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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진보의 진보

기초는 풀뿌리정당제, 광역의회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기초의회, '풀뿌리 정당제'가 답이다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지방정치인이 살아남는 길

김수민 경북 구미시의회 의원 녹색당+(준) 

기사입력 2012-06-28 오전 7:40:56

    

 

 

 

 

1. 광역의회 :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대구시는 학교 무상급식 논쟁이 한창이다. 주민 연서명으로 직접 조례가 발의되었지만 대구시의회는 심사를 미루고, 대구교육지원청은 순세계잉여금이 1230억 원이나 발생했으나 "예산이 없다"고 손사래 친다. 찬반을 떠나 숙의 민주주의의 기본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확산되는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라서, 한 지역방송은 "대구는 교육 달동네"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청소년 자살사건의 대표적인 도시로 전락했는데도 대구 그리고 경북의 지방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비결은 간단하다. 일당 독점이다.

대구시의회는 얼마 전 '순수한' 일당 독점을 달성했다. 무소속으로 있던 2명의 의원이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바람에, 법정 무소속인 교육의원 4석을 빼면 29석이 모두 같은 정당 소속이다. 어떤 이들은 이 소식을 접하며 "대구 시민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냉소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구 시민들은 결코 '통일주체국민회의식' 투표를 하지 않았었다.

▲ 2010년 대구시의회 정당명부 득표율

2010년 대구시의회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얻은 정당명부 득표율은 55.52%였다. 여기에, 총선 부진으로 등록취소되어 일부가 새누리당으로 흡수된 친박연합의 득표율을 합쳐도 70% 정도다. 새누리당이 100% 의석을 휩쓸어버린 원인은 소선거구제와 3석에 불과한 비례대표 의석에 있다. 이를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시민 여론이 품은 다양성 딱 그만큼이라도 의석 분포에 반영된다면, 상호견제와 토론이 더 활발하고 균형 잡힌 지방의회를 구성할 수 있다. 지방의회에서 조례안 발의선은 전체 의석의 1/5 이상이고, 고로 대구시의회의 경우는 7석이다. 가령 무상급식 조례제정안의 경우, 통과 여부를 떠나 의원 발의조차 될 수 없다. 하지만 위 도표처럼 의석이 배분된다면 의원 발의가 가능해진다.

오해 없기를 빈다. 무상급식에 반대한다고 해서 현행 선거제도를 옹호할 필요는 없다. 토론 끝에 부결되는 것과 발의부터가 꽉 막힌 것은 다르다. 시민 여론에 비추어도 비정상적으로 의석이 분포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모든 세력이 걱정해야 할 현실이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새누리당이 의석을 모두 점하길 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찍으면서도 '다 가져가면 안 될 텐데…'라고 걱정을 하곤 한다. 그들은 위 도표처럼 배분되어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아니, 불만족스럽더라도 그게 공정한 민주주의다.

 

▲ 대구광역시는 지난 11일 친환경 의무급식조례에 대한 시민의견을 청취했다. ⓒ대구광역시의회

물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당선자 및 무소속 당선자를 모두 승인하는 동시에 정당 득표율을 의석에 반영하므로, 총 의석수가 늘어난다는 난점이 있다. 그러나 우선 지역구 광역의원 수를 줄이는 방법이 있고, 이 방법엔 명분이 있다. 예컨대 경북도의회 구미시 제4선거구는 필자의 지역구인 구미시의회 '바'선거구에 그대로 포개어진다. 도의원과 시의원이 같은 지역구에 발 딛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광역의원이 '지방정부 의원'답지 못하다는 지적이 자자한데, 현재의 선거제도는 광역의원이 기껏해야 기초의원 수준의 관점을 가지거나 기초의원과 덩달아 '동의원' 노릇을 하는 꼴을 부채질한다. 선거구별 면적을 더 크게 늘려 지역구 광역의원 수를 줄이면 광역의회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기가 용이할 것이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국회보다 이렇게 특정정당 독점이 심한 지방의회에서 더 시급한 사안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 남았지만 지방선거는 2년 남았으므로, 논의도 더 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정당의 다양성과 책임정치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광역의원내각제도 동시에 차차 토론해봄 직하다. 의원내각제는 특히, 녹색당이 지난 총선 때 주장했듯 특별자치도이자 '제왕적 도지사'의 문제가 강력히 제기되는 제주도에서 선도적으로 추진할 만한 과제다.

