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아동권리조례’를 준비한다는 보도가 나갔다(일본에서는 가와사키 등 여러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전국 최초라는 건 오보다. 3월8일 ‘구미시 아동·청소년권리조례’ 초안이 준비되었다는 소식이 전국 일간지 지방면과 지역신문에 올랐다. 구미시 청소년들과 함께 ‘조례 제작단’을 꾸린 건 그로부터 1년여 전이다.

아동·청소년권리조례는 최근 이슈가 된 학생인권조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둘 모두 성년이 아닌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지만, 학교 현장에서 지침이 되어 실효성이 강하며 논쟁거리도 많은 후자와 달리, 전자는 상징적·기본적 성격이 짙다. 그래서 이왕이면 청소년들과 함께 조례를 쓰기로 결심하고 제작 단원을 모았다. 마침 구미YMCA의 기획과 맞물려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대로 단원들은 이내 조례에 친숙해졌다. 지난해 여름방학에 가진 워크숍에서는 한정된 시간에 조례를 만들어내는 걸 게임처럼 해냈다. 두 팀으로 나뉜 단원들은 각기 ‘학교급식 식단 함께 짜기 조례’와 ‘시민참여형 축제 만들기 조례’를 작성했다. 


   
ⓒ교육청 제공
2011년 5월20일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관계자들이 조례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 교육청에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올 2월 다섯 차례 회의 끝에 아동·청소년 ‘권리조례’ 초안을 완성했다. 건강할 권리,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 차별 금지, 정보와 사생활에 관한 권리, 교육과 복지 그리고 문화에 관한 권리, 사회참여의 권리 등이 총망라되었음은 물론, ‘1인 1악기 1종목’이나 청소년 대상 노동권 교육, 청소년 참여예산제 같은 참신한 정책들도 수록되었다. 청소년 참여위원회 관련 조항은 의회 상임위원회실에서 모의 의회를 열어 확정짓기도 했다. 


서울시도 추진, 새로운 동력


그러나 초안 작성이 끝나자 난관이 생겼다. 의회 전문위원실의 자문에 응한 전문가 중 일부는 “권리는 조례로 창출할 수 없다”라고 했다. 법제처 소견서도 이 난제를 명쾌히 풀지는 못했다.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신중해야 한다.” 나는 “이 조례에 나온 권리는 헌법, 유엔 협약, 각종 법률에서 연유되었으므로, 권리를 따로 창출한 게 아니다”라는 반론을 폈다. 지방자치와 인권에 정통한 어느 변호사의 의견도 나와 같았다.

나는 이 조례가 행정기관으로부터 제동이 걸릴 만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사법부가 조례의 법적 타당성을 심사하게 되더라도 충분히 해볼 만한 실험이다. 하지만 전국 최초의 조례안을 다루며 의회 전문위원실이 느낀 조심스러움을 존중했다. 의회 사무국은 독립된 부처가 아니며 전문위원들은 궁극적으로 행정부 소속이다. 내가 이들이 향후에 겪을 수도 있다는 곤란함을 책임질 수는 없다.

우선은 서울시의 추진 과정에 발을 맞춰, 일부 행정학자나 공무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논거와 원동력을 얻어보려고 한다. 5월 중 발의를 소망했던 제작 단원들에게 죄송스러울 뿐이다. 다만, 전국 각지에서 우리가 만든 조례안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위로 겸 격려로 전한다. 서울시는 얼마 전, 구미에서처럼 조례 제정에 참여할 청소년 위원을 모집했다.

※추신:전문위원실의 우려로 인해 나 스스로가 조례 발의를 미루는 이 현실로부터, 한·미 FTA에 든 투자자-국가직접제소제(ISD)의 위험천만함을 엿본다. 국가의 정책이 투자자의 잠재적 이득을 침해한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투자자에게 피소되는 것, 그 자체로 복지 확대나 경제 혁신은 위협받을 터이다. 더구나 해외 투자자의 길잡이로서 피소 가능성을 전가의 보도 삼아 휘둘러대며 입법 및 정치 작용을 훼방할 고위 관료들의 행태는, 지방의회 전문위원실의 조심스러움에 비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