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아직 낯선 '무소속 진보 시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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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구미] 헛소문과 착오, 처음 마주친 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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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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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무분별한 선거연합 전략에 항의해 진보신당을 탈당함으로써 전역 이후 참여했던 진보정당 활동이 막을 내렸다.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당시에는 정말 앞길이 막막했다. 정치의 포기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 취업 준비를 하든 시민운동을 하든 굳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계획이 지역에서 진보진영의 선거운동을 돕겠다는 결심, “너 같은 사람이 나가야 한다”는 고향 친구의 권유, “정치인 체질은 아니지만 기초의회 진출은 좀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 구미 지역 시민사회운동과 진보정치세력과의 만남을 통해 선거 출마로 이어진 것이다.
▲ 필자의 2010 지방선거 'LED를 켠 전동자전거 유세' 장면. 매연이 발생하지 않고, 부피가 작아 골목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고 한다. © 김수민 블로그 | | 무소속 진보 후보의 출현은 구미에서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곧바로 오해가 뒤따랐다. 선거운동 초창기에는 몰랐다. 후보자의 젊은 나이나 ‘당당한 시민대표’라는 문구만으로도 “야당 성향”, “혁신 성향”임을 알아보는 유권자들을 주로 만났으니까. 그러나 뒤로 퍼지는 소문은 달랐다. 일단 “민주노동당에서 내보낸 후보”라는 풍설이 돌았다. 단지 내가 소속된 ‘풀뿌리희망연대’에 민주노동당이 참여하고 있다는 게 근거였다. 여기에는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정반대의 소문, “당선되면 한나라당이나 친박연합에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내 정책 및 공약에는 한나라당이나 친박연합을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헛소문이 퍼지는 까닭은 아무 근거 없이도 말을 만들고 또 그 말이 말을 만드는 과정 때문이었을 것 같다. 정책 노선보다 간판에 집중하는 선거 풍토 탓이기도 하다.
또 선거 내내 ‘평범한 사람의 도전’을 외쳤지만 “저 사람은 정치지망생이고, 다음을 보고 이번엔 이름 알리려고 나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무소속이라서인지 ‘정치 도전’에만 초점이 맞춰진 귀결인 듯하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아무리 저비용 선거를 해도 나로서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내 통장 두개가 깨졌다. 3만5천 세대 이상이 사는 거대 지역구에 배포할 공보물 제작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선거기간 동안 스스로 정치인 체질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름 알리려고” 그 짓을 했겠는가. 더욱이 나의 출마 사유는 “정치지망생 아니라도 기초의원할 수 있다”였다.
헛소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부터 나는 구미 지역에 팽배한 반한나라당 정서를 읽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진다고 확신했으며, 내가 이기자 이변의 원인을 지어냈다. 모 회사 기숙사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몰표를 받아 역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기숙사가 있는 동네를 빼도 당선권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내 부친이 지역사회에서 발이 넓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아버지가 실험삼아 내보냈는데 떡 붙어버렸다”는 설이 떠돌았다. 하지만 정작 나의 부친은 출마하겠다는 내 고백을 들은 직후 매우 당혹스러워했었고, 정치 성향이 달라서 내보내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스폰서가 있어서 당선됐다”는 설도 있다. 나의 명분과 노선에 공감해주고 알아서 홍보를 하고 다닌 유권자 분들, 특히 사회운동에 참여해온 시민들이 ‘스폰서’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긴 맞다. 이밖에도 여기저기 떠도는 소문을 다 합치자면, 나는 네 명의 애인과 한 명의 부인이 있고, 고향이 구미이기도 하고 구미가 아니기도 하며, 4개 정당에게 입당 제의를 받았고, 전 재산은 80만원인데 돈이 많아서 출마한 사람이다. 앞뒤가 맞지 않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헛소문 못지 않은 착오도 숱하다. 젊은 나이에 무소속이라서인지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는 착각이 없지 않다. 이는 충고나 압력으로 이어진다. “KEC파업현장 방문을 자제해달라”, “니가 유시민이냐. 옷차림을 좀 번듯하게 입고 다녀라”. 대체로 연고 관계를 통해 전달되는 편인데, 이분들은 나의 이력에 대한 뒷조사를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루머와 오해의 원인은 하나로 모아진다. 내가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면 이 모든 헛말은 애초에 빚어지지 않았을 테고, 턱없는 요구도 없었을 것이다. 정체성 훼손을 이유로 그 당들을 떠났던 내가 마주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니 들어갈 만한 정당이 빨리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들지만, 현재 정치구도는 내 바람과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어쨌든 당명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노선을 낮고 작은 공간에서 혼자의 이름을 걸고서라도 써내려가겠다는 계획을, 싫으나 좋으나 당분간 지켜가야 하는 형편이다.
한편, 정반대 방향에서 나오는 관측도 있었다. 사회운동 경력이 있고 진보 성향인 만큼 집행부 공무원이나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매섭게 나오리라는 우려다. 시정 업무보고를 거치며 한 지역 언론에는 나와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이 “턱없이 발언 강도가 높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차분한 논리를 앞세웠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업무보고는 말 그대로 업무를 보고받으며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의하고 그 과정에서 의견개진과 토론을 하는 자리다. 나로서는 목소리가 쉽게 커질 이유가 없었다. 또 집행부와 의회 간의 관계는 서로에게 당당하면서도 정중해야 한다는 것이 내 기본 원칙이다. 의회 동료이자 사회운동의 선배인 김성현 의원은 직급이 낮은 공무원에게도 깍듯한 자세로 임해 내게 귀감이 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의 정치권력 점유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한나라당 인사들의 성향은 다양할 수 있음을 유념하고 있다. 일반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의원 개개인이 하나의 기관임을 명심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소수파에게는 소신 지키기만큼이나 절실한 덕목이 사안별 연대에서의 적극성이므로 선험적 규정과 섣부른 등돌리기는 금물이다. 따지고 보면 무턱대고 달려드는 습성을 가진 인물이 진보진영에 몇이나 될까.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진보운동을 오래하지 못한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에게 속는다. 타인의 사유와 세상의 변동을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도 피해자다. 편견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무소속’은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한 이의 간판이라는, ‘진보’는 민주노동당밖에 없다는, ‘젊은 후보(의원)’는 정치지망생일 거라는 편견은 그간의 구미 지역정치가 만든 앙금이다. 틀에 박힌 경험이 극악 단순한 프레임을 구성한 것이다.
이제 이를 활동 자체로 반증해 나가야 한다. “전에 보지 못한 사람”이 되어 편견을 깨야 한다. 이것은 기초의회를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으로 재정립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아주 어려운 길은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기실 “전에 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당선될 수 있으며, 모두 기초의원이 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