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에 사는 게 죄냐”
[의정일기] 구미시 무상급식 우여곡절…시의회 발칵 뒤집혀
반갑습니다. 김수민입니다. 기초의원이라는 ‘기간제노동’을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소속이며, 지역구는 구미시 인동동, 진미동입니다. 이곳은 공단 및 그 배후 지역으로 인구는 8만명에 조금 모자라며, 청년층, 노동자, 원룸, 영유아가 많은 지역입니다.
예전 서울 서대문구에 산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름대로 진보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이었지만 지역 구의원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직도 지방자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너무 먼 존재이고, 레디앙 독자 분들도 대개는 예전의 저처럼 그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쪽은 알려야, 다른 쪽은 궁금해 해야 비로소 벽이 무너질 것입니다.
아직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지내는 녹색당 당원들이나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에게 “정치초년생들이 다음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레디앙 연재를 통해 이 작업에도 탄력이 붙기를 바라 봅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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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무상급식 경북운동본부가 5월 15일 경상북도 도청앞에서 연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학교친환경무상급식 지원 조례 제정을 청구하는 도민 3만3천여명의 뜻을 담아서였다. 무상급식을 비롯한 교육혁신의 불모지 경북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조례 주민발의밖에 없었다. 무상급식을 주요 공약으로 걸어 시의원 선거에서 이긴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간다. 앞으로 남은 능선이 몇 개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만 쳐도 분명 ‘산 넘어 산’이었다.
구미시, 경북 최초의 무상급식 도시가 될 뻔하다
처음은 순조로웠다. 구미시는 2010년 지방선거의 충격이 경북도내에서 가장 큰 지역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이는 의석수의 과반이 안 되었다. 시장 당선자의 득표율도 경북도내 당선자 중에 가장 낮았다. 복지 이슈는 그렇게 선거 직후에 전면으로 부상했다. 보편적 무상급식을 선거 공약에 넣었던 당선자 넷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시의원들이 무상급식 찬성의사를 밝혔고, 재선한 시장 당선자도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몇 달 간 실시 범위를 놓고 토론한 끝에 구미시는 일단 초등학교 1~3학년 학생과 읍·면 지역 초·중학생을 무상급식 대상으로 확정했다. 예산은 시비 절반과 도 교육 지원비 절반을 합쳐 마련하기로 했다. 그런데 무상급식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문기사들이 여기저기 피어나던 그 시점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다.
시의회 상임위의 무상급식 조례 심사 도중 한 의원이 무상급식을 반대한다고 발언했다. 그 이전부터 두 명의 의원이 확고하게 반대를 의사를 밝혔던 터였지만, 이들에 의해 조례안이 부결되리라는 예측은 없었다. 그러나 찬반 표결을 터부시하는 시의회의 관습이 문제였다. 몇 명이 반대하든 합의가 되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보류한다는 것으로 결론 났다. 2010년 연말의 일이다.
희한한 것은 조례안은 보류되었지만 무상급식 예산 전액 통과되었다는 점이고, 따라서 2011년 무상급식 실시는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도의회, 그중에서도 교육위원회가 말썽이었다. 거기서 구미시 지원 예산을 포함한 무상급식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법적으로 무소속인 교육의원들이 무상급식을 막아섰다.
흥미로운 것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교육위원회에 들어간 도의원만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다. 사실 구미시의회의 적극 반대 의원 중에도 한나라당 소속이 없었다. 당론과 주민 압력 사이에서 갈등하던 한나라당은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었다.
그리하여 구미시는 2011년도 1학기 무상급식 예산을 불용처리했다. 나를 비롯한 강력 찬성의원들과 지역 시민단체들도 “일단 잡힌 예산으로 범위를 좁혀서라도 시행하라”고 요구했지만, 예산이 반쪽만 확보된 상태라 난감하였다. 시의회에 상정된 무상급식 조례도 계속해서 표류였고, 경북도의회 교육의원들도 복지부동이었다. 결국 제6대 시의회 출범 1년을 맞이해, 구미경실련이 “잡힌 예산은 어떻든 집행하라”는 취지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네 시간 동안의 초유 사건, 관행 대 본회의 재수정안
그달 열린 시의회에 무상급식 조례가 재상정되었다. 보류된 지 일곱 달이 흐른 시점이었다. 반대 의원들은 더욱 결연한 의사를 밝혔고, 또렷하게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의원들은 끝까지 찬반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절충안을 주장했다.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조문이 “저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로 수정되는 것을 의원실 TV로 지켜보았다(무상급식 조례는 유통축산과 업무인 동시에 의회로 치면 산업건설위원회 소관이었고, 나는 기획행정위원회 소속이었다). 일곱달 기다린 일이 고작 시혜적 관점의 ‘저소득층 급식비 지원’이라니.
