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동이 먼저다

KEC사태 해결 촉구 민주노총 야3당 합동기자회견

"쫌 있으만 추워질 낀데, 저래 가지고 되나? 내가 노동조합 간부면 밀고 들어가버린다. 그러든지 해야지."

KEC노조의 천막농성을 지켜보는 한 시민의 말이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진보적 지식인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중년 여성이 보기에도 답답한 사태였습니다.

사측은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고
국가와 정치는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한발씩 뒤로 물러나란 말은 많았지만
누군가는 한걸음 뒤에 벼랑을 두고 있음은 간과되었습니다.

결국 파업 127일째를 맞은 10월 21일
KEC 조합원들은 공장안으로 진입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날아드는 총파업 소식(7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이 지면을 장식하는 요즘입니다.


10월 22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민주노총이 KEC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김은주 부대표, 국민참여당 김충환 최고위원 등이 참석하셨습니다.

공권력투입 반대와 사태해결 촉구를 천명한 기자회견단은 공장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전달하려 하였습니다. 현재 공장은 단수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용역이 앞을 가로막았고, 이내 그 임무를 경찰이 교대받았습니다.

임기 중 언젠가는 노동 문제 때문에 전투경찰 앞에 서리라는 예감을, 후보자 시절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그날이 찾아올지 몰랐습니다.


국회의원과 공당의 당직자조차 가로막히는 현실.
가족대책위와 함께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는 동안
기초의원으로서 겪고 있는 무력감이 다시 자신을 엄습해 왔습니다.

임기 첫날 참석했던 문화제의 풍경이 떠올랐고,
7월에 교섭촉구 결의안을 의회에서 발의해야 했었다는 후회를 했습니다.

노동자 가족들은 "경찰이 회사의 하수인이냐"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엄중한 상황에 경찰서장은 어디 숨었냐"는 항변도 있었습니다.
저도 화가 잔뜩나서, 예전에 곧잘 그랬듯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참고 참았습니다.

타지에서 겪던 일이 고향인 구미에 돌아온 스스로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낯설은 낯익음, 낯익은 낯설음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피할 수 없는 일이구나.'

 

결국 사람은 들어가지 않되 물은 전달하기로 합의가 내려졌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봉고차에 물과 약품을 실었습니다.

여성 조합원이 많기 때문일까요?
용역깡패들에 의해 오만 폭력을 겪은 KEC 노조였지만 그간 너무나 온건한 투쟁을 전개해 왔습니다.
이제 공장에 진입을 했으니, 또다시 이런저런 악선전이 판을 치겠지요.
하지만 누가 뭐라고 떠들든 변함없는 진실은 사측은 타임오프 미합의를 핑계로
모든 성실교섭을 거부하였다는 점, 그리고
그 뒤에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민주노조 파괴라는 목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돈 많고 힘이 있다고 해서 세상 모든 것을 움직일 수는 없고,
자기 소유물로 여기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조건과 사원복지에 관한 교섭에 나서십시오.


<기자회견문>

정부는 KEC에 대한 공권력 투입기도 중단하고 사태해결에 나서라!

(주)KEC는 노조탄압 중단하고 교섭에 나서라!


끝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10월 21일 낮3시 파업127일, 직장폐쇄 114일째를 맞은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들이 공장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정부는 즉각 600여명의 경찰을 배치해 현장을 에워쌌고, 회사는 수차례 폭력을 행사한 바 있는 용역을 대대적으로 공장 안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KEC에서 벌어진 이러한 상황전개는 회사가 모든 교섭을 거부하며 사태를 극한으로 내몰 때 이미 예견되었다. 민주노총과 야3당은 지난 9월 국회 정론관에서 조속한 사태해결을 촉구한 바 있으나 정부와 회사는 이를 묵살했다. 


지금 공장 안에서 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다수가 여성이다. 19살 실습생으로 시작해 16년 넘게 KEC에서 꽃다운 청춘을 보낸 여성조합원이 있다. 나이 어린 동생들의 손을 잡고 다시는 이런 일터를 물려주지 않겠다며 이를 악물고 싸우는 30대의 여성노동자들이 공장 안에 있다. 50대 아버지와 스무살 어린 딸이 함께 KEC에서 쫓겨난 채 생존을 걸고 싸우고 있다. 200여명의 농성자들은 지금 물조차 끊긴 상태에서 추위에 떨며 절박하게 싸우고 있다. 누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가?


가장 큰 책임은 이명박정부에 있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재벌살리기, 부자 살리기에 올인하며 한편에서 파견제의 확대, 모든 파업의 불법화, 노동기본권의 말살 등 반노동자정책을 서슴치 않았던 정권에 책임을 묻는다.  

또, 이를 배경삼아 이참에 노조를 길들이겠다는 욕심으로 용역을 투입하고 불법적 직장폐쇄를 단행한 (주)KEC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민주노총과 야3당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싸워야 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해결에 나서지 못한 것에 무한한 책임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


초여름에 시작한 투쟁이 늦가을로 이어지고 있지만 경찰과 노동부는 불편부당하게 기업의 편만 들었다. 이 틈에 KEC는 대체인력과 신규채용을 통해 공장을 가동하며 조합원들이 지쳐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왔다. 심지어 수차례에 걸쳐 여성들이 기거하는 천막농성장에서 폭력을 휘둘렀다. 이러고도 법치국가라 자부할 수 있는가!


KEC 노동자들은 넉 달이 넘는 파업과정에서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해왔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 점거농성을 선택한 것은 회사가 단 한 번도 진정한 교섭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KEC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안팎의 쏟아지는 비난여론을 피하고자 실무교섭을 하자고 했지만 달라진 입장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지회가 회사가 요구하는 타임오프와 인사/경영권 등의 선결조건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트집을 잡으며 대화를 허사로 만들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실체가 이런 기업의 막무가내조차 용인하는 것인가?

기업이 하기 싫으면 교섭의 의무조차 회피해도 되는가!


우리는 KEC 노동자들에 대한 공권력투입이 문제해결의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는데 공감한다. 이는 자칫 79년도 YH무역과 같은 대형불상사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도 기업의 이런 막가파식 노조탄압에 홍위병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약속한 <공정한 사회>는 노사간 신뢰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한 공정한 룰을 가질 때 가능하다. 정부는 KEC 노동자들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주)KEC에 거듭 촉구한다. 용역을 철수시키고 직장폐쇄를 철회하라! 그리고 즉각적으로 사태해결을 위한 교섭에 나서라! 이미 수많은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이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마치 해결할 것처럼 말하고는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우리는 이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KEC가 물리력에 기대 상황을 모면하고자 한다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엄중 경고한다.


민주노총과 야3당은 뒤늦은 반성과 함께 KEC 사태해결을 위해 적극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 농성장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애끓는 심정으로 사태해결을 바라는 가족 여러분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데로 흐르듯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함께 하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의 순리라는 믿음으로 이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자.


2010년 10월 22일


KEC 사태해결 촉구 민주노총과 야3당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