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풀 협동조합-살구시민정치캠프 공동기획 <살맛 나는 구미, 상상은 현실이 된다> (2)편 교육: '고교평준화'
"구미 시민의 주권자 연대이자 지식공동체로서 연구·조사·각종 모니터링·정책 수립과 토론·강연·집회 등으로 구미 지역 풀뿌리 정치를 혁신하고 대안을 창출합니다." 시민정치조직을 표방한 살구시민정치캠프(이하 '살구캠프')가 지향하는 목적이다. 여기서 '살구'란 '살맛 나는 구미'의 줄임말이다. 현재 살구캠프는 페이스북에 그룹을 만들어 15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살구캠프는 구미의 분야별 주요 정책 대안을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분야별 제1순위로 꼽힌 정책들을 <뉴스풀e>에 연재한다.
구미시는 근래 들어서도 조금씩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도시의 여건에 여러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교육’이다. 비단 대학입시 뿐 아니라 교육의 다양한 목적에 관심을 가진 어떤 시민들에게도 구미 교육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지 않는다.
우리 살구캠프는 구미에 가장 시급한 교육 정책으로 ‘고교평준화’를 선정했다. 설문과 토의에 참여한 심사단원 거의 모두가 제1순위로 이를 지목했다. 명문고 육성론에 중점을 둔 구미 지역 주류 정치권과 교육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원주, 목포, 포항은 하고 구미는 하지 않는 것
고교평준화를 시행해야 할 이유는 크게 여덟 가지다. 첫째, 중학생의 과도한 학습부담을 덜 수 있다. 둘째, 학생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을 낮춘다. 셋째, 성적으로 학교가 나뉘지 않고 다양한 학생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현대사회의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에 부합한다. 넷째, 평준화가 학력을 저하시킨다고 입증된 바 없다. 다섯째, 서열화가 아닌 평준화가 학교간의 제대로 된 경쟁을 이끌어낸다. 여섯째, 성적상위학교의 학생들이 처한 ‘내신 불리’를 타개할 수 있다. 일곱째, 많은 학부모들이 ‘비평준화’를 학생의 역외 유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여덟째, 평준화는 지역사회와 학교의 연계에 부합한다.
서울특별시와 광역시들은 모두 고교평준화를 실시하고 있다. 그 밖에는 대도시부터 우선 도입되는 분위기지만 구미보다 더 적은 인구의 지역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구미에 “학생들이 고교를 졸업할 때쯤 성적이 입학 당시보다 못 하다”는 지적이 나돈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두는 것’이나 상위권 학생들에 집중 투자하는 것으로 그 해법을 잘못 짚었다. 그동안 구미 교육은 입시성적면에서도 크게 나아진 바 없다.
오히려 “고교 입시 준비하느라 중학생 때 힘을 소진하고 막상 고교에 가면 지쳐 나가떨어진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다. 비평준화지역 구미에서 중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과중한 학습이나 사교육에 내몰려 있다.
한국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세계 1위 수준이다. 정규수업, 보충수업, 사교육 시간 모두 압도적으로 길고, 다만 혼자 숙제하는 시간이 짧을 뿐이다. 언필칭 ‘자기주도학습’에서도 멀어져 있다. 비평준화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다각적으로 학습의 능률성을 올릴 수 있는 경로들을 차단하고, 조기에 학생들을 성적경쟁으로 몰고 간다. 인권과 건강을 훼손하고, 교육의 수월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열화(비평준화)는 학습능률에 도움 안돼 교육학계 정설, "고교평준화와 학력 저하 무관"
또 정부에서 설령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해도 교육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은 가중된다. 구미시민 최영희 씨는 “구미는 초등학생부터 학원을 돌고 있다. 고교평준화가 시급하다. 다른 정책은 그 이후의 문제다.”라며 비평준화 지역의 심각한 현실을 토로했다. 시민 배상우 씨도 “내 자식만 좋은데 보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공교육을 망친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학교에 보내는 것이 학생들의 현재와 미래에 해롭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수준과 여건이 비슷비슷한 이들끼리 모여 있다면 그 학생은 다양성 속에서 성장하지 못 한다. 더구나 재산 및 소득격차가 교육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기에 고교서열화는 계층과 계층을 분리하고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기제로 작동한다.
