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10대 중반에 결정되는 것들이 많다."
이런 말씀을 들으시면 많은 학부모님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저하고는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성적이 아닙니다.
중학교 때 잘해야 고등학교 때 잘하고 그래서 좋은 대학가야 성공한다는
그런 취지에서 말씀드리는 게 전혀 아닙니다.
(올해 들어 대학진학률이 오랜만에 떨어졌습니다. 대학생 수의 증가와 일자리의 축소가 맞물리면서
우선 대학을 가기 어려우신 분들이 진학을 하지 않는 선택을 내린 결과입니다.
앞으로 이런 추세가 쭉 이어질 것이고, 대졸 불패 신화는 사그라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가치관' 문제입니다.
가치관이야 공부 열심히 하고 한눈 안 팔면 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현실의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만 봐도 그게 아님은 단박에 깨달으실 겁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작은 도둑이 된다면
잘 배우고 잘 사는 사람들이 큰 도둑이 되는 현실입니다.
정치인만 유독 욕을 먹고 있지만 재벌기업인들이 물의를 일으키는 것 또한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법을 잘 지키는 태도를 이야기하는가?
물론 그것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재미와 윤리는 준법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온순한 어린이였던 저는 중학생 때 성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거칠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들에게 비치는 인상도 크게 달라졌었죠.
그런 한편으로는 반항심도 강했고, 어린 시절부터 셌던 승부욕도 더 세어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한테는 한때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지나간 옛 이야기지만 싸움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약한 아이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니 옳다'라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정의파라고 자부했던 거지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의파이고자 하는 태도와 남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태도 사이에서
모순과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약한 아이들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태도가, 또다른 약자를 만들어내고, 나는 새로운
악이 되는 것이 아닌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간의 믿음은 틀렸다. 수단과 과정이 목적을 정당화한다."
제가 생각을 바꾸게 된 원인은, 설명하자면 한없이 복잡하고, 그래서 결국은 잘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당시를 돌아보면 확실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제가 친척이나 이웃, 제자 등을 지켜보면서 확인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우리나라는 무조건 옳다"라고 믿는 습성이 있습니다.
나라안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고 선진국일수록 오히려 '국론분열'이 활성화되었음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연히 안으로는 획일성을, 밖으로는 배타성을 행사하게 됩니다.
일전에 몇달동안 제 사촌동생과 그 친구들의 공부를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역사를 가르치는데,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일본에는 복수해야 되요."
"복수를 어떻게 할까? 닥치는대로 아무나?"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제가 한번 더 물었습니다.
"일본에도 한국이 독립되도록 도와준 분들이 있고 지금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도 복수를 해야 될까?"
그랬더니 그 아이가 답했습니다.
"일본인은 다 똑같애요. 일본 피 더러워요."
이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갔더니 거기서도 "일본놈"이라는 표현을 써서 안내원을 당황시킨 적이 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이 뭐냐면, 그 아이의 경우 정치경제에 대해서도 제법 생각이 있고
평소 사리판단이 성숙했던 아이라는 겁니다. 그런 아이도 배타적 애국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힘.
그 힘을 우리 시민들은 10대 중반에 자주 겪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성을 남성 밑에 둔다거나, 어렸을 적의 저처럼 폭력을 정당화한다거나,
자신은 방종을 추구하면서 남에게는 규율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그 태도들이 10대 중반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칫하면 그게 평생을 갈 수가 있습니다.
복지사회에서 사회화란 대개 함께 가지고 쓰고 나누는 행위를 익히는 걸 가리킵니다.
반면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권위에 굴종하고 대세에 편승하며 편견을 습득하는 걸 의미합니다.
지난 10대 중반 시절을 돌아보면 저는 여전히 아찔할 때가 많습니다.
원래 있던 저항심을 부당한 억압을 향해 돌리고, 승부욕은 승패 너머의 진정한 승부로 보낸 것
사실 저로서는 행운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이상 이것이 행운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필수적인 사회화과정이어야 합니다.
청소년과 학생이 아닌 학부모와 어른들께 먼저 묻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까?
