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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로

도시디자인 포럼 참석 후기

10월 19일 오후, 근로자 문화센터에서 열린 구미 국제 도시디자인 포럼에 참석했다. 도시디자인에 대한 세세한 제언보다는 구미라는 도시에 관한 근본적 진단이 많았다.

아마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은 이미 들어봤거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바로 그러함을 느낄 수 있다.

 

- 철도와 고속도로에 도심이 갇혀 있는 형국이다.

- 공장이 도시 중심에 들어섰고 거주지는 그에 따라 그때그때 들어섰다.

- 공장과 거주지가 가깝다.

- 다핵구조를 갖고 있는 도시라서 중심이 취약하다.

- 동선이 갑갑하다.

- 도시의 정체성을 띤 공간이 부재하다.

 

한마디로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세워지지 않았거나 불분명하다는,

구미의 문화를 짚을 때 나오곤 하는 결론이 다시 한번 재생되는 셈이다.

 

나는 그러나 진짜 문제는 정체성이 세워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억지로 정체성을 세우려는 시도에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강변을 도심으로 삼아야 하니 그래서 4대강공사는 구미에 좋은 것이라거나,

(논자 그 자신은) 박정희의 정치이념을 지지하지 않지만 박정희를 도시브랜드화하자거나

하는 따위의 폭력적이고 전시적 또는 외생적인 의견이 판치는 것도 그래서다.

예전에 내가 영화제 공약을 내고 '코미디 영화제'가 괜찮겠다는 세부의견을 부연하니

어떤 분이 "3D 영화제"를 제시했다. 공단도시, 첨단도시므로 그에 컨셉트를 맞추자는 거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그 지점에서 구미의 신문화가 출발할 것이라고 본다.  

 

그날 포럼에서 예시된 도시디자인 사례들을 보면 그것이 건축이든 공원녹지든

미술 행위든 주민참여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억지 정체성 찾기는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의 욕구와 그들의 참여를 억누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미의 정치와 경제와 행정은 극소수 특권적 시민들이 주도해왔고

그들은 나머지 시민들을 객체로 전락시키며 향토를 해석하고 구성하는 일을 독점해왔다.

 

지금은 억지로 정체성을 만들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자유롭게 분출하게 놔두고

그것이 경합하고 갈등하거나 공존하고 조화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이 작업에서는 그간 2등시민 내지 유령인간으로까지 전락했던

소수자, 약자, 빈자들을 받쳐올려 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럼 자료집에 실린 전문가 좌담에서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인용한,

홍덕률 교수의 주장은 가장 우선으로 경청되어야 할 것이다.

홍교수는 구미를 한국의 대표적 노동문화, 공장문화의 메카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공단도시에서 많은 인구를 노동자가 차지하는데, 노동자 가운데 비율이 계속 올라가는

비정규직이나 실업자, 구직자를 비롯한 불안정노동군이 소외된 상태에서

범시민적 참여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예측이 아니고, 지금 구미의 현실이다.

구미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도시와 광장과 골목의 주인공으로 세워야 한다.

하지만 대표축제니 학교 육성이니 환경미화니 어떤 분야에서도 그런 접근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에 이번 불산 사태만 해도, 4공단은 가스 누출 이후에도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조리 배후에는 상당히 많은 비정규직 그리고 민주노조의 부재가 있지 않은가?

구미시가 방치하거나 혹은 부추겨서 만든 현상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강조할 필요가 여전히 남는 주장,

"노동의 관점을 가져라!" 이날 포럼을 나오면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