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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9) "김 의원, 협찬 같은 거 하지마"

의원 임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들른 지역 행사는 -내 기억으로는- 진미동사무소에서 열린 경로잔치였다. 진미동에는 해마다 청년회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경로잔치를 여는 좋은 전통이 있었다. 다만 행사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네안에서 후원금을 모으는 것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기업이나 한국노총 노조쪽에 손을 벌리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돈을 내는 쪽, 그리고 돈 낸 쪽과 연관이 있는 세력이나 정치인에 힘이 실리게 된다. 기부가 가진 역기능이다. 공공 예산으로 해결하려면 형평상 마을마다 경로잔치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했다. 일회성이라 노인복지라 보기도 어려웠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민간의 십시일반인데 이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토박이가 아닌 나는 잘 몰랐지만 진미동에는 개발로 인해 갑자기 부유해진 사람들이 몇몇 있다고 들었다. 어떤 주민들은 “그 사람들이 너무 쩨쩨하다. 후원을 잘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잔치가 열리기 전 받아든 행사계획서에는 가수 ‘현숙’이 출연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진짜인가? 현숙 씨 팬은 아니지만 인기가수가 온다니 신기했고, 그의 출연료를 낼 만큼 후원이 걷히는지 의아했다. 그러나 실제로 온 사람은 현숙과 닮은 이미테이션 가수였다. 이름이 ‘현숙’이라더니? 동사무소 관계자는 이미테이션 가수의 이름이 ‘현숙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다른 한켠에서 청장년층끼리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로 갔다. “직장 다니느라 동네 일은 잘 모른다”고 하던 어떤 아저씨가 반갑다며 술을 권했다. 비가 내렸고 운치 있었다. 그는 “이 보수꼴통 동네에서 당선되느라 수고했다. 앞으로 잘해달라”고 당부했다. 잔치 도중 나는 곧 인사철이고 동장님이 바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동장님은 진미동을 떠난 후에도, 심지어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도 경로잔치에 참석해 깊은정을 표현했다.

 

내가 “다음 동장님으로 누가 오시느냐”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그 아저씨가 검지를 입에 갖다대며 “쉿! 그런데 신경을 쓰면 안돼!”라고 제지했다. 그때는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후에 헤아리니 아마 “인사개입 비슷한 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동장 인사에 시시콜콜 관여하는 시의원들이 진짜로 있었다. 그분은 또 “어디 가서 협찬한답시고 돈 내고 다니지 마라. 그러기만 하면 김 의원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기분 좋은 충고였다. 이런 분들이 50대를 거쳐 60대쯤 되면 마을 분위기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7월 5일, 상임위원장 선거로 원 구성을 마무리했다. 이미 대세는 갑지역 한나라당+친박연합+무소속 일부의 주류파의 손에서 나왔다. 선거를 하기도 전에 두껑이 열려 있었다. 기획행정위원장에 갑지역 한나라당 김상조 의원, 산업건설위원장에 한나라당 출신 을지역 무소속 김태근 의원, 의회운영위원장에 친박연합 이수태 의원이 나섰다. 상임위원장 선거는 의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당 상임위원 모두가 투표용지에 올라간다. 그러나 투표는 해당 상임위원들이 호선하는 게 아니라 본회의에서 의원 전원이 했다.

 

기획행정위원장 선거에 나선 김상조 의원은 나를 불러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집행부에 볼 일이 있을 때, 대뜸 국장급부터 부르면 거만하다는 인상을 줘요. 그러니까 과장급을 부르는 게 더 무난하고... 김 의원은 초선이고 젊으니까 계장급을 불러보는 것도 괜찮아요. 일단 그렇게 해보면서 나중에 또 판단하면 되니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사회단체보조금 내역을 건네주기도 했다. “아 이거 골치 아픈데, 칼을 빼들어도 막상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요. 김 의원 아는 사람 중에도 이 단체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정리하려고 하면 압력이 만만치가 않아.”

 

처음에 나는 이왕에 결정적인 거 열심히 하시라고 이들을 찍어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내게 “김태근 의원이 산업건설위원장을 하겠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말하며 맹렬히 비토하는 게 아닌가. “흥, 지난 의회 때 의회에 잘 나오지도 않던 사람이오. 그 사람이 무슨 상임위원장.” 누구는 찍고 누구는 안 찍기도 뭣해서 상임위원장 선거에서도 모조리 무효표를 던지고 말았다. 김태근 의원은 상임위원장이 되자 그럭저럭 의회에 나왔지만 종종 불참하여 부위원장이 대리 진행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후반기에는 정말로 5분쯤 나와서 출석체크만 하고 퇴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재선은 물론 2014년도에 삼선을 하셨으니 의원들 본인이나 일부 지역주민들에게나 회의 활동은 중요치 않게 여겨질 법도 했다.

