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동시장에서 선거운동을 펼쳤다. 인동시장은 5일장으로, -2일, -7일에 선다. 앞으로도 들를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사실 선거운동 뿐 아니라 나 역시 장을 봐야 했다. 어머니가 동행하셨는데 선거운동보다는 그냥 장을 보셨다. 선거법상 예비후보의 직계존비속은 명함을 돌릴 수 있지만, 어머니께는 그 일을 맡기고 싶지 않다. 동행해서 다니는 것도 그렇다. 다른 선거운동원들이 많은 본격선거운동 기간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 어르신이나 농민들이 많은 장소에서만 동행해주시면 될 것 같다.
어머니가 장을 보시는 사이 장보러 오신 손님들께 명함을 돌렸다. 손님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비로소 20대 가량 유권자들에게 조금 더 크게 자신을 알릴 수 있다. 내 예측보다 관심이 높고 반응이 괜찮았다. 뜬금 없다거나 냉랭하게 지나치는 분이 없었다. 나 역시 젊은이인데도 혹은 같은 젊은이로서 목격한 바를 따라서, 젊은층은 아무래도 관심이 떨어지겠다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짧았다. 지역구 특성상 선거를 막판에 결정하는 변수는 젊은층의 투표율이다. 최소한 진미동, 인동동 주민들한테만큼은 시의원 선거가 서울시장선거보다 재밌도록 한다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어, 수민이~ 수민이네." 명함을 받아가시는 어느 할머님. 처음에는 그저 친근감의 표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임수동에서 매우 반겨주셨던 그분이다. "장에서 뵈니까 새롭네요." 불과 이틀 간격으로 다른 장소에서 마주치기가 쉽지 않은데 선거운동을 떠나서 참 반갑다. '환대하는 유권자를 모두 자기 표로 보지 말라'. 이것은 선거전략에서 통용되는 말이지만, 표계산을 떠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깊다. 일단 받았던 환영을 최대한 표로 연결시키는 게 내 목표지만, 그보다 어르신, 농민들을 위하겠다는 내 초심이 꼭 빛나기를 바란다. 후보자됨에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까 그 어르신과 그렇게라도 인사나누고 말씀듣는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인사를 드리면 반응이 비교적 양극화되는 쪽이 4, 50대 남성 분들이다. 어떤 분이 명함을 보시더니 심상찮은 표정으로 "처음 출마하신 거죠?"하며 물어왔다. 그리고는 명함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풀뿌리 민주주의, 그런 거 하시는 것 같은데... 이런 운동을 하시는 분이 이제 시의원을 해야 되는데, 맨날 한나라당이 다 해먹고..." 힘이 되는 말이지만 얼굴이 약간 어두워 보였다. 내가 떨어질까 염려하신 것이다. "그래도 여기는 (주민의 세대 및 계층적 특성상) 한나라당 조직세가 좀 약합니다. 또 3인선거구니까 괜찮아요. 사실은, 당선이 돼도 걱정입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지요. 그래 생각하면, 뭐,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당락을 떠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의연하고 자신있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방금 이분과 같은 유권자를 이미 여러 분 뵈었기 때문이다. 그 수가 얼마든 나는 든든하고 뿌듯하다.
손님들과 다르게 5일장 상인들은 적지 않은 수가 외지에서 오셨다. 어머니는 장을 보시면서 어디서 오셨는지 탐색을 하고 계셨다. 덕분에 인동동, 진미동 주민분들께 명함을 드렸다. 시장에서는 명함 돌리기에 하나의 변수가 있는데, '난 여기 사람 아니에요'하면서 명함을 거부하시는 분들이 있다. 어머니께서 탐색해주셔서 조금 더 편리해졌다.
