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반공주의는 독재 정권의 무기였으나 그것이 품고 있는 일말의 진실과 민주적 성과가 있었다. 분단 이후 스무해가 넘어가던 무렵에도 남한의 경제는 북한을 앞지르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북한 비판의 주된 요지는 '독재' 정권이고 '괴뢰' 국가라는 것이었다. 중국, 소련과의 갈등도 불사하며 주체노선을 걷던 북한이 '괴뢰'라는 규정은 사실판단에서도 오류지만, 반공교육의 숱한 거짓말 속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다양한 세력들이 김일성 정권에 제압되었던 북한이 독재 국가라는 건 엄연한 진실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독재자 김일성 욕하기'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안의 독재자인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게 돌아가곤 했다.
북한은 이번 3대째 세습을 통해 가산제 국가임을 만천하에 실토했다. 2대세습까지는 "김정일이 실력이 있어서 자리에 올랐다"는 우격다짐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김정일의 정치노선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김일성 사후에 북한을 지탱한 실력이 다소는 입증되기도 했거니와, 그가 권좌에 오르는 과정도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김정은의 부상은 그 아버지가 밟은 전철과도 확연히 다르다.
미국의 갑부인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은 상속세 폐지를 완강하게 반대하는 인물들이다. 한국의 재벌들과 정반대인 그들이야말로 '부르조아 정신의 수호자'이다. 근대가 전근대를 혁파한다는 통념과는 다르게, 자본주의든 북한식 사회주의든 근대는 필요에 따라 전근대적 습속을 남겨놓기도 한다. 그저 일부러 남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행동양식이 따지고 보면 역사의 발전법칙이 심어놓은 기대감을 항상 밑돌기 때문이다. 근대 부르조아는 중세 귀족이 아니다. 그러나 돈의 힘이 또다시 피의 힘으로 전환되는 그 순간, 부르조아는 귀족으로 돌아간다. 예컨대 삼성재벌일가가 보이는 행태는 부르조아가 아니라 전형적인 귀족의 것이다.
북한도 초창기엔 매우 강고하게 근대화를 추구한 사회였다. 지주에게 땅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독립국가의 '공공의 적'인 친일파를 처벌했다. 하지만 남로당 출신,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경제파 등이 줄줄이 숙청당한 뒤 김일성 유일체제가 세워지면서 그들은 다시 충효논리 등 전근대적 요소를 불러냈으며 권력의 가장 굳건한 유지책인 세습으로 치달았다. 3대세습은 완벽하게 반민주적이며, 또한 사회주의의 핵심인 평등주의를 배반한 것이다.
덮어놓고 북한과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추구하는 수구보수파들이야 북한이 3대세습이 아니라 3대째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손가락질하겠지만, 진보개혁세력은 진지하게 북한의 행태를 비판해야 한다. 사설로 북한 3대세습을 겨냥하고 민주노동당의 무비판을 지적한 <경향신문>은 언론의 역할에 충실했다. 여기서 '언론'은 '언론기업'이 아니라 '말'을 의미한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말하지 않았고, 울산지역 당원들은 <경향> 절독운동에 나섰다. 이정희 당대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선택"이란다. 언론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남한에서 얼마나 많은 투쟁이 벌어졌던가. 허탈하다. 하기야 그 언론자유에는 묵비권 행사도 포함되지만, 민주노동당이 어디서 피의자로 수사를 받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공당은 한반도 북부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건을 두고 응당 발언할 의무가 있다.
그 인사들의 내심은 알 수 없으나 가장 호의적으로 헤아리자면 "북한 비판이 외교적 악재"라는 취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집권정당도 외교부 관리도 아닌, 북한에서도 조선노동당이 아니라 조선사민당이 맞이하는 군소야당의 발언으로 남북관계가 흔들릴 리가 없다. 오히려 북한 입장에선 민주노동당의 북한 비판을 한나라당의 그것보다 훨씬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주류)은 혹시 "북한은 원래 그런 데니까 그러려니 하자"는 사고방식을 가진 건 아닌가? 그렇다면 그야말로 북한 인민을 무시하는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럼에도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민주노동당 주류는 <경향> 등에게 "색깔론"이라고, 국가보안법적인 사고방식이 스며들었다고, "매카시즘"이라고 역공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을 송두리째 부정한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이들이 진보인가? 제 입장을 밝히는 다른 세력에게 또다른 딱지를 붙이는 민주노동당 주류의 태도야말로 매카시즘이다.
할 일이 자명해진다. 민주노동당 일부 당원들의 절독 운동에 맞서는 것이다. 친분 있는 어느 선생(이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43094.html)에 이끌려 <한겨레신문>을 구독하던 나, 경향신문의 1기 옴부즈만이었다가 군 제대 이후, 고향집주소로 경향신문 구독신청을 하고 서울 자취방에선 한겨레신문을 읽었던 나, 신문 한부 더 볼 작정이다. 성역 없는 진정한 혁신언론의 길을 가고자하는 경향신문에 전화를 걸어 구독신청을 하련다.
