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th Columnist

구미 지역 총선 후기

예상대로 새누리당이 이겼다. 다만 몇가지 의외가 있었다. 김태환 의원이 공천을 받은 것이 그중 하나다. 경상북도 국회의원 가운데 물갈이 여론이 최상위에 해당하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미 타격을 받은 바 있었다. 그가 공천을 받은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그만한 중량감을 보유한 인물이 공천 경쟁자 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 선거가 박근혜의 선거였던 탓이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친박 무소속으로 4년 전 당선되었던 김태환 의원은 박근혜에게 필요한 장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구미 지역 의원 두 명을 모두를 지켜주지는 않았다. 을 지역 김태환 의원보다 더 인기 없다던 갑 지역 김성조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않았다. 이 역시 박근혜의 힘이다. 그가 김성조를 주저 앉힌 마지막 힘이다. 

 

갑 지역의 새로운 의원이 될 심학봉 당선자는 '포항 출신 친이 인사'라며 집중 포화를 맞았다. 구미에서 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임을 감안하면 그는 4년 전 을 지역에 출마한 한나라당 이재순처럼 낙선하기 쉬웠다. 그러나 그 또한 '박근혜의 후보'였다. 김성조 의원의 저조한 지지율도 역으로 심 당선자를 치켜 세웠다.

 

새누리당과 친박연합, 무소속에 걸쳐 수두룩하게 존재하던 토착민 후보들이 정리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김석호 친박연합 후보는 아예 '친박 구미 사람 vs. 친이 포항 사람'이라는 저열한 구도에 의존했다. 친박연합과 박근혜 사이에 별 관계가 없음은 뒤로 돌리자. 이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추한 풍경이었다. 연고주의의 극치이면서,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지 출신을 왕따시키는 패착이었다. 포항 출신 뿐 아니라 충청, 호남, PK 등지에서 온 시민들을 되레 심학봉 후보로 몰아주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갑 지역 친박연합 김석호 후보는 20퍼센트에 못 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3할을 넘어서며 올리던 기세가 꺾여 버렸다. 박근혜와 연관이 없으면서도 '박정희'를 내세우던 친박연합은 당 전체의 등록취소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보적 군소정당들의 등록취소와 매우 다르다. 기묘한 틈새시장 공략의 파탄이다. 친박연합은 야권이라 볼 수 없고, 내용적으로 새누리당과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 박정희-박근혜 마케팅으로 살 길을 찾아왔을 뿐이다. 이제 먹히지 않는다. 친박연대든 친박연합이든 박근혜가 새누리당에서 주변화될 때에나 짭짤한 재미를 본다. 그러나 박정희의 딸은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다.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도전해 도의원직을 따낸 전인철 후보는 중도 하차했다. 도의원 사퇴와 무소속 출마 선언, 새누리당 공천 신청을 거쳐, 예전 전 후보를 공천 탈락시켰고 이번에는 자신이 떨어진 김성조 의원을 지지하기까지 숨가쁜 행보를 이어갔지만, 중도 하차한 보람도 없이 김 의원은 선거를 포기했다.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도의원이 된 을 지역 김대호 후보도 총선에 뛰어들었다 쓴잔을 마셨다. 그는 선산 지역에서 30퍼센트를 올렸지만 그쪽은 그의 최대 지지기반이었다. 갑 지역 무소속 김성식, 신수식 후보, 을 지역 친박연합 박대식 후보, 새누리당 공천탈락자인 김연호, 허성우 후보 모두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새누리당 언저리'의 몰락이었다.

 

야권은? 갑에서든 을에서든 이기리라고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전'할 수 있다는 예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있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파악된 바로 구미 지역의 야권 표심은 최소 25퍼센트였다. 이번에는? 정당명부 지지율을 떠나, 후보자별 득표만 보면 암담하다. 갑 지역은 민주통합당 안장환 후보가 12퍼센트, 통합진보당 구민회 후보가 4퍼센트를 얻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일단 후보단일화에 실패했다. 후보단일화를 거부한 건 민주당측이다. 이제, 더욱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더 득표력이 높은 후보가 단일화를 거부했다. 안후보측 주장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독자노선"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기는 뒷켠에서까지 유지되지는 않았다. 선거 막판 단일화 제의를 했다고 한다. 간단한 셈법이다. 12에 4를 더하면? 참고로, 15퍼센트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면 보전 항목에 해당하는 선거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다. 