저녁은 사무실을 정리하느라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친지들이 쓰지 않는 집기들이 있어 사무실로 옮겼다. 제법 번듯한 외양이 갖춰졌다. 내가 아주 형편이 좋은 사람인 줄 알까봐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보통 사무실은 대형현수막을 걸기 위한 장소로 쓴다. 나는 주민들께 충분히 대면 인사를 드리지 않고 현수막을 걸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원래는 사무실 임차를 미룰 작정이었지만, 주변에서 모두 이견을 표시했다. 사무실 임차는 큰 부담이었다. 선거비용보전금액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자리에, 비어 있는 건물의 한 층을 빌릴 수 있었다. 마침 그 자리는 모 공직자가 선거사무실로 활용해 당선의 기쁨을 누린 자리기도 하다. 처음 그 건물을 물색할 땐 몰랐다가 부동산중개업자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다. 계약을 맺긴 했지만 지불한 비용이 내게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다른 후보자나 다른 지역에서보다는 돈을 덜 들인 것으로 안다. 저비용 선거는 나의 숙명이다. 선거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당선되면 공개하겠다. 지금 들으면, 내 사연에 마음이 야악간 아플 분들이 계실 것 같다. ㅎ
선대본부장으로 점찍어둔 사람이 세 분 있는데 오늘 두 사람이 들렀다. 한분은 진평동에서 식당을 하시는 분으로 과거 사회운동에 참여하셨던 분이다. 교육선전직을 맡아 감각이 빼어나시다는 귀띔을 들은 바 있다. 그분은 '선대본부장을 맡아달라'는 내 요청에 직답을 피하시면서, 다른 분을 추천해주셨다. 그런데 그 분 역시 내가 선대본부장으로 모시려고 했던 분이다. 두 분 모두 선대본부장으로 모시려고 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다. 중고등학교 6년을 같이 다녔고, 현재까지 황상동에 거주하고 있다. 4시 30분쯤 그 친구가 사무실에 들렀고, 마침 와 계셨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보통 정치인의 선거캠프를 보면, 선대본부장이 있고 그 위 상위직책에 선대위원장이 있다. 나는 선대위원장도 점찍어 두었다. 아주 소박하고, 그만큼이나 위대하신 인물이다. 과연 누굴까. 이것도 퀴즈다. 부모님? 어버이는 상임고문쯤으로 하하. 1
초계함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부대원 모두 귀환하라는 간절한 기도가 물거품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거운동에 바빠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고 죄송하다.
사실 선거운동 뿐 아니라 나 역시 장을 봐야 했다. 어머니가 동행하셨는데 선거운동보다는 그냥 장을 보셨다. 선거법상 예비후보의 직계존비속은 명함을 돌릴 수 있지만, 어머니께는 그 일을 맡기고 싶지 않다. 동행해서 다니는 것도 그렇다. 다른 선거운동원들이 많은 본격선거운동 기간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 어르신이나 농민들이 많은 장소에서만 동행해주시면 될 것 같다.
어머니가 장을 보시는 사이 장보러 오신 손님들께 명함을 돌렸다. 손님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비로소 20대 가량 유권자들에게 조금 더 크게 자신을 알릴 수 있다. 내 예측보다 관심이 높고 반응이 괜찮았다. 뜬금 없다거나 냉랭하게 지나치는 분이 없었다. 나 역시 젊은이인데도 혹은 같은 젊은이로서 목격한 바를 따라서, 젊은층은 아무래도 관심이 떨어지겠다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짧았다. 지역구 특성상 선거를 막판에 결정하는 변수는 젊은층의 투표율이다. 최소한 진미동, 인동동 주민들한테만큼은 시의원 선거가 서울시장선거보다 재밌도록 한다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어, 수민이~ 수민이네." 명함을 받아가시는 어느 할머님. 처음에는 그저 친근감의 표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임수동에서 매우 반겨주셨던 그분이다. "장에서 뵈니까 새롭네요." 불과 이틀 간격으로 다른 장소에서 마주치기가 쉽지 않은데 선거운동을 떠나서 참 반갑다. '환대하는 유권자를 모두 자기 표로 보지 말라'. 이것은 선거전략에서 통용되는 말이지만, 표계산을 떠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깊다. 일단 받았던 환영을 최대한 표로 연결시키는 게 내 목표지만, 그보다 어르신, 농민들을 위하겠다는 내 초심이 꼭 빛나기를 바란다. 후보자됨에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까 그 어르신과 그렇게라도 인사나누고 말씀듣는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인사를 드리면 반응이 비교적 양극화되는 쪽이 4, 50대 남성 분들이다. 어떤 분이 명함을 보시더니 심상찮은 표정으로 "처음 출마하신 거죠?"하며 물어왔다. 그리고는 명함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풀뿌리 민주주의, 그런 거 하시는 것 같은데... 이런 운동을 하시는 분이 이제 시의원을 해야 되는데, 맨날 한나라당이 다 해먹고..." 힘이 되는 말이지만 얼굴이 약간 어두워 보였다. 내가 떨어질까 염려하신 것이다. "그래도 여기는 (주민의 세대 및 계층적 특성상) 한나라당 조직세가 좀 약합니다. 또 3인선거구니까 괜찮아요. 사실은, 당선이 돼도 걱정입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지요. 그래 생각하면, 뭐,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당락을 떠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의연하고 자신있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방금 이분과 같은 유권자를 이미 여러 분 뵈었기 때문이다. 그 수가 얼마든 나는 든든하고 뿌듯하다.
