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추석특집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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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ㆍ특집 보수의 성지에서 녹색정치 하겠다는 이 사람
구미시의원 김수민씨
기사입력시간 [263호] 2012.10.09 02:46:27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나쁜 일이 아니라면, 일단은 하고 보는 편이다. 김수민씨(30)가 시의원 후보로 나서겠다고 결심할 때도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노동운동을 하거나 풀뿌리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노조 상근자 말고 현장에서 ‘소박하게’ 노동운동을 하려고 했으나 취직이 어려웠다.
그때 “고향으로 가자. 일자리도 거기에서 찾자” 결심했다. 2009년 12월 초, 우연히 고향 친구를 만났다. ‘너 같은 친구가 지방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 독설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그날은 진지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출마를 작정했다. 보수 성향의 고향에서 ‘진보적’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기로.
처음에는 상대 후보들이 그를 여론조사 항목에서 배제할 정도로 미미했다. 하지만 그는 보수 후보들과 다른 선거운동 방식을 택했다. 상대 후보들이 (당시 한나라당을 뜻하는) 파란색을 내세울 때, 풀뿌리운동을 상징하는 녹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했다. 다른 후보들이 트럭 선거운동을 할 때, 전동 자전거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벌였다. 결과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구미시의원으로 당선. 당시 27세. 최연소 구미시의원이 탄생했다.
대학 시절부터 옳다고 생각하면 뛰어들었다. 학교와 작은 정당에서 주로 활동했다. 2002년 ‘전국 대학생 조선일보 반대 모임’에서 만드는 격주간 비평지 <조선바보>(조선일보 바로보기의 약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대학생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대학 2학년 때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하는 칼럼을 실어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개혁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당 활동을 열심히 했다.
‘진보’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구성체 논쟁에 관한 책도 읽었다. NL이든, PD든 전통적 학생운동은 이론 틀에 실제를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정책과 가치’를 고민했다. 당을 여러 차례 바꾼 것은 그 당이 없어지거나 분화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김씨가 ‘정책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서이기도 하다.
지금은 ‘녹색당’이다. 선거운동을 할 때 “무소속인데 나중에 어느 당에 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는 “당을 만들겠다”라고 대답했다. 약속을 지켰다. 전국의 풀뿌리 활동가와 함께 녹색당 창당에 나섰다. “진정으로 자본을 넘어서려면, 녹색의 가치와 통할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한다.
김수민 시의원의 지역구(인동동·진미동)는 공단 지역이다. 원룸이 밀집해 있다. 그도 보증금 100만원, 월세 20만원짜리 원룸에 산다. 그에게 구미는 ‘공단 도시. 그러나 환경운동이 부재한 도시’다. “4대강 공사 때 준설량이 가장 많은, 토건족의 이해가 반영되는 도시다.
그런 면에서 토건족이든, 보수적인 새누리당이든 강한 상대와 바로 부딪칠 수 있는 도시다. 싸움에 초점을 맞추면 풀뿌리 활동가에게 아주 매력적인 도시다.” 그곳에서 김수민씨는 생활협동조합, 공동육아, 도시농업 등 ‘녹색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큰 정치에 작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작은 정치에 큰 도움’을 보태고자 풀뿌리운동을 결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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