다.
내가 저분을 청소년기 그토록 존경하고, 내 가치관의 상당한 부분에 영향을 끼쳤는데...

노무현 정부는 경제성장에는 성공했습니다. 통념과 다르게 말입니다. 현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노무현 정부는 경제성장에 아주 성공한 정부입니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주장과는 반대로, 분배 및 복지 정책에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노대통령이 잘못한 점으로 꼽는 것 중에 하나가 '법인세 감면'입니다.
한국 1000대 기업의 당시 사내유보가 360조쯤 되었습니다. 과세표준 1억원 이상의 법인세 감면액은
1조가 좀 넘습니다. 360에서 1을 더한다고 해서 기업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노대통령은 퇴임할 즈음 "법인세 깎지 말고 그 돈으로 교육에 투자했으면.."하는 회한을 남겼지요.
아파트분양원값 공개를 반대한 것도 서민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하더군요. 우스운 일입니다.

반대로 노대통령이 잘하신 것으로 제가 꼽는 것은
역대 정부에 비해서 무리한 경기부양정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는 노대통령이 탄핵되었다가 복귀된 뒤
처음으로 공언하신 바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것처럼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정치인상을 썼다는 점입니다.
'화해와 통일'에 맞춰졌던 한반도정책을 '평화와 협력'으로 구체화한 10.4선언도 노대통령의 업적입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대통령 재임 기간의 노대통령보다 예전의 노대통령을 더 그리워합니다.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 케이크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킵시다."

(···)

우리 정부는 기를 쓰고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을 한 번 보면 임시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 한 건도 없습니다. 제가 바로 재벌 해체와 토지 분배 등을 경제정책으로 주장한 것은 임시정부의 정강정책으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민족 자립경제의 기반을 확고히 세우고 경제적 정의를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 13대 국회 본회의 통일민주당 노무현 의원 대정부질문 (1988년 7월 8일)  



저는 무조건 노대통령을 깎아내리고 조롱했던 조중동과는 타협하기 힘든 입장이며

그렇다고 해서 노대통령을 쭈욱 따랐던 사람들과도 달랐고
노대통령을 진보적 입장에서 비판했던 분들과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어린 시절 그분이 제게 준 영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던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대통령은 이런저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던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그 거목이 사라졌습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짐에도 야당이 약진하지 못하는 것은
노대통령에 필적할 만한 정치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는 관측도 해봅니다.

내가 많이 좋아했던
내가 많이 비판했던
이웃집 아저씨 같이 여겨지기도 했고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해보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

"노동시장유연성 수용은 잘못이었다"는 노대통령의 반성은 제게 위안이 되었고
"그래도 한미FTA는 옳았다"는 그의 확신에는 여전히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이른바 친노 정치인이라는 분들은 많지만 제 견해로는
노대통령을 대신하거나 그 뒤를 이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정치인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무현을 넘어서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초의원 후보로서 분에 넘치는 스케일 큰 이야기였나요?
아닙니다. 저는 시민으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첫 유세를 했습니다. 준비된 내용 없이 전통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을 향해
빗속에서 연설했습니다.
"잘사는 사람도 한표, 못사는 사람도 한표"라는 표현을 했는데
물론 여러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겠지만
순간적으로 노대통령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초선의원이 될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요.
저처럼 "정치, 오래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였을까요.

만일 이번에 제가 당선이 되면 4년동안은 지방정치인이 되는 것인데
저는 또 어디로 향해가게 될까요.

노무현 생각은 결국 '내 생각'으로 귀결되는군요.

  1. 한미FTA는 개방이냐 아니냐와는 상관 없는 문제입니다. 한국사회는 이미 IMF 이후 커다랗게 개방되었습니다. 한미FTA는 경제제도 및 시장을 강도높게 통합하는 FTA방식입니다. 또 해외 투자자가 국가 및 지방자치정부의 복지 및 경제정책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독소 조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