2. 기초선거 중앙정당 공천제 폐지와 풀뿌리 정당제 도입

여기, 한 사람의 가상인물이 있다. 이름 오일팔. 나이 35세. 작은도서관 건립캠페인부터 주민참여 예산제 관철까지 7년 동안 호남 지역 시민사회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민완 활동가이다. 신망도 제법 높아 '호남의 김두관'이라는 소리도 듣는 차에 그는 지방의원 혹은 단체장이 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이 '중도 진보' 성향이라고 여기며 좀 밉긴 하나 민주당을 지지한다. 오일팔 씨는 2014년 지방선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민주당에 공천신청을 하자니 첫걸음을 떼기도 쉽지 않다. 지역 민주당 당원들 가운데는 그동안 자신과 대립했던 관변단체 인사나 지역 토호가 수두룩하고 지역구 국회의원과도 서먹서먹하다. 그러니 공천을 받아 당선까지 되더라도 당내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고 의정활동이 수월할 리 없다. (필자는 실제로 한 지방의원이 같은 지역 같은 당 의원들과의 괴리 때문에 탈당을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다.)

그렇다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자니 민주당 간판만 내걸면 당선되는 현실에 부닥친다. 민주당에 신물 난 유권자들을 모을 요량으로 "민주당 견제와 정치 다양성을 위해 저를 밀어주십시오"라고 밝혔더니 "당선되면 민주당 들어가는 거 아녀?", "그럼 통합진보당을 찍겠다"는 대구만 돌아온다. 전략적으로 통합진보당에 입당하는 길은 오 씨 스스로의 정치 성향에 거슬리므로 개운치가 않다. 무소속 시민후보로서 진보적 군소 정당들의 추대를 받으려고 해도, 해당 정당에 후보가 있거나 서로 간에 파트너십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힘들다. 그나마 호남에서 오일팔 씨와 같은 처지의 후보들을 모아 '무소속 연대'를 결성하는 게 만만한 편이다.

정당 공천제 찬성론은 이런 현실에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국회의원이 아닌 평당원에 공천권을 넘겨봐야 지역토호나 관변 인사들이 당내에 숱하면 공염불이다. 오일팔 씨를 지지할 만한 생활인들이 새로 대거 입당해 당내 구도를 뒤집는 것도 거의 소설에 가깝다. 공천 찬성론가로서는 오 씨에게 '무소속으로 해야지 어쩔 수 있냐'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결국, "오일팔 씨 같은 사람은 지방 정치인이 될 수 없어?"

정당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지만, 후보의 노선이나 정책을 가늠할 잣대가 되지 못하면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지방선거에서 정당 간판은 잣대가 되기는커녕 선택의 기회를 침해하기 일쑤다. 정당독점 현상이 강한 호남이나 영남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치를 하려면 어느 당에 가야 한다'는 공식이 판에 박혀 있으니 온갖 지망생들이 한쪽으로 쏠린다.

지역 내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정당 간판에 속기는 매한가지다. 성향은 다수정당 쪽이면서 그쪽 공천을 받지 못해 소수정당의 소속이 된 후보자가 왕왕 있는데, 유권자는 단순히 그 소수정당의 이미지를 믿고 그 후보를 지지하고 만다. 정당공천제는 이렇듯 중앙의 정당구도를 지역에 그대로 강요하고 지역의 정치구도를 갈수록 왜곡시키고 있다. 게다가 한국처럼 철저히 중앙적 원리로 정당이 구성된 사회에서 이 증상은 중병으로 치닫는다.

