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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서평

'자본의 논리'란 별 게 아니다. 악마의 것도 아니다. 그 또한 인간적이다.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어떠한 성향보다 훨씬 생생하고 진솔하다. 자신의 안이나 주변에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속물적일 뿐이다.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나오는 예준(장현성)은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지만, 한때는 학생운동에 몸담은 인물로 군대 후임인 재문(박희순)에게 "우리는 평등하다"며 <철학에세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제 현재 처지에 걸맞지 않은 자의식은 계속되어 재문의 아들에게 '민혁'(민중혁명)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재문과 지숙 부부를 후원하고, 재문이 자기 죄를 대신 쓴 채 감옥에 간 사이 지숙을 탐하던 재문은 어느날 지숙에게 "이것들이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라고 소리 지른다. 이는 '민혁' 운운이나 <철학에세이>보다 예준의 세계를 훨씬 더 정직하게 묘사한다.

 

'자본의 논리'란 자본을 낸 사람이 스스로 '나만이 주인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더불어, 노동을 하거나 자본에게 품팔이를 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논리를 깨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노동자, 소비자 등 이해당사자가 모두 자본을 나눠 냄으로써 여럿이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협동조합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을 내지 않은 종업원은 기업의 주인이 아닌가? 주인이 되려면 주식을 가져야만 하는가? 협동조합의 1인1표 역시 사실 유전유표, 무전무표의 전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닌가?

 

소액주주운동에도 나름의 의미는 있었고, 오늘날 번져가는 협동조합의 대안성, 변혁성은 대단히 뚜렷하다. 그러나 주식회사에서도 종업원의 경영권을 달성하는 것이 더 온전한 경제민주주의다. 김상봉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권한다.

 

김상봉은 '서로 주체성'의 개념을 세워온 철학자이자 학벌주의 타파운동을 벌인 사회운동가다. 진보신당의 강령을 쓰기도 했다. 진보신당의 총선 정책인 '탈탈탈' 중에는 '탈삼성'도 포함돼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철학적 기반으로부터 출발, 법학과 경제학, 경영학을 연구하며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그의 접근은 계속해서 신선한 이정표들을 세우게 되는데, 그 이정표를 거쳐 도달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1. 주식회사는 법인으로서 소유의 주체는 될 수 있지만, 소유의 대상은 될 수 없다.

2. 주주들은 배당과 주가상승을 원하다가 불만이 있으면 처분하고 떠나면 그만인, 경영실패에 대한 유한책임을 가진 존재일 뿐이다.

 

주식 소유의 여부가 운영할 권력을 독점할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개인기업은 기업주의 사적 소유재산임을 인정하더라도, 주식회사는 주인이 없으므로 종업원들이 경영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얼마 전 구미공단의 한 기업은 생산수익을 해외로 빼돌리고, 초창기 헐값에 얻은 부지를 상업용지 용도로 매각하려는 행태를 저질렀다. 그 공장에 다니는 종업원이라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 삼성의 이건희 왕회장이 독자적으로 시도한 사업들은 거의 망했으며, 재벌가문은 경영권 세습 수업을 위해 회사가 희생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소유나 권력이 유능한 경영의 원천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회사의 운영은 자본의 논리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없고, 법을 포함한 각종 제도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바는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는 회사법 개정안이다. (다만 감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수 있다.)

 

스스로를 '과학적 사회주의자'라고 여기는 논자들은 김상봉의 주장이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김상봉이 모든 기업을 협동조합으로 만들자고 했다면 그런 평가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김상봉은 분명 주식회사를 두고 논의를 전개했다. '주식회사'라는 막강하고 명확한 현실을 피하지 않은 것이다.

 

법 개정은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국회에 모여 토론하고 표결해서 끝낼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다각도의 사회운동이 이뤄낸다. 요즘 '경제민주화'가 유행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진보정당의 정책 수립->민주당의 받아안기->새누리당의 편승'이라는 과정이 있었다. 주식 소유의 여부와 별개로 종업원을 기업의 주인으로, 경영권자로 만드는 일은 1인1표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김상봉이 그린 법 조항 한 줄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새로운 숙제로 전파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