일각에서는 고교평준화가 ‘하향평준화’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구미 지역 민주당 모 간부는 페이스북에서 평준화 이후 학력이 저하되었다고 단정지으며 때아닌 '자사고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교육학계에서 고교평준화가 고교생 학력을 저하시킨다고 입증한 연구 사례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평준화 이후 학력이 다소 상승했다는 학설은 소수나마 존재한다. 요컨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라고 볼 수 있다. (김기석, 강상진, 김석진 지음 <고교 평준화정책 효과 실증 검토> 참조) "중학교 입시를 폐지하고 평준화했더니 학력이 더 나빠지던가?"라고 반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교서열화는 도리어 학교와 학교간의 경쟁을 불발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성적서열이 다 정해져 있는 학교들 사이에서 경쟁효과가 생길 리 만무하다. 고교평준화가 아니라 고교서열화가 바로 '하향서열화'라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그나마 어느 정도의 경쟁이 시작된 건 구미시 관내 고교가 증가하고 난 이후다. 그리고 고교수의 증가야말로 고교평준화를 시행할 시점이 되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고교평준화가 대학입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성적상위 학교에 진학한 학생이 학교내경쟁에서 조금 뒤떨어져 ‘내신’에 불이익을 받는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구미 지역사회에서 가장 걱정하는 현상이 ‘학생의 역외 유출’인데, 많은 학부모들이 그 원인으로 ‘비평준화’를 꼽기도 한다.
학교간경쟁, 내신 대비, 통학 편의에도 고교평준화가 더 이로워
고교평준화는 동네사회와 학교간의 연계를 자연스럽게 뒷받침한다는 특성도 지닌다. 어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부근 지역에 거주하는 만큼 지역 주민들과 학교가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도 통학에 소요되는 시간이나 비용,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구미 정치권에서 현재 얼마 안 되는 고교평준화론자인 김수민 구미시의회 의원의 말이다. "PC방 가면 집 가까운 PC방 가지, 명문PC방에 가지 않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것이 교육이어야 하는데, '명문학교'를 찍어두고 거기 가야 성공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구미 태생인 그는 "고교생 시절부터 평준화가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통학 때문에 시간 낭비도 컸고, 성적으로 학교가 갈라지는 게 교우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한다.
한때 구미에서도 고교평준화운동의 바람이 불었지만 포항이 평준화지역에 진입할 즈음에 사그라든 바 있다. 평준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주민 여론이고, 그 여론은 조직되지 않으면 평준화를 훼방하거나 외면하는 정치권과 교육계를 뒤흔들 수 없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에서 다시 고교평준화운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교평준화의 한계나 단점은 무엇일까. 혹자는 사교육 부담 증가와 공교육 붕괴현상을 고교평준화의 단점으로 돌리지만, 비평준화인 구미 지역에서도 이는 이미 실감하고 있다. 고로 그것은 고교평준화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전반의 문제거나 나아가 비평준화의 문제라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평준화의 문제는 평준화가 덜 될 때 나타난다’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다. 특정학교에 특혜성 지원을 하지 말고 각 학교간의 인프라를 균등하게 조성해주는 것, 이것이 평준화의 기대효과인 동시에 평준화 이전의 대비책이다.
평준화의 한계는 제대로 된 평준화로 극복할 수 있다 기타 주요 정책으로 학교친환경무상급식, 대안학교 신설 등 꼽혀
또 고교평준화는 무엇보다 반대세력을 설득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지역의 보수적 정치권과 교육계 외에도 다른 지역에서 그랬듯 성적상위학교 동문회가 평준화를 막아설 공산이 있다.
이에 대해 지역 상위권인 한 고교를 나온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모교는 변함 없이 모교다. 상위권 학교면 사랑하고 평준화된 학교면 사랑 안 하나? 동문회원들의 자녀들도 고교서열화로 피해를 보고 있을 테니 지역사회를 위해 더 넓게 봐야 한다.”
한편 살구캠프는 고교평준화 다음으로, 학교친환경무상급식 및 방사능식품 사용 금지, 대안학교 신설, 통학길 대중교통 개선, 방과후 학교 활성화 등을 구미교육의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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