 

기획행정위원장 선거에서는 김상조 의원 15표, 친박연합 소속 박세진이 1표를 얻어서 김 의원이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무효는 7표였다. 1표를 얻은 박세진 의원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출마하겠다고 한 적도 없었고, 자신이 자신을 찍은 것도 아니었다. 출마 의사가 전혀 없는 의원까지 투표용지에 올라가니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산업건설위원장 선거에서는 김태근 의원이 15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의장, 부의장과 상임위원장이 모두 15표를얻어 당선된 것이다. 이 15표는 전반기 의회의 주류세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김성현 의원, 박교상 의원, 임춘구 의원, 김재상 의원(한나라당/도량, 선주원남)이 1표씩 나왔다. 이들도 출마 의사를 피력한 적 없는데 누가 찍었을까.

 

기획행정위와 산업건설위의 위원장을 선출하고 나서 상임위별로 회의를 개최했다. 상임위 부위원장을 포함한 의회운영위원을 선임하기 위해서다. 이들 자리는 전체 의원이 아닌 상임위별로 호선되었다. 구미시의회 조례상 의회운영위원은 10명 이하로 구성되는데, 관례상 부의장과 두 상임위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상임위에서 2명씩 추가로 선임한 의원, 이렇게 9명으로 구성되었다. 산업건설위원회 부위원장에는 을지역 무소속인 강승수 의원(고아, 선산, 무을, 옥성)이 선임되었다. 김태근 위원장처럼 강 의원 역시 건설업체 출신이어서 전문성을 내세우곤 했다. 기획행정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 윤영철 의원이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주류측이 을지역 한나라당에 대한 배려로 부위원장 한 자리를 내놓은 격이었다. 기획행정위원회에서 추가로 선임할 의회운영위원으로는 친박연합 박세진 의원(도량, 선주원남)과 내가 뽑혔다.

 

그렇게 해서 뽑힌 의회운영위원 중 부의장과 기획행정위원장, 산업건설위원장을 뺀 나머지 의원을 투표용지 명단에 올려놓고 전체 의원이 다시 본회의장에 모인 가운데 의회운영위원장 선거를 진행했다. 의장 선거 1차투표에서 4표를 기록했던 친박연합 이수태 의원이 12표로 당선되었다. 같은 친박연합의 윤종호 의원이 4표였다. 무효 5표. 그런데 김수민을 찍은 표가 둘이나 있었다. 나도 개표위원으로서 개표를 하며 이 두 장의 용지를 보고 떨떠름했다. 그나마 1표는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출마 의사도 밝히지 않은 의원까지 투표용지에 올리는 이런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어떤 지방의회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의장에 선출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고 한다.

 

끝나고 의회운영위원들끼리 모여 의회운영위 부위원장을 선임했다. 산업건설위에서 선임해 운영위원으로 온 윤종호 의원이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친박연합은 이로써 주류연합에 가세한 대가로 의회운영위원회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받은 셈이었다. 이수태 의회운영위원장은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지만 초선 의원이었는지라 위원장 당선이 작은 화제가 되었다. “친박연합측이 원구성에서 효과적인 플레이를 했다”는 평도 이어졌다.

 

원구성이 끝나고 의회의 의원사무실 배정이 있었다. 의원사무실은 2인 1실이었다. 누구와 쓸지 다소 고민 중이었다. 진보 성향 의원과 같이 쓰느냐, 아니면 다른 연결고리를 갖고 앞으로 연대할 만한 의원과 같이 쓰느냐.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들은 각자의 방으로 갔고, 어떤 의원들은 룸메이트를 이미 정해두었다. 나머지 의원들을 가나다 순으로 배치했더니 공교롭게 나와 민노당 김성현 의원이 짝지어졌다. 그것도 2층 전문위원실 옆방이었다. 전문위원실은 의원들의 정책 및 회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보좌한다. "진보 성향 의원 두 명이 전문위원실을 적극 활용하려고 그 방을 잡았다"는 소문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