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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7) 모두 무효표를 던지다

등원 직전 형곡동 민주노동당 사무실을 들렀다. 민노당 김성현 의원과 무소속 박교상 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의원은 의장단 선거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왔다. “전 무효표 던지겠습니다.” “그래 각자 알아서 투표하자.” 사실 당시 또다른 의원이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었고 우리 세 의원은 그쪽에 다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보의 ‘역습’은 하루이틀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포기자는 또 있었다. 의회 복도에서 만난 손홍섭 의원은 “의장 선거에는 나서지 않는다. 부의장 선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의장선거에서 개표위원을 맡았다. 의회 표결 시 개표위원은 나이가 어린 순서대로 두 명씩 선임하게 되어 있어 나(1982년생)와 민주당 김정미 의원(1971년생)이 첫 회기의 개표를 담당하게 되었다. 개표위원은 방청석을 바라본 채로 앉기 때문에 내 캐쥬얼 복장이 눈에 더 잘 띄었을 수도 있겠다.

 

의장단 선거는 최연장자인 황경환 임시의장이 진행했다. 시작하는 찰나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이 발언권을 신청했다. 그는 의원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회의를 잡고 의장 후보들의 정견 발표도 없이 선거를 진행하는 데 이의를 표시했다. 친박연합 윤종호 의원(양포, 산동, 장천, 도개, 해평)도 질세라 손을 들고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의장단 선거는 물밑 경쟁과 포섭이 치열할 뿐 공식적으로는 여러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때는 정견 발표도 없었거니와 심지어 공식적인 후보 등록 절차도 없었다. 투표용지에는 23명 의원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겉으로는 의장 후보였다.

 

의장 선거에 투표하는 의원들은 개표위원 앞에 있는 투표함에 용지를 집어넣었다.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은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냐”고 속삭이고 지나갔다. 내 표정이 굳은 까닭은 캐쥬얼 차림으로 등원한 이유와 같았다. 나는 등원도 하기 전 겪은 일들에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1차투표 결과 허복 의원이 11표를 얻으며 예상대로 1위를 했다. 황경환 의원이 5표, 이수태 의원이 4표였다. 황 의원은 을지역 한나라당 의원 4명 이외에 한 명의 표를 더 얻었고, 이수태 의원은 같은 친박연합 소속 의원들 4명의 표를 얻었다. 친박연합측은 처음부터 허 의원에게 투표하지 않고 캐스팅 보트가 자신에게 있음을 선언한 셈이었다. 무효표를 던진 의원은 나를 비롯해 3명이었다.

 

허 의원이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치러진 2차 투표에서 허복 의원 15표, 황경환 의원 5표였고, 이수태 의원은 1표, 무효 2표였다. 이수태 의원이 1표가 나온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친박연합측 의원 4명 중 1명은 1차에서 일단 이수태 의원을 밀되 2차에서는 허복 의원을 민다는 방침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훗날 밝혔다. 나는 2차투표에서도 무효표를 던졌다. 친박연합의 가세에 힘입어 허 의원이 제6대 구미시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허 의원은 1960년대 초반 출생이면서 당시 기준으로 네 번이나 시의원을 했다. 언젠가 전국의장단협의회를 다녀온 허 의원은 “거기 가면 나도 선수는 빠지지 않는데 나이는 젊은 축에 속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부의장 선거 1차 투표에서는 무소속인 김영호 의원(도개, 산동, 장천, 양포, 해평) 11표로 허 의장과 같은 표수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그는 허 의장과 러닝 메이트였다. 을지역 한나라당의 임춘구 의원(고아 무을 선산 옥성)은 6표로 황경환 의원이 의장선거에서 얻은 표보다 1표 더 많이 얻었다. 의장에서 부의장으로 목표를 선회한 손홍섭 의원이 2표, 이수태 의원이 1표를 얻었다. 무효는 의장 1차 투표처럼 3표였다.

