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전환', 진보의 진보

풀뿌리정당 공천제를 요구한다 (시사IN 연재)

풀뿌리 수첩   정치 신인 앞에 놓인 벽을 치우려면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국회의원의 공천권 행사로 이어져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게 만든다. 풀뿌리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게 만들자.
 
페이스북의 ‘풀뿌리청년당’ 그룹을 통해 2014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청년들의 모임을 주선했다. 10여 명이 8월24일 경북 구미에 모였다. 모임은 2010년 광역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선전한 분의 경험담까지 더해져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어떠한 토론과 도전정신에도 불구하고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진입 장벽이다. 청년뿐 아니라 다양한 정치 신인들과 지역정치의 혁신을 가로막는.

 

참석자 대부분의 소속 정당은 소수 정당 중에서도 소수 정당이었다. 모임 초반, 나는 다소 무겁게 입을 떼었다. “제 지역구보다 훨씬 선거 치르기가 열악한, 농어촌 같은 지역에 출마하실 분이 만일 이 자리에 계셨다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라고 권유하려 했습니다.” 동네 선거에서는 희생적 출전으로 소속 정당에 기여하기는 매우 힘들고, 당선이 되어 실제로 지역정치를 바꿔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작은 선거에서도 청년과 정치신인을 주눅 들게 만드는 큰손은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다.

 

물론 정치에서 정당은 중요하고, 정당공천제가 그 자체로 그른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공천제는 국회의원의 공천권 행사로 귀결돼 정당정치의 확립에 이바지하기는커녕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나는 여태껏 정당공천제를 찬성하는 주민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는데, 주민들의 반대 이유는 한마디로 모아졌다. 국회의원이 지방정치를 흔드는 것이 싫다는 얘기다.

 


정치 신인이 부딪히는 큰 벽

 

정당공천제가 외려 정책선거를 가로막기도 한다. 한국정치의 풀뿌리가 아직 여린 탓인지 유권자들도 후보자의 정책 노선보다 후보자가 속한 정당 간판을 더 따지곤 한다. 이러니 유력한 정당을 통하지 않으면 젊고 대안적인 정치인의 지방의회 진출 가능성은 바닥에 찰랑거린다.

 

설령, 그가 작심하고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아 직업정치인이 된다고 해도 앞날은 밝지 않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는 정당공천제의 완전한 폐지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최전면에 정당은 없이 인물만 걸리는 선거와 정치는 책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성 정당 정치세력의 경우 자신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잘못된 사업으로 인기가 급추락해도 배후에 숨어 얼굴만 바꾸며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정치 신인은 정당 공천은 받지 않았을지언정 어떤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마저 인정받지 못하고, 일개 정치인으로 취급받기 쉽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중앙정당 체제와 별개로 지역의 특성과 구도에 맞게 ‘풀뿌리정당’을 구성하고, 여기서 기초의원 및 기초지자체 선거 후보자를 공천하는 것이 가장 온전한 답일 것이다. 아래로부터 생기는 이러한 정당이야말로 정치 신인들의 등장에 용이하고, 다양한 여론을 제도권 정치에 반영하기에 적합하다. 시민사회 단체나 학계는 이를 결선투표제나 독일식 비례대표제 같은 정치개혁 방안과 함께 다뤄야 한다.

 

바야흐로 대통령 선거철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을 노리는 각 정치 세력들이 지역개발 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며 이를 ‘균형발전’ ‘지방분권’ 같은 단어로 치장하리라는 예감이 닥쳐온다. 정치권은 이제 지역 특권층의 환심을 사는 선물 풀기를 끝맺고, ‘주민자치’와 ‘지역 민주화’라는 근본적인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지방정치 제도의 개선조차 중앙정치의 결정에 달린 게 당장의 현실이므로,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선주자들과 국회의원들에게 이렇게 묻고, 또 요구한다.

 

“당신은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정치를 위해 지방선거 개입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정치인인가? 풀뿌리정당제를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