오일팔 씨가 지방 정계에 진출하는 합리적인 진로는, 당적이 없지만 그를 지지할 시민들, 민주당 내 개혁파, 진보적 군소 정당 등과 연대하여 지역에 맞춤한 정치세력화를 조직하는 길이다. 달리 말해 소수파가 연합하여 다수파의 경쟁상대로 뛰어오르고, 다수파는 내부의 중대한 기준과 전선에 따라 분화하는, 여러 주민들에게도 이로운 정치 다양성과 생산적 경쟁을 빚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현행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 기초의원 및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만큼은 말이다.

필자는 '무조건 공천제 폐지론'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조직 추대 없이 후보자의 이름만 최전면에 걸린다면, 책임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이미지 선거로 기울어지기 십상이다. 진보적(보수적) 시민이 성향을 오인한 채 보수(진보) 후보를 찍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지역정치인이 잘못된 사업을 추진해 인기가 급추락해도, 배후에서 이걸 추진한 세력은 다음 선거에서 후보만 바꾸면서 권력을 유지하면 된다. 물론 정당공천제가 아예 없어져도 앞에서 예시한 새로운 조직화는 가능하다. 단, 이왕에 제도화를 한다면 현행 공천제의 오류와 공천제 폐지의 해로움 모두를 해소하기에 더욱 유효할 것이다.

그 답이 지역 내 정당(local pary)을 공식화하는 '풀뿌리 정당제'다. 시민들이 중앙정치에서의 당적과 별개로 지역에서 정당을 꾸릴 수 있게 해서, 중앙정당체제와 결이 다른 지역 내 정당체제를 구성하자는 얘기다. 오일팔 씨는 민주당 당적을 가지든 말든, 새로운 풀뿌리 정당에 참여하여 당 후보로 나설 수 있게 된다. 당선을 위해 다수정당에게 매달리고 국회의원에 숙여야 했던 지방 정치인은 속박을 벗어날 수 있고, 흩어져 있던 군소정당이나 정치신인들도 지역적 공통주제로 뭉쳐 앞날을 도모할 수 있다. 가장 득을 보는 사람은 중앙정당의 간판이 아닌 지역의 이슈와 전선을 두고 투표할 수 있는 유권자이며, 가장 해를 보는 쪽은 공천권을 독과점하던 국회의원이나 당간부일 것이다.

얄궂은 역사다. 옛 민주자유당의 김덕룡 사무총장이 기초선거 무공천제를 앞장서 추진했다가 야권의 거센 반발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별 의석 분포가 나타나는 걸 정부여당이 두려워한다는 의심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시민단체 일부나 진보정치세력도 정당공천제 도입을 요구해왔다. 허나 지금 이 제도를 가장 즐기는 부류는 정당으로는 새누리당, 업종으로는 국회의원, 그중에서도 영·호남 국회의원이며, 사실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번 구미 지역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던 20대 후보 김찬영 씨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런 반응을 들었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놓고 싶겠나, 그 좋은 걸…"

만일 풀뿌리 정당제가 끝내 도입되지 않아도 현행 정당공천제는 폐지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필자는 기울어 있다. 국회의원이 전횡을 부리는 정당을 유권자가 심판하고 대중의 활발한 정당 참여로 정당공천제를 정착시킨다는 원론적 답변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언제쯤 이뤄질지 강한 의문만 남는다. 현행 공천제도가 정당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되레 이를 방해하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기초의원이 당이 뭔 필요가 있노?" 정당 정치를 위협하는 이런 세설(世說)도, 실상 현행 공천제에 대한 역풍을 타고 퍼진 것이다.

[취지문]

PR청년포럼은 PR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R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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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이게 선거인가! 이게 사는 건가!
-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야권연대 '협박의 정치'를 끝내라
-국회의원 복지부터 스웨덴식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통진당 사태는 선거제도의 슬픈 자화상
-국회의원 특권만 줄이면 좋은 정치 되나?
-"투표 2030" 목소리는 왜 실종됐나?
-이재오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고?
 

/김수민 경북 구미시의회 의원 녹색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