북한은 이번 3대째 세습을 통해 가산제 국가임을 만천하에 실토했다. 2대세습까지는 "김정일이 실력이 있어서 자리에 올랐다"는 우격다짐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김정일의 정치노선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김일성 사후에 북한을 지탱한 실력이 다소는 입증되기도 했거니와, 그가 권좌에 오르는 과정도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김정은의 부상은 그 아버지가 밟은 전철과도 확연히 다르다.
미국의 갑부인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은 상속세 폐지를 완강하게 반대하는 인물들이다. 한국의 재벌들과 정반대인 그들이야말로 '부르조아 정신의 수호자'이다. 근대가 전근대를 혁파한다는 통념과는 다르게, 자본주의든 북한식 사회주의든 근대는 필요에 따라 전근대적 습속을 남겨놓기도 한다. 그저 일부러 남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행동양식이 따지고 보면 역사의 발전법칙이 심어놓은 기대감을 항상 밑돌기 때문이다. 근대 부르조아는 중세 귀족이 아니다. 그러나 돈의 힘이 또다시 피의 힘으로 전환되는 그 순간, 부르조아는 귀족으로 돌아간다. 예컨대 삼성재벌일가가 보이는 행태는 부르조아가 아니라 전형적인 귀족의 것이다.
북한도 초창기엔 매우 강고하게 근대화를 추구한 사회였다. 지주에게 땅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독립국가의 '공공의 적'인 친일파를 처벌했다. 하지만 남로당 출신,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경제파 등이 줄줄이 숙청당한 뒤 김일성 유일체제가 세워지면서 그들은 다시 충효논리 등 전근대적 요소를 불러냈으며 권력의 가장 굳건한 유지책인 세습으로 치달았다. 3대세습은 완벽하게 반민주적이며, 또한 사회주의의 핵심인 평등주의를 배반한 것이다.
덮어놓고 북한과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추구하는 수구보수파들이야 북한이 3대세습이 아니라 3대째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손가락질하겠지만, 진보개혁세력은 진지하게 북한의 행태를 비판해야 한다. 사설로 북한 3대세습을 겨냥하고 민주노동당의 무비판을 지적한 <경향신문>은 언론의 역할에 충실했다. 여기서 '언론'은 '언론기업'이 아니라 '말'을 의미한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말하지 않았고, 울산지역 당원들은 <경향> 절독운동에 나섰다. 이정희 당대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선택"이란다. 언론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남한에서 얼마나 많은 투쟁이 벌어졌던가. 허탈하다. 하기야 그 언론자유에는 묵비권 행사도 포함되지만, 민주노동당이 어디서 피의자로 수사를 받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공당은 한반도 북부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건을 두고 응당 발언할 의무가 있다.
그 인사들의 내심은 알 수 없으나 가장 호의적으로 헤아리자면 "북한 비판이 외교적 악재"라는 취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집권정당도 외교부 관리도 아닌, 북한에서도 조선노동당이 아니라 조선사민당이 맞이하는 군소야당의 발언으로 남북관계가 흔들릴 리가 없다. 오히려 북한 입장에선 민주노동당의 북한 비판을 한나라당의 그것보다 훨씬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주류)은 혹시 "북한은 원래 그런 데니까 그러려니 하자"는 사고방식을 가진 건 아닌가? 그렇다면 그야말로 북한 인민을 무시하는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럼에도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민주노동당 주류는 <경향> 등에게 "색깔론"이라고, 국가보안법적인 사고방식이 스며들었다고, "매카시즘"이라고 역공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을 송두리째 부정한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이들이 진보인가? 제 입장을 밝히는 다른 세력에게 또다른 딱지를 붙이는 민주노동당 주류의 태도야말로 매카시즘이다.
할 일이 자명해진다. 민주노동당 일부 당원들의 절독 운동에 맞서는 것이다. 친분 있는 어느 선생(이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43094.html)에 이끌려 <한겨레신문>을 구독하던 나, 경향신문의 1기 옴부즈만이었다가 군 제대 이후, 고향집주소로 경향신문 구독신청을 하고 서울 자취방에선 한겨레신문을 읽었던 나, 신문 한부 더 볼 작정이다. 성역 없는 진정한 혁신언론의 길을 가고자하는 경향신문에 전화를 걸어 구독신청을 하련다.
'5th Column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주당, 진보신당의 새 지도부 선출을 보며 (0) | 2010.10.26 |
---|---|
길잃은 박순이 실장의 논설 (0) | 2010.10.18 |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와 동시지방선거는 잘못되었다 (0) | 2010.08.04 |
편견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 속는다 (0) | 2010.07.21 |
구체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풀뿌리 정치 (2) | 2010.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