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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먼저다

말라 죽은 나무, 말라 죽어가는 노동자들 (시사IN)


말라 죽은 나무, 말라 죽어가는 노동자들
불산 누출 사고 당시에도 주변 4공단 노동자들은 계속 일했다. 주민들이 대피해도 공장은 정상 가동됐다. 불안을 호소해도 소용 없었다.


 김수민 (구미시의원) 
 
       
처음 전해진 소식은 ‘폭발’이었다. 자연히 지난해 구미에서 일어났던 1공단 한 공장의 화재 폭발을 떠올렸다. 초동대처에 나선 소방관 등 공무원들에게 ‘이것이 불산’이라고 알려줄 수 있는 업체 직원들은 사망했다. ‘불산 누출’이 알려지면서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인근 주민들이 지척에 불산을 취급하는 공장이 있음을 알지 못했듯, 다른 많은 사람들도 공장 바로 옆에 농촌 마을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무와 농작물이 말라 죽은 살풍경이 조금 늦게 알려지자 비로소 시선이 마을로 일제히 쏠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공장들로부터 눈길을 거둬버렸다. 연휴인지라 ‘출근’이라는 개념이 와닿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사고 주변 4공단 일대 공장에 일용직이나 외국인이 투입돼 조업을 계속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이 잠깐 떠돌았는데, 확인 결과 허무한 의심이었다. 원래 직원들이 그대로 투입되고 있었다. 태풍의 눈이 조용한 이치와 마찬가지로, 주변 마을은 초토화되었어도 사고 난 공단은 괜찮다는 말인가?

 

사고 직후 대피했다가 행정당국의 개념 없는 처사로 마을로 되돌아온 주민들이 또다시 대피했을 때도 공장은 ‘정상 가동’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이어졌다. 10월7일 구미로 급히 내려온 한 국회의원과 함께 사고 업체 곁에 있는 한 기업을 찾았다. 나무는 말라버렸는데 굴뚝에서는 연기가 났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관계자를 찾았으나 나오지 않았고, 호출한 노동당국 공무원은 “끼지 않겠다”라며 발걸음을 돌려버렸다. 이튿날 정부는 사고 구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보상’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긴급조치’(?)는 아니었다. 정부, 특히 공장 가동을 묵과한 고용노동부야말로 ‘특별재난’ 상태다.
 


“일본 기업 유치하려면 노조 없어야”

 

사고 당시에도 주변 공장은 그대로 돌아갔다. 불안을 호소해도 관리자들은 끄떡없는 체했다. 자신만 챙기거나 부랴부랴 도망치는 사례도 있었다. 사고 이후로도 노동자들은 추석 연휴에 하루나 이틀 쉬었을 뿐이다. 한편 하청업체 경영자들은 그들대로 대기업에 찍힐까봐 변함없이 공장을 돌림으로써 탄압의 사슬에 얽혀들었다.

 

이번 일은 ‘투자유치’를 제1순위로 삼고 MOU를 체결할 때마다 그저 팡파르를 울린 구미시의 행태도 되돌아보게 한다. 권력기관이나 자본과 함께 민주노조를 억압할 때마다 구미시는 “해외 기업, 특히 일본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그쪽은 노조를 싫어한다”라고 밝혀왔다. 그러니까, 일본계 기업이 많은 무노조 지역 4공단은 그들의 이상이 구현된 공간인 셈이었다. 4공단 업체들은 비정규직 비중도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항간에서는 ‘첨단’을 기치로 내건 4공단에 왜 화공업체가 입주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중요한 주제이긴 한데, ‘첨단산업’에서도 불산과 같은 물질을 계속 필수 요소로 써왔던 것이 사실이고 휴브글로벌 같은 업체는 어디든 들어서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르고 지나쳤거나 알고도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며칠 전엔 자본의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는 KEC 금속노조 노동자들 가운데 불산을 취급해본 분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경험으로 몸에 해롭다는 건 알았지만 그냥저냥 살아왔단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말라버린 나무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자본과 권력은 노동자의 손에 해로운 물질을 묻히며 자연과 건강을 해쳐왔다. 그리고 그 노동자는 나무처럼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