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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중계

구미시의회 시정질문 방식 왜 이러나

내가 홍준표 씨의 도정질문 회피를 가벼운 마음으로 흉볼 수 없게 만드는
구미시의회의 사정이 있다. 

 

경남도의회가 16일 예정되었던 본회의를 갑자기 취소했다.
취소 통보는 휴일인 14일에 행해졌다고 한다.
16일 본회의 도정질문에는 진주의료원 국정조사에 관련해
칼날을 별렀던 야당 의원들이 나설 예정이었다.
홍준표 지사의 회피와 여당 의원들의 지원인 셈이다.

 

국회에서의 출석이나 답변에 관해 대통령과 지자체 단체장은
명백히 위상이 다르다.
헌법 제62조와 국회법 제121조에 따르면 국회의 요구를 받으면
출석해서 답변해야 할 사람들은 국무총리, 국무위원, 정부위원이다.
대통령은 헌법 제61조에 따라 출석해서 발언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지방자치법 제42조에 따르면 단체장은 지방의회의 요구를 받을 시 
출석 답변해야 하는 사람에 포함된다.
이때에 단체장은 대정부질문에 비유하자면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에 가깝다.

 

의회 의원이 행정부에 대한 일상적 힘의 열세를 만회하는 건 원내활동이다.
의원의 본회의 질문은 본회의에서 의원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다.

최고의 활동에 걸맞는 상대는 누구인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국무총리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역사관을 묻는다고 치면 누구에게 묻겠는가?
역사에 관련된 부처의 장관들을 모두 하나씩 불러서 답변을 듣겠는가?
당연히 총리에게 물을 것이다. 정운찬 전 총리의 마루타부대 관련 실수를 기억할 것이다.
분야별로 세세한 답변을 원한다면 그때는 장관에게 묻게 될 것이다.
이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렇다면 지방의회 시정질문에서 단체장이 답변을 회피하는 것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

간편하게 가릴 수 있는 유불리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시정질문의 1문1답 도입에 관한 것이 그렇다.

1문1답을 하면 의원이 답변에 휘말리면서 불리하단다.

국회 대정부질문은 어떻게 하는가? 1문1답으로 한다.
왜인가? 그 형식이 의원의 위상과 권한을 가장 잘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의원한테 불리했으면 국회의원들이 어지간히도 그 제도를 유지했겠다.

1문1답과 반대로, 통으로 질문하고 통으로 답변하면 어떻게 되는가?
의원은 질의과정에서 나오는 답변을 통해 접근을 심화할 수 없이
초보적 단계에서의 질문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며,
집행부는 지극히 안정된 상황에서 답변을 할 수 있는 데다가
질문을 둘러싼 분야에 대한 일반적 설명으로 시간을 떼울 수도 있다.

 

내일 구미시의회는 제6대 들어 세 번째의 시정질문을 실시한다. 그런데
내일도 본질문-본답변-보충질문-보충답변의 경직된 순서로 진행될 전망이다.
질문요지서만 넘겨도 상관 없는데 집행부는 아예 원고를 원하고, 예전에도 그랬다.

예전에 어떤 간부는 내게 보충질문 내용까지 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굳은 표정으로 등을 돌린 적이 있다.
그나마 보충질문에서라도 페이스를 주도해야 하는데 그 기회마저
반환해 달라는 무례한 요구다.
아예 짜고 치자는 얘기인가?

 

이것만으로도 1문1답이 훨씬 의원에게 유리하다는 방증이 될 것 같다.
아니, 유불리를 떠나, 짜고치기식에 가깝거나 다분히 의례적인 질문 및 응답이
도대체 시정에 무슨 자극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보충토론 순서에서
의원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질문하고 집행부는 단상에서 답변하는
균형이 맞지 않는 풍경도 또 되풀이 될 전망이다.
앉아서 따져묻는 의원이 갑인지
일어선 채로 대꾸하는 집행부가 갑인지
분간도 안 간다.

 

이건 1문1답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고쳐야 할 기이한 관습이다.
시정질문에 나선 여러 의원들이 지적했고 어떤 의원께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도 집행부 답변용 단상 하나 설치를 못 해 여기까지 왔다.

거긴 원래 의원 자리고
집행부가 의회 단상에 올라가는 건 시정연설을 할 때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시정질문 답변을 듣다 보면
이게 시정질문인지 시정연설인지 분간이 안될 때가 많다.
1문1답이 이뤄지지 않으니 집행부는 답변시간을 떼울 수 있고
그 김에 아예 변명을 넘어서서 시정 홍보 수준의 답변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질문 내용은 짧게, 답변 내용은 길게 내보낸다.
심지어는 의회사무국 소식지조차 의원 질문을 훨씬 짧게 처리한 적도 있다

.

이 지점에서, 이상하고 희한한 불일치가 두 가지 일단 눈에 띈다.

1) 원고내용까지 통으로 집행부에 넘겨달라 해놓고는
왜 답변내용이 더 길게 소개되는 건가?

2) 답변을 시정연설로 삼아버릴 요량이라면
그 참에 단체장이 답변하는 게 훨씬 낫지 않나?

 

이렇게 앞뒤조차 맞지 않는 건
구미시의회의 시정질문 현행 제도 및 관습이
철저히 집행부를 집행부를 위해서
'마구잡이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지자체-지방의회의 관계를 기관대립형, 기관통합형으로 분류하고
한국은 모든 지방이 기관대립형을 채택하고 있다 하는데,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은 '기관포섭형'이다.

 

의원의 권한과 기회, 이점은 주민들이 준 것이다.
그것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이 있고 그것을 고치지 못했다면
그 틈새를 맹렬히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