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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선거운동

출마선언문

구미 시민 여러분, 인동동(구평동, 신동, 인의동, 황상동), 진미동(시미동, 임수동, 진평동) 주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 구미시의회 바선거구에 출마하는 예비후보 김수민입니다. 구미시가 전반적으로 그러하지만 인동동, 진미동은 외지 출신 시민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구미에서 태어나 20년의 성장기를 보냈으니 토박이라면 토박입니다만, 서울에서 7년 살았기에 외지인의 관점까지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구미시는 평균연령 30세 가량의 젊은 도시입니다. 특히 진미동, 인동동은 구미 중에서도 젊은 분위기를 과시하고 있지요? 제가 젊다고는 하나 시민평균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구미에서 태어나 자란 것부터가 그렇겠지만 저의 구미 출마는 숙명이라면 숙명인 듯합니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남원의 유력자가 아닌 과거에 급제한 암행어사로서 변학도를 응징합니다.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품고 키워온 중앙집중성의 한 단면입니다. 이러한 몰입과 집중은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였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의 대한민국은 비대한 수도권과 갈수록 앙상해지는 지방으로 이뤄진 ‘가분수’입니다.

스무살에 상경하여 최근까지 서울에서 여러 미디어활동을 하면서 저는 중간중간 풀뿌리언론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역사학도로서 동향 출신의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육학도로서 지역사회에서 학교와 학원을 잇는 동시에 뛰어넘는 마을교육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도 했습니다. 구미에서도 영화제나 록페스티벌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대구 성서나 서울 마포 등지에서 실험하고 있는 소출력라디오방송이 구미에서 시도되면 좋지 않을까. 여러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런 저의 모색을 턱하니 가로막은 거대한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현주소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 부활한 지방선거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는 명망가, 토호 등의 전유물로 굳어졌고 특정정당의 지역독점도 더욱 강고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 여러분의 혈세가 헛돈으로 새어나가는 현실에서, 사회 경제 문화 등 어떤 분야에서도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정치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은 우리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그 모든 유형의 사람들이 시의회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 당장에 그것이 힘들다면 먼저 결단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지난해 말, 저의 이야기를 듣던 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는 고개 숙인 채 술잔을 채워주고선 "바꾸지 않으면 해먹던 사람이 계속 해먹는 게 구미“라며 한마디 흘렸습니다. “너 같은 놈이 해야 되는데...” "나가라"가 아니라 "되는데..."로 끝낸 그의 한마디가 저에게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구미는 평균소득과 복지혜택이 전국 최상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시민들은 삶의 질이 그만큼에 미치지 못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더욱 암담한 사실은 지방자치를 통한 개선 역시 요원해 보인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많은 시민들의 마음이 지방자치로부터 떠났습니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였고,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정당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정치구조 탓에 다양한 선택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불만은 누적되고,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민심은 방향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더는 늦출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내세울 후보자를 물색하려고 했던 저도 마음을 고쳐먹고 직접 도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울의 어느 지역에서 전봇대 앞에 산더미처럼 놓인 불법투거 쓰레기봉투들이 어느 날 모조리 사라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비결은 단 하나였습니다. 화분입니다. 몰래 쓰레기를 버리던 사람들은 화분을 보면서 마음을 바꾸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사소한 변화가 인간과 상황과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저는 구미시의회의 화분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 그리고 저 같은 사람, 진작 구미시의회에 있었어야 했지만 아직은 없었던 사람. 이런 사람이 이제라도, 단 하나라도 들어가면 무능과 독점의 시의회, 그 밑바닥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저는 대충대충 하지 않습니다. 제가 착하고 정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주먹구구 엉터리로 일을 처리하고도 거대정당에게 손바닥 비벼서 권력을 유지하는 그런 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소속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속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힘이 곧 저의 힘입니다.

