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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Columnist

해외연수, 다른 길을 찾아서 (원문)

* 경북일보에 실린 기고문의 원문입니다.

  지방의원의 국외공무여행, 소위 해외연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가지다. "공무수행과 의정 발전에 꼭 필요한 연수다." "관광성이 농후한 외유다." 딱히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후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연수에 관해 충분한 정보가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공무나 공부와 무관한 듯한 연수 프로그램이 발견되면 금세 따가운 시선이 쏠린다. 이번 해외연수에 불참한 내가 시민들에게 들은 의견도 대부분 이렇다. “그렇게도 비난 여론에 두들겨 맞더니 또 가?” “안 가는 사람 칭찬해줘야 되는데 시간 지나면 다 잊어버리더라고.” 어떤 분은 “사람들이 알아줘야 한다”며 행사장에서 일부러 “해외연수에 가지 않고 이 자리에 와주신 000 의원님”이라고 소개해주시기도 했다. 


  나는 해외연수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임기 중 한두번쯤은 가볼 만하다고 여긴다. 핀란드의 협동교육, 스웨덴 노동조합이 지역에서 운영하는 ‘민중의 집’, 이탈리아 볼로냐의 사회적 경제, 숱한 지방의원을 보유한 일본 공산당의 풀뿌리 정치,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의 주민참여예산제 등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 의정활동에 십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외유’의 면모를 최대한 걸러낸다면 연 일인당 180만원의 예산에 걸맞은 값어치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저 위의 지역들에 가보자는 제안을 당장에 펼칠 수는 없었다. 동아시아가 아닌 지역으로 연수를 떠날 경우 경비 문제가 생긴다. 구미시의원들 사이에서도 처음에는 ‘유럽 복지시설’ 시찰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경비 문제로 일본과 몽골로 나뉘어 떠나게 된 것이다. 나야 연구중심으로 최소한의 일정을 짜거나 경비 일부를 자부담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었지만, 이를 다른 의원에게도 요구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사실 의원마다 중점을 두는 분야와 방문하고픈 지역은 다르므로 이를 굳이 일치시키는 일부터가 부자연스럽다. 나는 다른 의원들이 몽골이나 일본에 가는 취지를 수긍할 수 있으나 자신이 꼭 따라갈 이유는 없었으며, 마찬가지로 내가 관심있는 지역을 다른 의원들에게 ‘강추’할 의사도 없었다.


  게다가 임기 시작 후 석 달이 지난 시점이었으므로 기존의 방식이든 나만의 대안적인 방식이든 해외연수를 기획하기가 버거웠다. 연수에 불참한 같은 지역구 한 동료의원이 들려준 말처럼 “최근 지역에서 일어난 중대 사건들을 뒤로 하고 나라밖으로 떠날 수가 없었”던 사정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몇 가지 가이드라인만을 마련한 채 연수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끊일 줄 모르는 논란 속에서 해외연수의 계획 수립 과정과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자는 방안이 힘을 얻고 있다. 투명성 제고는 필수다. 그러나 “몰래 추진해서 슬그머니 갔다 온다”는 비방을 모면하는 수준으로 연수의 생산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아니, 생산성은 차치하고 나 같은 의원은 “차라리 아예 가지 말자”거나 “자부담으로 다녀오자”며 공무국외여행 계획을 지워야할지도 모른다. 한 시민단체는 “시민이 납득할 수 있으며 지역 발전에 적용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제안했는데, 이는 연수의 패턴을 수정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이제 여행사가 아니라 정책전문기관이나 시민단체, 학계에 의뢰해 일정을 짜야 한다. 행정적 측면에만 치우친 시설 관람을 벗어나, 해당 지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두루 파악하는 데도 이 방법이 유용하다. 또한 ‘우리 지역은 이걸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 정책역량 함양에 초점이 맞춰진 집중적인 연수를 위해, 일인 또는 소수 의원들의 연수나 다른 지역 비슷한 성향의 의원들과 함께 떠나는 연수가 용이해져야 한다. 의장 승인만 떨어지면 어렵지 않다. 어떤 지역에서는 예산 이외의 협찬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경비가 정해진 예산을 초과할 시 그만큼을 자부담한다는 의원 개개인의 각오도 있어야 한다. 월정수당 이외의 ‘의정활동비’는 본디 ‘보수’가 아니라 ‘실비 변상’의 개념을 띠고 있다는 걸 유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