손님들과 다르게 5일장 상인들은 적지 않은 수가 외지에서 오셨다. 어머니는 장을 보시면서 어디서 오셨는지 탐색을 하고 계셨다. 덕분에 인동동, 진미동 주민분들께 명함을 드렸다. 시장에서는 명함 돌리기에 하나의 변수가 있는데, '난 여기 사람 아니에요'하면서 명함을 거부하시는 분들이 있다. 어머니께서 탐색해주셔서 조금 더 편리해졌다.
저녁은 사무실을 정리하느라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친지들이 쓰지 않는 집기들이 있어 사무실로 옮겼다. 제법 번듯한 외양이 갖춰졌다. 내가 아주 형편이 좋은 사람인 줄 알까봐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보통 사무실은 대형현수막을 걸기 위한 장소로 쓴다. 나는 주민들께 충분히 대면 인사를 드리지 않고 현수막을 걸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원래는 사무실 임차를 미룰 작정이었지만, 주변에서 모두 이견을 표시했다. 사무실 임차는 큰 부담이었다. 선거비용보전금액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자리에, 비어 있는 건물의 한 층을 빌릴 수 있었다. 마침 그 자리는 모 공직자가 선거사무실로 활용해 당선의 기쁨을 누린 자리기도 하다. 처음 그 건물을 물색할 땐 몰랐다가 부동산중개업자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다. 계약을 맺긴 했지만 지불한 비용이 내게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다른 후보자나 다른 지역에서보다는 돈을 덜 들인 것으로 안다. 저비용 선거는 나의 숙명이다. 선거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당선되면 공개하겠다. 지금 들으면, 내 사연에 마음이 야악간 아플 분들이 계실 것 같다. ㅎ
선대본부장으로 점찍어둔 사람이 세 분 있는데 오늘 두 사람이 들렀다. 한분은 진평동에서 식당을 하시는 분으로 과거 사회운동에 참여하셨던 분이다. 교육선전직을 맡아 감각이 빼어나시다는 귀띔을 들은 바 있다. 그분은 '선대본부장을 맡아달라'는 내 요청에 직답을 피하시면서, 다른 분을 추천해주셨다. 그런데 그 분 역시 내가 선대본부장으로 모시려고 했던 분이다. 두 분 모두 선대본부장으로 모시려고 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다. 중고등학교 6년을 같이 다녔고, 현재까지 황상동에 거주하고 있다. 4시 30분쯤 그 친구가 사무실에 들렀고, 마침 와 계셨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보통 정치인의 선거캠프를 보면, 선대본부장이 있고 그 위 상위직책에 선대위원장이 있다. 나는 선대위원장도 점찍어 두었다. 아주 소박하고, 그만큼이나 위대하신 인물이다. 과연 누굴까. 이것도 퀴즈다. 부모님? 어버이는 상임고문쯤으로 하하. 1
초계함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부대원 모두 귀환하라는 간절한 기도가 물거품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거운동에 바빠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고 죄송하다.
- 그저께 "저는 임수동의 또다른 이름은 무엇일까?"라는 퀴즈를 냈습니다. 아직 정답을 맞히신 분이 안 나오셨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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