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줄세우기 바쁜 학교에서 '학업성취'란 사치입니다.
공부시키겠다며 공부 못하게 하는,
탈락시키고 도태시켜가며 사람을 솎아내, 남은 이들에게 특권을 주는 악랄한 수법은 교육현장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퇴행과 반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성적표에 대고 물으십시오. "니가 날 알아?"
일제고사 반대!
전국교육희망네트워크의 성명을 올립니다.
저는 경북과 구미에서 교육희망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한 준비자 중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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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반교육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일제고사를 즉각 중단하라! |
오늘, 2011년 7월 12일은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참가하는 일제고사, 이른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루어지는 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일제고사를 앞두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매월 막대그래프로 성적을 표기하고 부진한 사람에게는 경고문을 발송하고, 성적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고위 관계자가 수시로 순찰하고 성적이 나아질 경우 금품 혹은 상품권을 지급한다. 성과가 큰 교사에게는 해외연수의 특전을 베풀며, 성과급에도 반영한다.” 언뜻 보면 기업체 영업부서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이같은 반교육적 행태가 경기와 충남, 충북, 경북, 경남, 제주 등지의 일선 학교 교실들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초등학생들에게 0교시 수업은 물론 강제적 야간 자율학습까지 시키는가 하면, 노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실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생용 A4용지 4000쪽 분량의 문제집이 등장하는가 하면, 운동장에서 노는 것을 금지시키고 점심시간을 40분으로 단축하는 학교도 나타났다. 음악미술체육 시간에 성취도 평가 대비 문제집을 풀어 예체능 수업이 실종된 학교도 있었으며, ‘학업성취도 평가 마무리 캠프’나 ‘학업성취도 평가 출정식’을 치르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하위권 학생들을 한 반에 몰아넣거나 성적이 떨어지는 아동을 특수학급(장애 학급)에 배치할 것을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급기야 부산의 초등학생 5명은 지난 5일 등교한다고 집을 나섰지만 일제고사 대비 공부를 너무 시키는 학교가 싫어 학교에 가지 않아버리는 일까지 발생해 버렸다. 결국 일제고사를 빌미로 아동학대가 공공연히 벌어진 것이다.
대체 교과부는 무엇을 위하여 학교를 편법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아동을 학대하며, 즐거워야 할 공부를 목숨걸고 해야 할 비장한 것으로 바꾸어 가며까지 그토록 일제고사에 집착하는 것인가?
교과부는 주장한다. 일제고사의 가장 큰 취지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더욱 잘 돕기 위해서라고. 또한 교과부는 선전한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절반가량 줄었다고.
물론 일제고사가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점만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장과 교육청의 책임성을 높인다는 것을 빌미로 각 학교·지역별로 성적을 낱낱이 공개하고, 각 시·도 교육청 평가 기준과 학교별 성과급의 기준으로 넣을 것을 고집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응시 선택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이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일단, 시험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부진학생 지원이라는 제도의 취지와 모순된 결과를 낳는다. 성적을 공개하면 평판 때문에라도 학교는 부진아를 감추고 줄이려는 시도를 하게 될 뿐이다. 또한 시험 결과를 통해 우수한 실적을 낸 학교장과 교육청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더 많이 준다는 것 역시 부족한 곳을 지원하겠다는 시행 취지와는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소신에 따른 학생과 학부모의 응시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결국 일제고사의 취지는 부진아 지원이 아닌, 학교와 학생을 시장에 내놓고 무한 경쟁을 부추기겠다는, 그리하여 기득권을 교육을 통해 합법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진정으로 교과부가 학습부진 학생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일제고사를 통해 열패감만을 부추기고 낙인찍는 이러한 방식이 아니라, 학습부진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해 종합적 진단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학습부진아들은 대부분 가정·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오랜 기간 누적된 학습결손과 집중력 부족 등 복합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다. 따라서 꾸준한 지원을 통해 공부하고 싶은 의욕을 줘야 한다.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교육 복지망을 구축하고, 학급당 인원수를 감축하여 교사의 보다 세심한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약간의 예산을 지원하여 한두 시간 보충수업을 하는 형태는 다만 문제풀이 요령을 반복적으로 가르쳐 ‘일제고사를 통과시키는 것’이 될 뿐이다.
더 나아가 일제고사에는 보다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바로 지난 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획일화된 일제식 평가는 산업화 시대의 주입식 지식 테스트에 불과하다. 언제 어디서나 지식과 정보에 접속할 수 있고,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며, 지식과 정보의 변화 속도가 나날이 가속화되는 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 평가 방식이다.
우리는 이러한 오지선다형 일제식 평가가 야기하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문제풀이 중심의 암기식·반복식 수업은 일단 학습의 흥미를 말살시킨다. 또한 아이들의 생각을 다섯 개의 문항 가운데 ‘정답’을 골라내는 형태로 국한시켜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듦과 동시에 창의성의 싹을 잘라 버린다. 획일화된 문제를 풀기 위한 획일화된 교육은 제각각인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배려하지 못함은 물론,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펼칠 기회를 박탈한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줄세우기 경쟁을 부추기는 형태의 일제식 시험은 아이들의 관심을 학습 ‘내용’이 아닌 시험 ‘점수’와 ‘등수’로 돌려 내재적 학습 동기 유발을 가로막고 ‘시나공(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과 같은 각종 공부 폐습을 불러온다. 최근 우리나라 학생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 꼴찌라는 조사에서 엿볼 수 있듯 경쟁 속에서 인성이 피폐화되고, 전 국민이 GDP의 3%에 육박하는 OECD 1위의 사교육비에 허덕이게 됨은 물론이다. 결국 ‘경쟁’만 남고 ‘교육’은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폐단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획일화된 일제식 평가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비교를 통한 줄세우기 경쟁을 하려면 획일적이고도 일제식으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형태의 주입식, 경쟁 중심의 교육이 지난 시대에는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여 우리나라가 성장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교과부의 진정성 역시 믿는다. 그러나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 사업이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없듯, 일제고사와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경쟁 중심의 교육관이 낡은 패러다임이고 그 효과도 득보다 실이 많은 것임은 분명하다. 이젠 교과부도 지금까지의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이미 핀란드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지식이 아닌 핵심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서술형 평가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평가들을 통하여 21세기형 미래 교육을 시작한지 오래이다.
안 그래도 살인적인 입시 경쟁에 찌들어 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이제 “경쟁에서 협동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 창의성과 인성과 지성이 함께하는 21세기형 미래형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제1의 전제 조건이 바로 일제고사의 중단이다. 이에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교과부는 반교육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일제고사를 즉각 중단하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