끝내 나는 회기가 마무리되던 날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고 만다. ‘저소득층부터’라는 기준을 하나의 기준으로 인정하여 상임위원회 심사 결과를 존중하되, 그 외의 선별 기준 수립과 보편적 무상급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재수정안을 들이민 것이다. “단계적으로 실시하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최우선으로 지원한다.” 나는 아침 일찍 등원해 의원 6명의 연서명을 받았다. 본회의에서 조례 (재)수정안을 낼 수 있는 기준은 전체 의원의 1/4였고, 구미시의회 전체 의원은 23명이다.
재수정안 발의 소식에 의회가 발칵 뒤집혔다. 의장, 부의장과 산업건설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이 차례로 나를 설득·압박했다. 의회사무국 일부 공무원들까지 설득에 가담하였는데 오히려 덕분에 나의 분기는 탱천했다. 거듭 강행 의사를 밝힌 끝에 본회의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무상급식 조례 심사 결과가 상정된 동시에 의장은 정회를 선언했다. 곧이어 열린 의원간담회장에서 나는 7개월동안 참은 분노를 터트렸다. 나는 의회에서 언성을 잘 높이지 않는 편이지만, 이날만큼은 네 시간동안 작정하고 싸웠다.
“여기 계신 산업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님 여러분. 제가 여러분한테 한번이라도 조례 통과시키라고 압박하거나 설득한 적 있습니까? 지금까지 참을 만큼 참았고 존중할 만큼 존중해드렸습니다. 아무리 상임위 결정은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시키는 게 관행이지만, 법에 그딴 건 없습니다. 법대로 합시다. 재수정안 발의 위한 연서명은 준비되었습니다. 이래도 표결 안 하시겠습니까? 수정안에는 ‘저소득층부터’라는 하나의 기준만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 지역부터 할 수도 있고, 국가유공자 유가족한테 지원할 수도 있고, 세자녀 가정에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때마다 조례 개정하시겠습니까? 수정안 내지 말라, 참아달라는 말을 하지 마시고, 저한테 이에 대해 반론하십시오.”
여러 의원들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그런데 문제는, 재수정안에 연서명한 의원 중 한 분의 얼굴도 이 상황으로 인해 흑빛으로 변했다는 점이다.(하하) 결국 본회의 재수정안 발의는 실패했다. “지난 일곱 달 조례 심사를 질질 끌었는데, 고작 네 시간 싸운 것 갖고 저한테 뭐라 마십시오.” 나는 본회의장에 들어서지 않은 채 그 회기를 끝마쳤다. 이후로 ‘무상급식’하면 내게는 그날의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구미시는 아쉬운대로 저소득층 학교급식 지원예산을 확대했고, 그 다음에는 읍·면 지역 초·중·고를 대상으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물론 이에 대한 불만이 드높다. 바로 이웃 동네가 읍 지역이라는 이유로 무상급식을 하는 걸 지켜보아야 하는 동 지역 주민들의 심기는 불편하다. 그럼에도 ‘읍·면 지역 실시’를 두고 시 집행부가 생색을 내는 걸 보니, 이들의 귀가 상당히 닫혀 있는 건 명백한 듯하다.
지원대상에는 세자녀 가정도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조례 개정안이 올라왔을 때 산업건설위원회는 ‘저소득층’, ‘세자녀 가정’ 같은 것들을 일일이 명시하지 말고 그냥 ‘단계적으로 실시한다’고 조문을 예전 원안으로 되돌려놓는 결정을 내린다. 2011년 7월 본회의 재수정안을 올리기 위해 일으킨 소란이 소기의 성과는 거둔 셈이다. 사실 내가 주도한 재수정안을 발의하는 데는 (관행 차원에서) 반대했지만, “차후에 개정하는 일은 돕겠다”고 약속한 의원들이 ‘중간파’의 형태로 존재했었다. 끝까지 본회의 재수정안의 연서명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던 의원들 다음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대구·경북에 사는 게 죄냐?”던 시민들에게 승리를
여전히 3개 학년을 대상으로 한 무상급식 예산을 단독으로 책정하기엔 구미시의 의지가 박약하다. 경상북도는 끝끝내 모른 척하고 있다. 서명운동에 나서는 동안 주민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이것이다. “왜 대구경북만 이래요?” 이제 내가 무상급식 실현에 대해 두려워하는 건 반대여론이 아니라 찬성 주민들의 피로감이다.
어떤 네티즌이 무상급식 찬성의원들을 비방하면서 “산 넘어 산”일 거라고 악담을 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산이 남아 있을까. 대구의 경우 시의회가 주민발의안 심사를 계속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총선 결과가 여대야소였던 탓에 중앙정부가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할 공산도 매우 낮아졌다.
그래도 승리를 안기고 싶다. “대구·경북에 사는 게 죄냐?”던 학생과 학부모들, 길 가시던 도중에 “아니 아기 엄마들, 왜 서명 안 해요?”하며 주민발의운동에 순간 가담하던 어느 나이 지긋한 여성 분, 본회의 재수정안을 발의하기 몇시간 전에 의정보고 인터넷라디오을 통해 내가 “지랄”할 예정임을 알고 응원문자를 보낸 그분들에게, “급식은 교육이며 교육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믿는 모든 시민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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