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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Columnist

민주당, 진보신당의 새 지도부 선출을 보며

1.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의 3파전은 일단 손학규 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손학규'는 일종의 내쉬균형이다. 여러 계파가 각자의 계산 끝에 내놓은 답이 이른 지점이 선거 결과다. 노무현 대통령이 예전 '보따리 장수'에 비유했던 이를 친노계 일각이 민 것은 의미심장하다. 총선에서 충청도 승리를 이끈 뒤 국민참여경선에 밀려 전사한 이인제 의원이 떠오른다. 3당합당에 응했다는 점, 경선 불복이라는 비난을 안고 다니는 점, 소속정당을 바꿔 대선주자 1위로 부상한 점 등 공통점도 많다. 그러나 민주당의 수준상 손학규를 띄워놓고서 '꿩잡는 매'를 등장시킬 수 있을지는 다소 의뭉스럽다.

2위를 한 정동영 후보는 놀라웠다. 과거 민주당계열에서 가장 보수적인 포지션을 고수하던 그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입시 폐지'를 내놓기도 했지만, 이번엔 더 나아가 '한미FTA재협상', '부유세 신설'까지 제시했다. 최성 후보가 '부자 증세를 하면 기업이 떠난다'고 지적하자 "나갈 테면 나가보라고 하십시오. 다른 나라 가면 세금 더 내야 합니다"라고 맞서는 정동영 의원이 결코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작심하고 진보화, 좌클릭한 것 같았다. 여기에 원래 민주당내 개혁세력인 천정배 후보, 소위 486세대로 그간 이라크파병과 한미FTA에서 혁신적 노선을 고수했던 이인영 후보가 보태어졌다.

노선 진보화에 신중하거나 불응하는 이가 대표가 된 동시에, 그와 반대쪽을 지향하는 이들이 당지도부로 진출했다. 민주당 경선을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렇다. 민주당은 노선투쟁의 길에 접어들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있는 유권자들을 공략할 것인가, 아니면 진보색을 덧칠해 이른바 진보개혁연합의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 총선과 대선까지 2년동안 이 기로에서 당내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다.

지난 2,3년간의 우경화 일방통행은 이제 막을 내렸다고 봐도 좋다. 남은 건 이념과 정책을 온몸으로 그리고 단박에 표현할 대선주자의 부상이다. 손학규와 정동영은 앞으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대중적 여론이다.

나는 그에게 호감은 없지만 정동영을 주목한다. 민영화와 탈규제에 경도되었던 2002년 경선 무렵의 정동영을, 그가 2004년 총선이 끝나자마자 보수화의 외장재인 '실용주의'를 주창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상기한다. 하지만 그마저 달라졌다는 것은 진보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보진영은 정동영을 어떻게 사고하고, 또 활용할 것인가?


2.
 
진보신당의 당대표 선출제도는 잘못되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에 견주면 또렷이 드러난다. 대표 선거의 차점자가 부대표가 되는 게 아니라, 분리해서 선출하는 제도이다. 분리명부선거는 '세팅 투표'를 뒷받침하여 특정 흐름의 최고당직 독식을 불러 일으킨다.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의 당직선거가 그랬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의 잘못을 극복하려고 만든 정당이지만, 당직 선거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런 선거에서는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대표 선거 출마를 포기할 경우, 단독출마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처음 단독대표제를 만들고 나서는 노회찬 전 의원이, 이번에는 조승수 의원이 단독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는 심상정 전 의원이 입후보를 하지 않음에 따라 본격적인 노선논쟁이 이뤄지지 못했고, 조승수 의원의 당선 의미도 확실하지 않다. 불출마한 심상정 전 의원이 첫째로는 민주노동당, 둘째로는 국민참여당 (일부)과의 통합이나 강고한 결속을 염두에 두는 '통합파(연합파)'라면, 조승수 의원은 '독자파'로 일컬어진다. 사회당과의 합동에도 무게를 두고 있으며, 특히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은 통합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그는 최근 민주노동당과의 통합 여지를 크게 잡고 있다. 좁은 뜻(진보신당만의 독자적 강화든, 사회당과의 합당까지든)에서의 독자파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대표 출마자들은 박용진 후보를 빼면 독자파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김정진 변호사가 그렇다. 그러나 부대표 정원과 출마자가 동일함에 따라 찬반 투표가 이뤄지면서, 이 선거에서도 당내노선논쟁은 활발하지 못했다. 박용진 부대표의 찬성득표율이 가장 낮으나, 어쨌든 8할이 넘는다. 결국 이번 진보신당 당직선거는 민주당과는 달리 노선논쟁을 비켜간 사례가 되었다. 나는 이것을 진보신당의 위기 징후로 읽는다. 그동안 계속 그랬듯 진보신당은 당세가 늘건 줄건 당내 토론은 활발하지 않았다. 심상정 전 의원이 투표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사퇴하고, 다른 당과의 연합을 강조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 당원은 별로 없었다. 진보신당의 당내정치는 철저히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었다. 앞으로의 야권 변동에 대비한 조기 산통이나 신속한 움직임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럴수록 명망가의 움직임에 좌우될 것도 자명하다.

진보신당의 이번 선거 결과는 노선보다 인물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조승수 의원의 대표 선출은 정치사적인 의미가 있다.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 환경운동 출신인 조승수 의원은 지방의원과 기초단체장, 국회의원을 모두 거치며 제도권정당의 대표직에 닿았다. 이런 사례는 한국에서 전무했다. 울산 이외의 지역에서는 지명도가 높지 않은 그이지만, 예전의 이력만 부각되어도 노회찬, 심상정에 필적하는 스타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광주의 지방의원 출신으로 부대표에 재선된 윤난실, 잔뼈굵은 여성 노동운동가인 김은주도 다음 줄 어딘가에 있다.

당내구도에서는 대척점에 서 있는 셈이지만, 박용진 부대표와 김정진 부대표는 둘 다 9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던 세대의 당직 진출이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나는 그중에서도 후자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박용진 부대표는 민주노동당 시절 대변인을 거쳤고 두차례 총선에 출마해 두자리수의 득표율을 올린 기린아였다. 그에 반해 김정진 부대표는 '언소주' 운동을 법률적으로 지원한 것 외에 대중적으로 노출된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그의 진면목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변호사로 있으며 그 유명한 '부유세'를 탄생시켰다. 부유세를 수용한 이가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된 직후, 그 원작자가 진보신당의 부대표가 된 것이다. 그는 정치논객으로서도 보무당당한 직설화법을 작렬시키며 진보진영이 갈 길을 가리켜 왔다. 그의 당직 진출은 조승수 의원의 대표당선보다 어쩌면 더 큰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물렁하고 심심했던 당직선거보다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을 맡을 이가 누군지가 더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한석호 문화다양성포럼 사무총장과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이 유력하단다. '독자파'로 분류되며, 거리낌없이 민주노동당 분당을 추동했던 인물들이다. 인선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하마평에 오르는 것은 일단은 '독자파'의 승리인 셈이다.


추신: 김정진, 한석호, 이재영은 한때 교분을 나누었던 인물들이다. 조승수 대표도,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몇차례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진보신당을 항의겸 경고겸 탈당한 후에는 연락한 적 없지만, 그들이 잘되길 빈다. 그래야 나도 정당정치의 유보상태를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