 

2차투표에서도 김영호 의원은 허 의장처럼 15표를 얻어 부의장으로 당선되었다. 임춘구 의원 6표, 손홍섭 의원 1표였다. 무효는 1표로 내가 던진 표였다. 이로써 나는 의장단 선거 네 차례의 투표에서 모두 무효표를 던졌다. 나는 전반기 의장단 선거의 전과정을 ‘알맹이 없는 자리 다툼’으로 규정했고 이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의장 선거의 내막을 들여다본 시민들은 궁금할 것이다. 의원내각제처럼 의원들이 내부에서 단체장을 뽑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의장을 선출하는 것인데 왜 이리 열을 올리냐고. 어떤 기초의회에서는 의장단 선거 도중 의원이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몰래 금품을 전달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배달사고가 나기도 한다. 나는 1차적으로 명예욕이 작용한다고 본다.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취직을 하고 나면 직장에서 승진하고 싶어하듯, 이왕 의원이 된 김에 ‘장(長)’이 되고픈 것이다. 또 한 번 의장을 하면 끝나고도 계속 '의장님' 소리가 뒤따른다. 일부 주민들에게도 원인이 있다. 자기 지역구 의원이 선수를 쌓을수록 의장이나 부의장이 되어야 당연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조금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하는 주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 의원 역시 선거에 출마할 때 “이번에 당선되면 의장이 될 수 있다. 의장이 되면 지역구에 아무래도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주민들을 꼬이기도 한다.

 

의장단에게 주어지는 구체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구미시의회의 경우 의장은 연 2천만원이 넘는 업무추진비(판공비)를 쓸 수 있다. 부의장은 1천만원이 넘고, 상임위원장은 월 86만원쯤 된다. 물론 시장의 연간 업무추진비 8천여만원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금액이지만. 또 의장에게는 업무용 관용차량과 비서진이 생긴다. 의전에서도 시장, 국회의원과 거의 동급으로 대우받는다. 한편 아무래도 의장이 지역구 예산을 더 크게 당겨올 수 있다는 시선이 있는데, 의장이 대체로 선수가 많아 축적된 노하우가 두꺼우므로 그럴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하기 나름이기도 하다.

 

의장이라서 손해보는 것은 없을까? 있다. 의장은 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 의장이 들어가는 회의는 본회의 뿐이다. 구미시의회를 포함해 상당수의 지방의회가 상임위나 예산결산특위 중심으로 돌아가므로 본회의에서 흐름이 바뀌는 사례는 희귀하다. 적극적으로 의안을 내거나 막으려고 한다면 의장직은 크게 소용이 없다. 물론 의장과 협의하거나 의장의 지시를 받을 의원들이 많다면 사정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원내 활동보다 대외적인 행사 참여와 지위 과시에 훨씬 더 의미를 두는 의원이라면 의장직은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경북인터넷뉴스>에서는 의장단 선거에 ‘기권’한 의원들은 의원 자격이 없다는 칼럼을 발표했다. 나는 이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투표에 불참하지 않았으니 ‘기권’이라는 표현부터가 잘못되었고 이를 '무효'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한나라당 소속이니 비-한나라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논리도 기각했다. 결과에서 나타났듯 일부 무소속은 갑지역 한나라당과 손을 잡았고 소위 ‘비-한나라당 연합’ 따위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김수민 의원은 자기 이름에라도 찍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왜 이제 막 상임위 활동을 벼르는 내가 의장선거에 출마해서 내 이름에 찍어야 하는가? 예전에도 이런 쓰잘데기 없는 주장이 의회 주위를 맴돌았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일이었다. 

 

다른 한편 내심 그 매체의 칼럼을 반긴 것도 사실이다. ‘내가 모두 무효표를 행사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할 기회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이 일로 나는 “언론이랑 뭐하러 대립각을 세우냐”는 비판과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언론 대 정치인으로 서로 당당하게 대하지 않고, 언론인이 무슨 정치권에 입김을 불어넣는 것으로 스스로 착각하면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은근슬쩍 싸움을 피하려는 것 옳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대립이 격화되고 일일이 갈등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초장부터 명확하게 일침을 가하는 편이 나았다. 어쩌면 <경북인터넷뉴스>도 초반에 나를 비판해서 되레 부담을 덜었을 수도 있다.

 

의장단 선거를 마친 직후 남유진 시장 취임식 겸 의회와의 상견례가 있었다. 남 시장은 허복 신임 의장이 자신과 키가 비슷하다며 연단에 오를 때 마이크 크기를 재조정할 필요가 없다는 농담을 했다. 남 시장은 23석 중 한나라당이 22석이고 나머지 1명 민주당 의원도 한나라당 의원과 별 차이가 없던 제5대 의회를 지나 사상 가장 다양한 색채를 품고 뿜는 제6대 의회를 새로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