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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나누기

"온순했던 아이가 너무 거칠어졌습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요즘 부쩍 바뀌어버린 아들의 행동에 걱정이 많이 듭니다. 예전에는 온순한 아이였는데 요즘 너무 거칠어졌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왜냐면 방학 때 같이 다니고 하더니 그후로 달라졌거든요.

저한테도 때로는 거친 언행을 합니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옵니다. 처음엔 아주 야단을 쳤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저도 힘이 쭉 빠집니다.

아이가 사춘기라서 그런가요? 그러나 어느 정도 반항적인 것은 몰라도 너무 심하지 않나 싶습니다.

친구들하고도 어떻게 어울려 다니는지 걱정이 듭니다. 성적은 둘째치고 학교는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농땡이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사귀는 친구들도 예전하고는 너무 다릅니다.

친구들하고 쏘다니다 보니 집에는 오래 있지 않는데, 집에 있어도 계속 컴퓨터 게임만 합니다. 장래희망도 딱히 없는 것 같고,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사람에게는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욕구는 저마다 다릅니다. 어른들은 부모나 교사에게 칭찬받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완벽한 착각입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또래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점을 헤아리지 못해 부모님들이 아이들 체면을 깎는 사례도 부지기수입니다. 예컨대 "우리 애는 말을 참 잘 듣고, 시키는대로 잘해요"라고 칭찬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넌 부모님한테 휘둘려서 사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부모님 기준을 내세우다 보니, 아이가 친구들앞에서 '영'이 서지 않는 겁니다. 간혹 왕따당하는 학생 중에 교사나 부모에게 칭찬받는 학생을 보셨을 겁니다.
 
먼저 주의해야 할 점은 "사춘기라서 저러겠거니"하고 간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통 '사춘기'를 어릴 때와 철들 때 사이의 어떤 과도기로 파악을 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이한 관점입니다. 지금 아이는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휩쓸려간다고 보여질 수 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새로 기준을 만들고 자아를 정립하고 있는 겁니다. 진전된 해법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걸 인식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만일 "친구들에게 휩쓸려가는 것을 '바로잡겠다'"는 생각이 있으시다면, 미련 없이 접으셔야 합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 아이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겠다. 나는 그동안 속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온순했던 자신의 지난날에 스스로 싸움을 거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존감보다 반감에 기대어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단순히 친구들에게 휩쓸려가게 된다면 이 역시도 개성을 확립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좋아하는대로 행동했지만, 이제는 별다른 기준이 없으므로 컴퓨터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다니는 것 이외에는 다 흥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아이의 막나가는 행동은 지나친 자존심이 아니라 자아존중감의 박약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 어른들에게 무시당할 만한 처지에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험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역시나 어른들하고는 싸워야 한다'는 결론만을 굳히게 되는 것이지요.

어머님과 아이의 견해는 이제 더이상 일치할 수 없습니다. 쉽게 좁혀지지도 않습니다. 이제 차이를 직시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단, 최대한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논리적인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가? 그게 아닙니다.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쉽게 꺼내는 권위나 힘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다면, 야단치기에 앞서 어떤 게임을 하는지 관심을 보이십시오. 지나친 개입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면서, 가끔씩 물어보는 겁니다. 할 수 있다면 게임을 배워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컴퓨터게임이라는 게, 아이들만 빠지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빠질 만한^^, 그래서 아이들도 빠지는 그런 거라서요.

근데 사실 지금 제 눈에는 아이의 문제보다 어머님의 심정이 더 먼저 보입니다. 상담을 요청하신 분은 아이가 아니라 어머님입니다. 아이가 험한 말을 하는 것보다도 험한 말을 듣는 어머님의 현재가 더 신경이 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나서 보십시오. "니가 감히 부모한테 이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엄마도 사람이다. 니가 그러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말씀해보세요. 당장에 상황이 어떻게 나아질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녀도 사람이고 부모도 사람이니 과도하게 짊어진 짐은 일단 내려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보다 먼저 지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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