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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Columnist

구미 시민들, '잃어버린 20년'을 심판했다 (대자보)

구미 시민들, ‘잃어버린 20년’을 심판했다
한나라당 아성에서 진보정치의 영남 정착, 그 가능성 확인한 것 성과
 
숨인씨
한나라당 10석, 친박연합 4석, 민주당 1석, 민주노동당 1석, 무소속 7석(그중 1석은 진보 성향의 시민후보). 어느 지역의 결과일까? 한나라당이 제1당이지만 과반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친박연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영남일 것 같은데, 진보 성향 당선자가 2명임이 특이하다 .
 
이것은 바로 울산도 포항도 창원도 아닌, 경북 구미의 시의원 당선자 현황이다. 이 같은 성적표에 구미 진보개혁진영, 시민단체들도 놀라고 있다. 그러면서도 민심은 최근 수년 동안 꾸준히 변해왔는데 이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을 성찰하고 있다.  

일제시대 경북 구미는 진보적 독립운동가들의 텃밭이었다. 의병장 허위의 당질인 허형식은 중국 공산당에서 활동했고, 현 동구미 지역이 배출한 이내성, 장진홍은 테러투쟁으로 일제를 타격했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와 형수 조귀분은 각기 신간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자였으며, 고 김윤환 의원의 부친인 김동석은 무정부주의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대세는 역시 박정희가 이룬 ‘성공한 반역’에서 출발했다.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는 구미의 번창과 영남 지역 젊은이들의 고용을 창출하였다. 영남 보수화의 원인을 전통이나 주민들의 심성에서 힌트를 찾아서는 안 된다. 사회경제적 변동과 떼어 놓고서 진단할 수 없는 것이다.  

공단도시였기에 구미 지역에서도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발생했다. 2000년 총선 김윤환 의원의 낙선에는 지역 사회의 시민운동과 민주노총의 힘이 한몫했으며, 2004년 총선과 2006년 구미시장 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는 10퍼센트를 상회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과정도 단순히 미디어를 통한 학습 등으로 유권자가 진보화된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빼놓을 수 없다. 촛불 정국 당시의 민심 이반은 영남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뽑아놨지만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도권규제완화에 이은 세종시 수정안이 결정타였다. 세종시가 기업도시로 변질될 경우 경북 서부에 있으며 삼성과 LG 등이 들어서 있는 구미가 가장 큰 결정타를 입게 될 예정이다. 선거 직전 불어닥친 낙동강(4대강공사현장)발 황사도 한몫했다. 

구미 지역의 두 국회의원도 지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당의 중진이었지만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구미시 갑을 의원정수를 둘러싼 당내 갈등도 시민들에게 환멸을 심어줬다. 구미에는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 김윤환, 박세직 전 의원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의 한나라당에서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이 구미 진보개혁진영은 연대하고 있었다. 단순한 반한나라당 연합이 아니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구미풀뿌리희망연대는 발족선언문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로 ‘신자유주의’를 적시하였다. 예년보다 적은 숫자이긴 하나 가선거구 민주노동당 후보, 바선거구 무소속 시민 후보, 시의원 비례대표 민주노동당 후보 이렇게 셋을 내보냈고, 이중 2명이 당선되었다.

2명의 진보 성향 당선자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민심의 변화를 체감했다. 색깔공세를 펴는 유권자는 매우 드물었고, 오히려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엄청나게 커져 있음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후보를 찍는 유권자조차도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단순한 반사이득이 아니라 민생대안과 복지정책에 더욱 더 방점을 찍을 수 있었다.

변화의 심층적 원인을 보자. 공단도시 구미는 외지 출신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시민 평균 연령은 30세 안팎이다.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이 지속될 만한 구조가 아니었다. 다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지난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지지 혹은 투표 기권으로 이어졌으며, 지역의 진보개혁진영이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을 충분히 끌어안을 만큼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고, 연이은 패배에 동력을 상실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드디어 다수 유권자는 변화를 선택했다.

외곽 농촌에 사는 어느 70대 유권자는 무소속 시민후보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생동안 한나라당을 찍은 적이 없다. 왜 지방권력이 교체되지 않는지 불만이다.” 또 다른 어르신 유권자의 말씀은 이렇다. “이 당도 있고 저 당도 있고 무소속도 있고, 그래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해야 정치가 발전한다.” ‘잃어버린 10년’보다 ‘잃어버린 20년’이 더 피부에 와닿았던 것이다.

물론 환호는 이르다. 구미 진보개혁 진영은 아직 미숙하며 힘이 달린다. ‘한나라당 심판’을 넘어서는 비전과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매우 멀다. 그러나 경북 구미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지역독점을 돌파하며 나아간 한걸음 한걸음은 모두 귀중한 자산이자 교재가 될 것이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공업단지의 진보정치는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얽혀 있다. 자본과 권력에 수년간 밀려온 노동운동의 분발이 절실하다. 이것은 영남의 전 지역에 해당하기도 한다.
 
노무현식 돌파로는 한계가 있다. 호남의 정치의식이 비단 김대중의 활약이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소작쟁의운동에 바탕하고 있듯, 영남도 ‘노동’이라는 화두에 충실하지 못하면 정치혁신이 어렵다. 뿐더러 ‘노동중심’이 확고하게 서면 진보정당 분열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도 쉬워진다.

시민운동은 더 아래로 깊이 내려가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에는 보육 및 교육정책의 진전을 바라는 주부들의 영향도 매우 컸다. 앞으로 생활 이슈를 발굴하면서 운동의 일상성을 높여나간다면 토호 중심의 한나라당 정치는 더욱 더 크게 뒷걸음질치게 될 것이다.
 
물론 당장은 큰 벽에 부닥칠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구역의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일은 어쩌면 국가보안법 폐지보다 더 험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 해결의 사례들이 쌓여갈수록 시민운동은 굳건한 토대 위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포항의 박경렬(진보신당), 복덕규(민주노동당) 당선자가 지난 선거보다 훨씬 더 높은 득표를 얻은 것은 구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 선거에서 구미의 진보개혁진영이 더 많은 후보와 더 많은 당선자를 내기를 바란다. 한나라당의 아성이었던 구미도 얼마든지 울산 이상의 '진보정치 아성'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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