그래도 김수민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저는 시의회에 들어서는 즉시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준비에 착수할 것입니다. 주민참여예산제란 말그대로 주민 여러분들이 예산을 심의하고 편성하는 데 참여하는 제도입니다. 소위 선진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몇몇 지역에서도 시행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왜 도입은커녕 거론하지도 못했는지 ‘모르다가도 알 일’이지만, 제가 시의회에 들어가 제안할 경우 구미의 어느 시의원도, 시장도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습니다. 만약 반대한다면 시민들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또 저는 당선 즉시 ‘주민자문회의’를 구성하겠습니다. 남녀노소, 각계각층, 심지어 투표권 없는 청소년과 외국민까지 모시겠습니다. 거기서 기꺼이 여러분께 감시받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3백만원에 가까운 시의원 월정수당+의정활동비를 취업자 평균임금(2008년 기준 월 203만원)과 연동하는 조례안 수정안을 내겠습니다. 부결되면 혼자서라도 스스로 월급을 깎겠습니다. 대표자의 처우는 국민평균과 함께 가야 한다는 소박하고도 당당한 철학에 의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제가 뜻을 둔 모든 사업을 지방의회를 통해 관철하겠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누구나 깨닫고 있는 이치인데도 우리는 학교와 학원에만 의지하지 않았습니까? 성적과 관계없이 학생 모두를 경쟁에 찌들린 패배자로 만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마을이 학교와 학원 등 기존의 교육기관을 이어주는 동시에 이를 뛰어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취미별, 과목 및 단원별로 펼쳐지는 학생들의 모임을 떠받쳐주고,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성인을 이어주는 체계를 꾸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협동교육네트워크’입니다. 외형적 성장에 비해서 아직 교육 발전이 더딘 인동동, 진미동으로서는 더욱 중대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육감, 교육의원보다 시의원이 역할이 더 막중합니다.

연대, 소통, 네트워크는 교육 뿐 아니라 구미의 '사회적 경제'를 살립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자신도 잊어버리고 사는 듯하지만 구미는 농도복합도시입니다. 신도심지로 부상하는 진미동, 인동동 역시 그러합니다. 지역에서 나온 깨끗하고 맛좋은 농산물을 학교, 관청은 기본이고 구미 각지 급식소의 먹거리로 올리겠습니다. 구미는 또한 대구와 함께 사는 도시입니다. 새로 뚫리는 전철 시대에 발맞춰 구미와 대구의 문화, 교육, 산업의 연계를 강화하겠습니다. 버스타기의 불편함과 주차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위해 노선 개편과 친환경 마을버스를 추진하겠습니다. 복지사업의 확대, 지역문화예술과 마을언론의 활성화를 통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첫걸음을 떼겠습니다.

그런데 복지도시, 문화도시, 교육도시로 가는 길목에서 지금 구미는, 공단을 낀 인동동, 진미동은 난관에 부딪혀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중소상인들을 위협하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문제는 구미에서도 이미 커다랗게 의제화된 바 있거니와, 구미공단 자체가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현재 정부여당은 수도권규제를 완화하고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변질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공단이 양쪽으로 빠져나가게 생겼습니다. 구미지역의 4대강(낙동강)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흙먼지도 반도체공장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래도 힘이 있다’는 이유로 많은 시민들께 지지받아왔으나 한나라당은 이를 저지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기득권세력과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제가 민의를 직접 대변하면서 동시에 방방곡곡의 양식 있는 분들과 손잡고 전국적인 싸움을 벌이겠습니다. 서민을 깔아뭉개고 구미를 옥죄어오는, 진미동과 인동동의 발전을 도로묵으로 만드는 손아귀를 향해, 낙동강 모래밭에 “우리는 당신들에게 지지 않는다”는 푯말을 세우겠습니다.
 
저는 대학 재학 시절 우연히 방은 툇마루고 천장의 반은 하늘이던 처참한 환경에서 혼자 살아가던 어르신을 만나뵜던 적이 있습니다. 군복무 시절 치안현장에서는 친자식이 아닌데도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 폭력남편과 헤어지지 못하고 눈물 흘리던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활동을 했지만 그런 분들께 밥 한끼, 웃음 한번 되어드리기도 벅찼습니다. 이제 저는 제 고향이자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비로소 그분들과 같이 길을 걸어갑니다.

현재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언론의 보도 태도입니다. ‘청년 후보’, ‘20대 후보’라고 조금 치장해주고 넘어가겠지요. 틀렸습니다! 저는
어르신
어린이와 아기
청소년 학생
실업자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주부
의 후보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반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특권’입니다. 지금은 제가 조금 앞서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곁에, 언젠가는 저보다도 앞에 여러분들이 서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특권을 깨고 주민권력의 물꼬를 터버릴 겁니다. 그리고 헛돈을 막아 민생으로 돌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4월 1일
김수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