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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중계

구미의 '지역 정서'는 다양성입니다.

어제 어느 주민 분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유지 분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지역의 두 분 시의원님과 함께 참석하여 지역의 여러 현안들-강동문화복지회관, 도로 개설, 이계천 살리기, 3.12공원조성 등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막바지에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자리에 박대통령이나 새마을 관련한 사업을 열성적으로 하시는 분들도 계셨지요. 저는 의정 발언과 논평을 통해 말씀드렸던 이야기들을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서로 발언이 오갔지만 얼굴을 붉히거나 언성을 높이는 그런 풍경은 전혀 아니었고, 차분하게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사실 제가 어제 들었던 이야기들은 늘상 들었던 이야긴데,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그분들께 생소하였을 것입니다. 색다른 기회라 생각하시고 숙고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까봐 말씀하신 것에 대한 직답만 해드렸는데, 마지막에 들려주신 이야기에는 답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이야기는 '지역 정서'입니다. 지역 정서를 조금 더 신경써서 활동해달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러면서 "'사견'을 말하면 되겠느냐"는 말씀도 나왔습니다.

어제 못드린 말씀을 여기 적자면 "지역 정서"를 운위하는 것은 반칙입니다. 지역 정서의 기준이 무엇일지? 사람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자기 주변에서 형성된 중론이 지역공동체 전체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독자 분의 소개로 알게 된 멘트가 있습니다. 저의 박대통령 기념사업 정부 보조 반대에 관한 어느 구미시민의 호응입니다.

저도 구미에 거주하고 있는데 사실 박정희 좋아하는 사람 거의 못봤고 다들 관심 없습니다. 예전에 무슨통계를 봤는데 구미가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손꼽힐정도로 낮다고 하더군요. 이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구미자체가 취업+대구 출퇴근 목적이 전부라서 연령이 높을수가 없긴합니다. 그래서 박정희를 좋아하지않는다기보단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드문 구미 토박이 어르신분들은 뭐 당연히 좋아하시고...저런데 돈써도 딱히 누구도 욕하지 않는건 관심이 없기도 하고 구미시가 원체 재정이 좋다고 알려져있기때문에 그냥 넘어가는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재정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제게 지지를 보내시는 이분의 견해를 "지역 정서"로 치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분들의 생각 역시 일부의 생각인 것이며, 어제 어르신들이 제게 말씀하신 "지역 정서"도 사실상 일부의 견해입니다.

 제가 의회에서 무슨 역사토론을 개최하다가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시 예산을 두고 삭감 요망을 밝혔던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시의원으로서의 직무수행이며, 사견을 밝힌 것이 아니라 반대 입장에 선, 또는 예산 소요가 꺼림직한 시민들을 대변한 것입니다.

구미시의원은 스물 세명입니다. 스물 세명이서 구미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빠짐없이 대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 의견을 '사견'으로 단정지으면서 "지역 정서"에 충실하라는 것은, 제 지지기반과 소신을 배반하면서 주류에 편승하라는 요구에 다름아닙니다. 그럴 것이라면 선거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박대통령을 추앙하는 분들이나, 그 반대편의 저 같은 사람이나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구미가 산업화의 선두 도시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음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산업화가 일찍 진행된 지역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만들어내게 되고, 다양한 노선들을 빚게 됩니다. 비근한 사례로는 울산이 있습니다. 구미처럼 박정희 정권기에 발전했던 울산은 1987년 민주화 국면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고 강력한 노조와 진보정당 소속 공직자들을 갖게 됐습니다.

구미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울산과 달리 박대통령의 그림자가 큰 것은 지역주의라는 요건, 박대통령 시절 형성된 권력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등의 정치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점차 관념적인 수준으로 머무르게 되고,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도시의 정서는 바뀌게 되는 겁니다. 저 위에 제가 예시해놓은 한 시민의 의견도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영남지역이 아직은 호남지역보다 정치적 다양성이 있습니다. 대구경북은 한나라당 독점현상이 강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파열음이 나지 않았습니까? 만일 저 같은 사람이 전라도에서 출마했다면 당선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산업화의 진척 수준에 따른 호남과 영남의 차이라고 봅니다.

다양성은 산업화와 탈산업화가 낳은 산물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견해를 억누르거나 억지로 외면하는 자세는 토론과 경쟁, 합의와 조정에 다가서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역동성도 없고 결과적으로 안정성도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이 실상 박정희 대통령 일인의 주도가 아니었듯, 박대통령 기념사업 정부지원에 반대하는 시의원의 등장 역시 제가 선도한 것이 아니라 구미 지역의 변화의 한 편린입니다.

보수층이라고 해서 다같은 보수층은 아닙니다. 자신의 입장에 도전해오는 세력들에게 어떤 역량으로 대처 또는 응전할 것인가,에 따라 '합리적 보수'와 '수구반동'이 갈립니다. '지역 정서'를 방패로 삼는 것은 안일한 자세입니다.  

만물은 변합니다.


추신:
어제 박대통령 기념사업과 인동지역 독립운동기념사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유지 분들이 제가 대학에서 한국사, 특히 근현대사 공부를 했다는 것을 듣고 큰 관심을 표명하셨습니다. 현재 진평동 뒷산에 3.12기념공원을 조성하자는 여론이 있는데, 역사적 근거를 풍부히 하고 '스토리 텔링'을 하는 데 제가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어른분들께 그런 작업을 도맡아해달라는 건의를 받았습니다.

매사 이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는 차이대로 인정하면서 대응하고, 공통점은 찾아서 협력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