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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선거운동

나의 지역구 길목은 4대강공사현장이다

기초의원 예비후보자에겐 너무 센 낙동강발 황사

작고 깊은 정치를 하고 싶었다. ‘아무도 안 나가면 내가 나가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내가 직접 나가게 되었다. 크고 넓은 정치였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어르신들이 겪는 교통 불편과 학부모님들의 학군 걱정이 앞섰다. 학교무상급식을 빼면 전국적 거대 이슈를 들먹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은 나와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을 피해가지 않았다. 나는 구미시 가운데 낙동강 동쪽에 있는 인동동, 진미동에 출마한 시의원 예비후보자다. 지역구로 들어오는 대교 밑에서는 낙동강 공사가 한창이다.

 

평균소득과 복지수준이 높다는 구미는 그러잖아도 위기에 처해 있다. 공단의 위기는 곧 구미의 위기다. 수도권규제완화에 이어 세종시 수정안이 공단을 흔들고 있다. 이걸 처리하는 데 골머리를 싸쥐고 있던 즈음 이미 낙동강발 황사는 불어닥치고 있었다. 반도체 공장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였다. 내 지역구에는 삼성과 LG가 위치해 있다. 미세먼지에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구미지역의 낙동강 공사 구간은 40km에 가깝고, 강바닥에서 파내는 흙과 모래는 전국에서 발생하는 준설토량의 반의 반쯤 된다고 한다.

 

인동동, 진미동은 신흥 도심으로 유명하다. 허나, 많은 이들이 잊고 살지만, 농도(農都)복합지역이기도 하다. 처음 운동에 나서면서 들른 농촌지역에서 한 어르신께 여쭈었다. “공사 먼지가 건강이나 농사에도 안 좋은데... 좀 어떻습니까?” 그분은 “요즘 비가 와서 그런지 아직은 못 느끼겠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바람이 세차게 불던 4월 13일, 그는 다시 마각을 드러냈다.

 

볼 일을 보고 다시 지역구로 돌아가던 길, 다리 위를 지나던 차창이 갑자기 뿌옇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맑으면 맑은 대로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지저분해져도 닦이면 그만이라는 듯이 살아왔던 것이다. 바람이 너무 세차 운동도 중단하고 현수막도 못 걸고 사무실에 있는 내게 제보가 전해졌다. 지역구 옆동네에서 황사로 인한 곤란이 발생했다. 우리 어릴 적 어떤 친구는 황사가 닥칠 때마다 애꿎은 중국을 욕했다. 이제는 누구를 욕해야 하나, 낙동강을?

 

지역이 낳은 선비, 남파(南坡) 장학(張澩)은 낙동강 옆에 지은 자신의 정자 부근을 노래하며, 이러한 구절을 남겼다. “가을의 강 물결은 모래보다 희며, 혼연히 한 빛깔이 된다. 봄바람 불고 꽃비 내릴 때 가녀린 풀 잎사귀들이 강물보다 푸르다. 주변의 절벽은 기러기 날아내릴 때 더욱 맑고 빼어나 보인다.” 이제는 꽃비 내릴 땐 좀 잠잠하다가 봄바람 불면 흙먼지 날리는 강이 되었다. 시구와 작자 모두가 남아 있는데, 그게 가리키는 자연이 정작 전해지지 않을 이상한 시대로 흘러가고 있다.

 

민주화 이후 환경 문제는 ‘물리적 파괴’에서 ‘유기적 훼손’으로 전환되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물리적 파괴’의 대대적 귀환으로 이제 그 둘은 겹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연의 경고는 이르게 찾아왔다. 먼지 안 날리게 잘 덮고, 오염물질 유입되지 않도록 막으면 그만인가? 이건 시작일 뿐이다.

 

지역 한나라당이 ‘서민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현수막을 걸었다. ‘서민’과 ‘무상급식’을 떼어놓고 읽어보니 마치 대오각성이라도 한 듯하다. 그러나 눈 밝은 이라면 ‘결식아동은 무료’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잘 꾸며낸 말이라고 욕할 이유는 없다. 그 언어 자체에 벌써 속임수가, ‘그런 건 서민이나 먹는 거’라는 선동이 훤히 드러난다. ‘4대강정비사업’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대운하’라는 낱말이 있었기에 속일 수가 없다. 파헤치는 강바닥과 쌓고 있는 보를 보라. 대운하사업은 시작되었다.

구미시의원들은 수도권규제완화와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다며 운동권처럼 결의도 하고 그랬다. 그러나 그때 치켜든 손바닥에는 손금이 없다. 정당공천제의 폐습이 (그 찬반 양론을 떠나) 시의원을 국회의원과 중앙정치의 수하로 전락시켰다. 한나라당이 하는 일을 한나라당이 막겠다는 다짐부터가 우습고, 구미 한나라당은 서울 한나라당이 하는 짓을 절대 돌이킬 수 없다. 게다가 4대강공사에 관해선 반대 결의조차 없다. 구미에 출마한 지방선거 후보자 가운데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이는 ‘가’선거구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김성현 후보와, ‘바’선거구에 나온 이른바 무소속 시민후보인 나뿐이다. 다 당선되어도 2/23이다.

 

막아낼 방도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나와 친한 어느 띠동갑내기 문화평론가 선배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번 지방선거는 MB심판이 될 수 없어. 한나라당이 참패를 해도 MB는 그걸 중간평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잖아.” 어떻게 할까. 포크레인에 매달려 볼까. 구미대교(인동대교)에서 번지점프라도 해야 하는가.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2008년 10월, 이곳의 인동향교와 동락서원엘 들렀다. 대운하 공사시 침수가 우려되는 유적이라서였다. 그때만 해도, 아니 반년전만 해도 여기까지 오게 될지는 몰랐다.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 속 네덜란드 소년처럼, 마을을 덮치는 위기를 막아서야 할 것이다. 사소한 것이 세상을 바꾼다는 출사표 안에 답이 있다.

 

공원을 산책하던 분들에게 황사현상에 관해 물었다. “몰랐어요. 그날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집에만 있었어요.” 동구미에 불 변화와 혁신의 바람으로 맞서야겠다. 그래서 주민들의 닫힌 마음의 창문을 열어야겠다. 굽이쳐 흐르는 저 도도한 곡선을 위해 흐트러짐 없는 직선이 되어야겠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해야 진짜로 막아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투표만으로는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