 

대구 중남구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야권 무소속 이재용 후보와 단일화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민주당 후보가 득표력이 더 낮았다는 게 다르긴 하다. 하지만 구미 갑과 대구 중남구의 민주당 후보 사이에서 또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도저히 중간에 끌 수 없는 완주의 의지! 주변의 평자들은 말한다. 선거 출마를 치적으로 삼아 정권교체시 논공행상을 하기 위함이라고. 예전 TK 실세로 불려지던 한 인사가 배후로 거론되기도 한다. 따지자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후보단일화는 지상명제가 아니다. 나부터가 단지 새누리당을 이기려는 목적으로 치우쳐진 단일화에 대해서는 반대해 왔다. 단, 단일화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독자 완주의 이념적 명분이 있었는지는 따로 평가할 부분이다.

 

여하튼 단일화 실패는 차치하고 갑 지역 두 야권 후보의 성적은 따로 놓고 보든 합쳐서 보든 나쁘다. 통진당 후보는 자당 지지자들을 민주당 후보에게 내줬고, 민주당 후보는 야권 지지세를 모으기도 버거웠다. 예컨대 과천 의왕 민주당 후보였던 송호창 변호사 비슷한 후보가 나와도 그랬을까? 두 후보에게서는 무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혁신적 패기를 맡기 힘들었다. 지치고 억눌린 야권 유권자들을 다독이고 분노를 분출시키는 대리인이 될 수 없었단 말이다.

 

그래도 을 지역의 통진당 이지애 후보는 갑 지역 후보와는 사뭇 다르게 선거를 마무리했다. 16퍼센트의 득표율. 뜯어보면 이것도 야권 지지자들을 충분히 규합했다기에는 너무 불충분하다. 역대 구미에서 출마한 진보적 총선 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이라는 의미는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을 지역에는 농촌 뿐만 아니라 신도심인 강동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젊은 유권자, 외지 출신 유권자의 비율이 구미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지애 후보는 강동 지역의 각 행정동에서 21~30퍼센트를 득표했다. 구미 지역 야권 후보로서는 대단히 높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재작년 지방선거 도의원 정당명부 분야에서 야권 도합 40퍼센트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후보는 예비선거운동 없이 곧바로 본선거에 돌입했다. 돌입과 동시에 야권 지지자들이 얼마간 결집했지만 시간이 짧았다. 꼴찌와 꼴지에서 2위를 차지한 허성우, 김연호 후보가 낯짝에 철판을 깔고 문자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2위'라는 식으로 선전한 것을 감당하는 데도 여력이 부족했다. 이 후보는 2위 후보였지만 '2위가 예상되는 후보'가 아니었다. 불과 서른살의 젊은 나이가 원인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30~40퍼센트의 득표를 못 올린 원인일 따름이지, 새누리당 언저리 후보들의 득표 총합보다 낮은 득표를 한 원인은 아니다. 결국 가장 아쉬운 점은 '늦은 출마'였다. 

 

갑 지역 안 후보는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인사도 아니고, 지방의원을 거친 경력도 없고, 재야에서 모종의 감동적 정치를 한 실력도 없었다. 구 후보도 정치 늦깎이인 데다가 통진당 입당 시점이 늦었으며, 이 후보도 출마가 늦었다. 이번 총선이 구미 지역 야권에게 안기는 교훈은 단순하다. '인물'과 '시간'. 실은 이에 비해 구미 지역의 야당 지지율은 높은 편이다. 그 지지율로 새누리당을 이긴다는 건 우습지만, 선전이라도 하려면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한 인물은 조직과 일상 활동이 키우는 법이다. 현재까지 구미의 야권 시민들은 서로 모이는 데 그치거나 자족적인 움직임만을 나타내 왔다. 이대로 가면 다음 지방선거도 어렵다. 혹독한 자평과 성찰이 절실하다.

 

남유진 시장과 함께 심학봉 당선자, 김태환 국회의원의 삼각구도는 구미를 어떻게 그려나갈까? 두 당선자의 선거 태도를 보면, 이들이 국회의원인지 시장인지 아니면 토목업자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아, 이렇게만 말하면 토목업계에 실례가 될 것이다. 토목을 위한 토목에 혈안이 된 토목업자라고 해야 할까. 심 당선자는 박근혜에게 구애하려는 목적에서였는지 '박정희 컨벤션센터 50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 의원의 구역별 '생활밀착 공약'도 '건설밀착 공약', '민생복지를 가로막는 밀착마크 공약'에 그쳤다. 구미 지역 시민사회나 야권이 더욱 분발해야 할 이유다. 밀착마크부터 지역방어에 역공까지 철저해야 한다.

 

물론, 아직 임기가 개시되지 않은 만큼 지역 유권자로서 그래도 희망은 가져봐야 할 것 같다. 오늘 구미시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인 낙동강변 수상비행장, 골프장 건설에 대해 두 당선자는 신중히 말하거나 또는 반대했다. 시민들은 결코 예전처럼 토건개발에 호의적이지 않고, 당선자들의 일면은 그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거나 기업이 살려면 비정규직을 양산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언제까지 그 수준이라도 지킬 수 있을지, 정책 실천은 어떠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