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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Columnist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와 동시지방선거는 잘못되었다

[여기는 구미] 선거 제도, 이것은 고쳐져야 한다
 
김수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2006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도입되었다. 그 이후 한 동료와 낯을 붉혀가며 몇차례 논쟁했다. 그는 찬성자론자였고 나는 반대했다. 일부 시민단체와 진보정당도 그처럼 공천제를 주장해왔다. 가장 큰 명분은 정당의 책임정치 활성화일 것이다. 반면 나는 정당공천제가 그 자체로 그르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맞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앙집중성이 강하며 정당들도 중앙정치 위주로 형성되었다. 철저하게 말이다. 한국의 정당은 아직 기층의 많은 주민들에게 낯선 데다가, 특히나 지역정치에서는 정책노선을 가늠하기보다는 편견을 생산하는 도구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인물이 정당보다 더 정책친화적이며, ‘인물 보고 찍자’가 정치개혁의 목소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실을 혁파할 목적으로 정당공천제를 유지하여 정당의 풀뿌리 조직 활성화를 유도하자는 주장을 펼 수도 있다. 허나 이것은 한국사회의 양대 정당이자 각기 영남과 호남에서 맹위를 떨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수준에 의해 힘을 잃는다. 기초의원이 중앙정치, 정확하게는 국회의원에 예속되고 마는 현황은 구구한 예시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다. 또 이것이 영·호남에서 특정 정당의 지역독점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기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한편으로, 상향식 공천제를 채택하고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움직이는 정당이더라도 유념해야 할 바가 있다. 지역정치의 의제는 중앙과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고, 지역은 지역대로의 정치 구도가 있다. 고로 중앙정치로부터 다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지역적 정치조직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지역의 주요 의제를 중심으로 당적의 차이를 뛰어넘고 당적이 없는 시민사회 구성원들을 규합하여 해당 지역만의 정치조직을 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중앙정치의 구도가 그대로 지역정치에 이식되는 정당공천제는 이런 역동적 가능성을 제약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단서를 달자. 내가 ‘당원의 입후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감, 교육의원 선거가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정당공천제 폐지를 외치는 일부 정치인들도 그러한 의견을 펴지만, 이것은 정당정치에 대한 너무 극단적이 거부이자 보편적 피선거권의 심각한 훼손이다. 나는 정당공천제가 없어진 자리에 ‘정당추천제’를 들여놓자는 대안도 갖고 있다. 어떠한 후보가, 그가 당적이 있든 없든, 1개 이상의 정당에게 정책연대를 고리로 하여 추천받을 수 있는 제도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외형적으로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뿐, 각 후보가 정당 경력을 활용하거나 정당들이 ‘내천’이라는 방식으로 후보를 지원할 것이다.” 나의 대답은 “그것이 지금보다 낫다. 나쁘지 않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의 취지는 무엇보다 국회의원이 기초의원의 생살여탈권을 쥐는 제도적 취약점을 해소하고, 후보자의 정당 간판들이 만든 구도에 몰입하여 유권자들이 안이한 판단을 내리는 여지를 줄이자는 데 있다. 
 
정당공천제를 시행하여 정당이 지역 주민들에게 친숙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적 없는 대다수 주민들로부터 기초의원 선거와 기초의회가 더 멀어진 측면이 크다. 정당공천제는 작금의 진보진영에게도 별로 유리하지 않다. 착실한 지역활동과 좋은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수당’이라는 간판에 의해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보수진영은 보수진영대로 내부의 다양성을 잃고 중앙정치 및 국회의원이라는 구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공천을 받으러 들어간 정당의 틀 내에서 획일화된 인사들은 새로운 민생 정책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다.  
 
나는 선거기간에 재확인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정당공천제 반대 목소리가 드높았다. 특정 정당의 지역독점과 맞물리면서 불만은 더 커진 차였다. 기초의회 입성을 준비하는 이들이 특정 정당에 몰려가 공천 신청을 하고, 국회의원이 사실상의 공천권을 갖고 있으며, 공천이 끝나고 잡음이 일어나는 현상에 신물이 난 것이다. 아무리 멋진 야자수라도 낙동강변에서 잘 자랄 수는 없다. 나와 논쟁했던 그 동료도 이미 지난해에 견해를 바꾸었다.  
 
동시 지방선거  
 
1991년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따로 있었다. 그러나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뽑기 시작한 1995년부터 4개의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 그 무렵 내가 아는 한 어른은 ‘1-3-1-3’하는 식으로 기호를 외워서 투표장에 갔다. 2002년에는 광역 비례대표 의원 투표용지가 추가되었고, 2006년에는 기초 비례대표 의원까지 더해져 1인 6표가 되었다.
 
2010년은 혼란은 더더욱 가중되었다. 교육감과 교육의원까지 직선제로 선출하면서 한사람 앞에 여덟 장의 투표용지가 올라온 것이다. 나는 선거운동기간 길거리에서 여러번 문의를 받았다. 이번에 어떤 부문의 투표가 실시되는지, 투표장에 가기는 갈 텐데 가서 어떻게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휴~ 복잡해서 제대로 하겠나 모르겠네요."
 
어떤 분은 웃으며 농을 쳤다. “헷갈리는 사람은 그냥 다 1번 찍어버릴걸?” 나는 무소속 후보자 기호 추첨식에서 재밌는 풍경을 보기도 했다. 어느 교육의원 후보자가 1번을 뽑는 순간 다른 후보자들이 순간 당황했고 장내가 술렁거렸다. 교육의원 후보는 기호가 없었지만 투표용지의 가장 윗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기호 1번이나 다름없었다. 경북에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감, 교육의원도 1번 기호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언론은 '줄투표'를 우려했다. 물론 선거 결과를 보면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서울시에서도 구청장은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고 시장으로는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한 사례가 꽤 있는 것 같았다. 내 지역구도 그렇다. 통계를 보니 도지사는 한나라당, 시장은 친박연합, 시의원은 무소속을 찍은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교육의원 당선자는 세번째 칸에 이름을 올린 후보였다.
 
동시지방선거의 해악은 따로 있다. 예컨대 단체장에게 불만이 있으면 어떻게 심판해야 하는가? 현재로서는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 첫째는 주민소환제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추진하는 과정이 엄청나게 험난하고 까다로움을 알고 있다. 둘째,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는 것이다. 4년을 기다려야 한다. 셋째, 욕하면서 그냥 사는 것이다. 담벼락에 대고라도 욕을 하라는 격언도 있지만, 너무한 일이다. 지방의원 선거만큼 좋은 단체장 중간평가는 없다. 지방의회에 대한 중간평가로도 지방단체장 선거가 적당하다. 동시선거보다 교차선거가 훨씬 합리적이다. 지방의원 선거와 지방단체장 선거를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교차선거로 가려면 임기 조정이 있어야 한다. 임기가 줄어든 쪽은 반발할 것이다. 임기를 차기 선거부터 줄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차차기에 도전하려는 사람은 선거비용 부담에 비해 임기가 짧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거꾸로 누군가의 임기를 늘리는 법이 있다. 하지만 단체장이건 지방의원이건 한시적으로라도 5년 내지 6년의 임기를 누리는 걸, 당사자 외에 곱게 볼 사람이 있을까? 한시적으로 지방의원과 지방단체장의 임기를 한쪽은 3년, 다른 한쪽은 5년으로 정하는 방법이 그나마 현실적이지만, 이마저도 쉽진 않을 터이다. 그러게 제도는 처음부터 잘 설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