제가 선거에 나와서 꼭 하고 싶은 첫번째 이야기가 실은 이것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시면 많은 학부모님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저하고는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성적이 아닙니다.
중학교 때 잘해야 고등학교 때 잘하고 그래서 좋은 대학가야 성공한다는
그런 취지에서 말씀드리는 게 전혀 아닙니다.
(올해 들어 대학진학률이 오랜만에 떨어졌습니다. 대학생 수의 증가와 일자리의 축소가 맞물리면서
우선 대학을 가기 어려우신 분들이 진학을 하지 않는 선택을 내린 결과입니다.
앞으로 이런 추세가 쭉 이어질 것이고, 대졸 불패 신화는 사그라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가치관' 문제입니다.
가치관이야 공부 열심히 하고 한눈 안 팔면 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현실의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만 봐도 그게 아님은 단박에 깨달으실 겁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작은 도둑이 된다면
잘 배우고 잘 사는 사람들이 큰 도둑이 되는 현실입니다.
정치인만 유독 욕을 먹고 있지만 재벌기업인들이 물의를 일으키는 것 또한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법을 잘 지키는 태도를 이야기하는가?
물론 그것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재미와 윤리는 준법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앞의 안경쓴 학생이 저입니다.
온순한 어린이였던 저는 중학생 때 성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거칠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들에게 비치는 인상도 크게 달라졌었죠.
그런 한편으로는 반항심도 강했고, 어린 시절부터 셌던 승부욕도 더 세어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한테는 한때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지나간 옛 이야기지만 싸움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약한 아이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니 옳다'라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정의파라고 자부했던 거지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의파이고자 하는 태도와 남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태도 사이에서
모순과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약한 아이들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태도가, 또다른 약자를 만들어내고, 나는 새로운
악이 되는 것이 아닌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간의 믿음은 틀렸다. 수단과 과정이 목적을 정당화한다."
제가 생각을 바꾸게 된 원인은, 설명하자면 한없이 복잡하고, 그래서 결국은 잘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당시를 돌아보면 확실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제가 친척이나 이웃, 제자 등을 지켜보면서 확인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우리나라는 무조건 옳다"라고 믿는 습성이 있습니다.
나라안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고 선진국일수록 오히려 '국론분열'이 활성화되었음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연히 안으로는 획일성을, 밖으로는 배타성을 행사하게 됩니다.
일전에 몇달동안 제 사촌동생과 그 친구들의 공부를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역사를 가르치는데,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일본에는 복수해야 되요."
"복수를 어떻게 할까? 닥치는대로 아무나?"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제가 한번 더 물었습니다.
"일본에도 한국이 독립되도록 도와준 분들이 있고 지금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도 복수를 해야 될까?"
그랬더니 그 아이가 답했습니다.
"일본인은 다 똑같애요. 일본 피 더러워요."
이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갔더니 거기서도 "일본놈"이라는 표현을 써서 안내원을 당황시킨 적이 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이 뭐냐면, 그 아이의 경우 정치경제에 대해서도 제법 생각이 있고
평소 사리판단이 성숙했던 아이라는 겁니다. 그런 아이도 배타적 애국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힘.
그 힘을 우리 시민들은 10대 중반에 자주 겪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성을 남성 밑에 둔다거나, 어렸을 적의 저처럼 폭력을 정당화한다거나,
자신은 방종을 추구하면서 남에게는 규율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그 태도들이 10대 중반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칫하면 그게 평생을 갈 수가 있습니다.
복지사회에서 사회화란 대개 함께 가지고 쓰고 나누는 행위를 익히는 걸 가리킵니다.
반면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권위에 굴종하고 대세에 편승하며 편견을 습득하는 걸 의미합니다.
지난 10대 중반 시절을 돌아보면 저는 여전히 아찔할 때가 많습니다.
원래 있던 저항심을 부당한 억압을 향해 돌리고, 승부욕은 승패 너머의 진정한 승부로 보낸 것
사실 저로서는 행운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이상 이것이 행운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필수적인 사회화과정이어야 합니다.
청소년과 학생이 아닌 학부모와 어른들께 먼저 묻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까?
제가 선거에 나와서 꼭 하고 싶은 첫번째 이야기가 실은 이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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