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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자라난 길

아직 듣는 질문에 대한 길다란 답

얼마 전 어떤 시민 분과 오래도록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인사와 근황을 나누다 보니까 이야기가 선거로 옮아갔습니다.

"그런데 선거 때부터 정말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당선될 줄 알고 나오셨습니까?"

당선 이후에 몇차례 이런 질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이런 궁금증이 많을 거라는 예상을 못했습니다. 아마 여느 분들과 선거를 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많이 돌아가야겠네요.

2008년 총선 당시 저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제가 살던 지역에 나온 진보신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 이번에 제가 당선된 순간 그 선배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굴 뵌지 꽤 되신 분이고, 미안하다는 마음도 못 전해드렸지만요. 그 선거는 정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치렀습니다. 신생 군소정당의 후보로서, 지선도 아닌 총선을 치른다는 것이 그랬지요. 원래 저는 그분의 출마를 반대할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리 총알받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희생하면 안 된다! 의견을 물으러 회의가 소집되었을 때도 반대에 손을 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출마를 작심하는 모습을 보고 찬성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그 이후로는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제가 찍은 후보 중에 당선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랑 저밖에 없습니다. 2004년 총선 구미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가 10퍼센트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제가 찍은 후보들은 다들 한자리수 득표율을 올렸습니다. 2008년에 제가 도와드렸던 분은 4%가 나왔습니다. 선거 캠프의 자평은 "할 만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보물도 4면으로 찍고 하마터면 선거차량도 못구할 뻔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들은, 그리고 저는 왜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었을까요?

<딴지일보>에서 든 비유가 있습니다.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 기억하실 겁니다. 무대 위로 올라온 장병들 대다수는 진심이든 쇼든 간에 "뒤에 계신 분은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외치지요. 그런데 이따금 "뒤에 계신 분은 저의 어머니가 확실히 아닙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왔습니다"라는 장병이 있습니다. 그러고서는 집에 계신 어머니, 또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