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지방의원들이 돌아가면서 '풀뿌리 수첩'을 연재해 왔습니다.
이달부터 저도 필진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첫 칼럼을 올립니다.
공단도시, 노동자도시의 시의원답게 여느 지역의 지방의원보다 선 굵은 주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경제권력과 싸우는 지역 정치인의 비애
정리해고를 단행한 ‘향토기업’이 부동산 개발에 나선다. 간병사들을 내쫓은 요양병원은 시의회의 출석 요구도 거부한다.
기사입력시간 [236호] 2012.03.29 09:09:24 조회수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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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지역구에 있는 한 기업의 직원에게서 두 차례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경로잔치에 후원을 한다는 것이었고, 다음에는 환경미화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이었다. “동사무소로 곧바로 연락하시면 된다”라고 답하고는 말았다. 굳이 나를 주선자처럼 끼워넣으려 하는 것 같아 찜찜했다. 그로부터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동장, 다른 시의원들과 함께 그 기업의 중간관리자들을 만났다.
그쪽의 요청으로 ‘별다른 목적 없이 인사 삼아’ 이뤄진 자리지만, 내심 예상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곧 복수노조가 시행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조가 없는 기업이었다. “노동자가 노조 만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무노조 경영하느라 회사 자금이 더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 회사는 무노조가 아니라 비노조 경영을 하는 거다. 노조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안희태 2010년 11월1일 KEC 노조가 분신을 시도한 김준일 노조위원장의 쾌유를 기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
그런데 더 인상적(?)이었던 건 막판에 들었던 말이었다. “균형적인 정치를 해야 합니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은 기업을 때립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선거 때 기업이 두들겨 맞은 적은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메아리쳤던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은 물론이고 ‘개혁’이 대세이던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재벌을 비롯한 자본은 제동이 걸린 적 없이 승승장구해왔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이 나부끼는 구미에서 늘 확인하는 모습이다.
자본과의 싸움, 지역 정치인의 숙명
현재 구미에 있는 (주)KEC는 산업단지관리공단이 벌이는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에 신청서를 넣고 부동산 개발계획을 추진 중이다. 2010년 노사 갈등 끝에 노동자 분신 사태를 초래한 바로 그 기업이다. 근래 들어 경영이 어렵다며 파업 노조원들을 정리해고로 몰아넣었던 기업이 다른 한편으로 버젓이 공장 안 부지에 상업시설을 짓겠단다. 이것이 바로 구미공단 초창기에 입주한 자칭 타칭 ‘향토기업’의 민얼굴이다.
백화점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설 경우 지역 중소 상권이 타격을 받거니와, 공단은 졸지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사례처럼 부동산 투기의 공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시나 국회의원이 ‘공단구조 고도화’를 외칠 때, 시민들은 그것을 제조업 살리기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기업과 정부가 합작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기업을 때린다’는 주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흔히 ‘공무원을 잘 조지는 것’이 지방의원의 임무인 양 거론되지만, 민간 경제권력의 횡포를 훨씬 더 크게 느꼈던 것이 그간의 내 경험이다. KEC만이 아니다. 지난해 저임금과 각종 악조건에 항의하다 용역업체의 폐업으로 간병사들이 실직한 구미시립노인요양병원은 또 어떠한가. 이 병원을 운영하는 교육재단 이사장은 면담 도중 내게 버젓이 “고용 승계를 해줘야 할 의무는 없다”라고 말했다. 행정사무감사에 출석을 요구받은 해당 대학교 부총장은 ‘일정이 있어서 나가지 못한다’는 소명서 한 장을 달랑 시의회로 보냈다.
이렇듯 경제권력은 어지간해서는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직무를 유기하지 않는 한, 그들과 싸우는 건 정치인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표의 힘으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돈의 힘을 누가 꺾으랴. 선거가 끝난 뒤에도 한결같이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1원1표’에 대항하는 국회의원이 대거 배출되는 것. 지방정치의 한계 속에서 자본권력과 본격 싸움 붙기가 버거웠던 한 지방의원이 이번 총선에 띄우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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