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 선거운동

토요일은 임수동에


임수동 국립구미전자공고에도 벚꽃이 흐드러졌습니다.
이곳은 제 동생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졸업 이후 자기도 오랜만에 왔다는군요.
토요일은 임수동에서 주민들을 뵈었습니다.

동네 입구 가게에서 주인 내외 분을 만났습니다. "꼭 투표하세요" 말씀드리니
"우리는 한번도 투표 안한 적 없어요. 열심히 하세요"라고 답해주십니다.

그 앞에서 만난 아이 어머님과 잠시 대화했습니다.
"불편하신 게 없냐"고 여쭸는데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기야 시의회에게 기대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방증일 겁니다.

그러나 샬롬아파트에서 만난 어머님은 반대였습니다.
"불편한 거... 되게 많아요."
"교통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요?"
"네.. 그렇죠."
"우리나라가 교육은 알아서 해라, 하면서 떠맡기기잖아요.
이제 동네에서 협동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그 부분을 많이 준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분 어머님은 제 설명보다는 제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셨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ㅎㅎ 맞춰 보세요."
"한 서른 초반? 서른 전후쯤 되어 보이는데."
"내년에 서른입니다.^^" 

 

니네도 한표? 조금 더 들어가는 길에 마주친 강아지 녀석들입니다.

 

샬롬아파트에서 뵌 3, 40대 아주머니들은 다소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셨는데
길에서 마주친 30대 남성 분들은 더 흥미로운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힘내라고 성원해 주셨습니다.
"무능한 시의회, 제가 물꼬를 터서 감시하고 견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흥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죠.


남파 장학 선생의 기념비.

장학 선생이 후학들과 공부한 여차정.

임수동에는 장학 선생을 기념하는 비와 그가 세운 정자가 있습니다. 장 선생은 장현광 선생의 제자이며 인조 시대 생원에 합격하여 효종 시대 제수되었지만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습니다. 후학을 모아 여차정에서 공부하기도 했죠.

여차정 부근의 경치를 읊은  <여차정십사경시일> 가운데는 이러한 구절이 있답니다.

「평포낙안(平浦落鴈)」

여차정 서남쪽, 강의 오른쪽, 비산(緋山)의 아래, 옥랑(玉浪) 앞에,
추저 위아래 아득히 펼쳐져 있어 한 번 바라보아도 끝이 없다.
가을의 강 물결은 모래보다 희며, 혼연히 한 빛깔이 된다.
봄바람 불고 꽃비 내릴 때 가녀린 풀 잎사귀들이 강물보다 푸르다.
주변의 절벽은 기러기 날아내릴 때 더욱 맑고 빼어나 보인다.


 
그러나 그 방향의 현재 풍경은 이렇습니다.


임수동에서도 신동처럼 밭을 일구시고 계신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크게 환대해 주셨습니다.

한 할아버님은 "우리가 뭘 알겠어요. 이제 젊은 사람이 해야지..."하십니다.

"아닙니다. 많이 부족하니까 많이 가르쳐주십세요. 주민들이 대표자를 가르쳐야 돼요."

어르신들과 잠시 '텃밭 마련'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한 할머님이 곧바로 "아 그 주말농장?"하십니다.

"주말에 오시는 분들이 특별히 피해만 안 드리면 괜찮을런지요."
"하면 좋지요. 하려고 하는 사람들 많을 걸?"
"그런데 이쪽에 공유지가 좀 있습니까."
"그게 별로 없어요... 요새 남아 있는 공유지가..."

주말농장은 농촌-도시 조화를 위해 제가 준비하고 있는 정책인데 공유지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는 다른 데서도 들었습니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네요.
(사실은 대책이 있습니다. 당분간 비밀^^ "기달려 달라!")

 

벚꽃에 질세라 개나리도...

 
동네를 다니다 보니 집안 마당에 계신 분들이 많았는데... 호별 방문은 금지되어 있고 해서...
'잠깐만 문밖으로 나와주시면 안됩니까'라고 말씀드리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나오는 길에 전자공고앞 버스정류장 앞에 앉아 계신 아주머님 두분과 말씀 나누었습니다.
한분은 고향은 인동이시고 친구들이 다 이쪽에 있는데 자신은 다른 곳에 사신다고 하십니다.
다른 한분은 명함을 보시더니 제게 "많이 닮았네예" 하십니다.

"ㅎㅎ 본인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 인사 뵙는 처지에 카메라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고
아직은 수행하는 사람이 없거나 한명인데 찍기가 수월하지는 않지요.
주민 분들이 보이지 않을 때 그날 수행한 제 동생이 카메라를 꺼낸 게 전부입니다.

임수동도 신동처럼 동네의 외곽에 있습니다. 그럴수록 더 자주 찾아뵙고 여러가지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장학 선생 기념비 위로 솟은 나무의 절개가 생생합니다.


 

임수동(臨洙洞)은 강물에 임해 있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소가 누운 모양의 혈을 갖고 있다고 해서 'xx동'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xx는 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