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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Columnist

진보적 제3신당 어떻게 될까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결을 달리함은 물론 보수야당 계보의 새정치민주연합과 차별화된 ‘진보적 제3신당’이 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추진하는 ‘국민모임’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제3신당이 탄력을 받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강경 우익 노선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둘째, 그럼에도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무능하며 정체되어 있어 세월호 사건, 기초연금 후퇴, 정규직 보호요건 약화, 사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등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못하다.

셋째, 소위 진보진영의 일각인 통합진보당이 정권의 해산 시도와 스스로의 혁신 실패로 무너져 내린 데다가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진보 진영 역시 분열과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평화생태복지국가' 지향하는 제3신당 취지는 '새누리당 심판',
'새정치연합 극복', 통합진보당류를 제외한 '진보 통합'
'국민모임'에는 민주당 성향 자유주의자부터 좌파까지 망라


이른바 ‘원로’들이 정치권에 고언을 보내고 훈수를 두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은 사뭇 다르다. 우선 국민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신학림 미디어오늘대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강내희 중앙대 교수 등 시민사회운동에 몸담은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명진 스님, 공선옥 소설가의 이름도 보인다.

김민웅 목사, 정지영 영화감독,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등은 민주당 등 자유주의 당파 쪽으로 기울었던 인사들이다. 반면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 노중기 한신대 교수 등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에 관여했던 진보좌파 지식인이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도 이수호, 임성규, 김영훈 등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들도 가담했다. 김세균 전 교수의 경우는 예전에 민주노동당-진보신당보다 더 좌파적인 성향의 학자로 분류되었었다. 단, 통합진보당과 유사한 민족해방파 성향의 인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요컨대 국민모임이 추진하는 ‘진보적 제3신당’은 ‘예전 진보정당+옛 민주당 스펙트럼의 개혁적 일부’인 셈이다. 다시 말해, 진보진영을 통합하는 동시에 세를 불려 새정치연합에 대적한다는 구상이다.


국민모임은 24일 ‘평화생태복지국가’를 기치로 내걸었으며, 새정치연합에 대해서는 “분열과 무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여당의 독주를 막고 국민의 생존권을 지킬 의지와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국민모임이 과거 민주노동당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을 밑그림으로 펼치면서 기존 정치인의 가세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25일에는 정동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 올랐다.


정 고문은 노무현 정부 시기까지는 민주당 계열 내 보수 성향으로 꼽혔으나, 대선 패배 이후 정책을 진보화하고 노동자 투쟁현장을 찾는 파격적 변신을 감행했다. 민주당이 보편적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는 ‘좌클릭’에도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새정치연합의 당권 경쟁이 문재인-박지원-정세균의 대결로 정체 내지는 과거 회귀의 양상을 보이면서 정동영 고문의 결단에 불을 당기고 있다. 새정치연합측은 정 고문의 탈당을 만류할 것으로 보이나 국민모임측은 정 고문이 탈당 결심을 굳혔다며 기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27일쯤 정 고문이 결심을 밝힐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 고문은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보다는 대중적 지지세가 잦아들었지만 야권에서 여전히 인지도 최상위권의 정치인이며 전북 지역 기반도 갖고 있으므로 신당으로 옮기는 즉시 대표적 정치인으로 등극할 것이다.

보수에서 진보로 변신한 정동영, 신당 참여할까
천정배 전 의원 등 물망에 올랐지만 대거 탈당은 없을 듯
초점은 새정치연합보다는 우선 정의당 쪽으로

정 고문 외에는 천정배 전 의원이 물망에 오른다. 비노 계열이면서 민주당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인 정치인들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신당에 가담할 공산이 높다는 뜻이다. 진보적이면서도 친노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은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잔류할 것이다.


특히 진보 성향으로 꼽히는 비례대표, 이를테면 최민희, 은수미, 장하나 의원 등도 탈당할 가능성은 일단 미미하다. 비례대표 의원은 탈당 즉시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직 의원 가운데 신당을 택할 인사는 흔치 않을 것 같다.


과거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지만 민주당과의 합당이나 그간 안철수 의원이 선보인 보수적 노선에 불만을 품은 인사들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이들이 아직은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당에 몸담더라도 당장에는 파괴력을 갖기는 힘들다.

정동영 고문에 쏠리는 눈총도 있다. 새정치연합에서 친노 세력, 보수 세력에게 밀리면서 대선 후보직을 따내기 어려워지자 독자 행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힌편 제3신당에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의 대거 합류는 것이 어려워 보이면서 초점은 자연히 정의당의 행보로 옮겨진다. 정동영 고문이 노인폄하발언 논란 등 과거 전력으로 인해 최근의 정책적 진보화에도 불구 국민적으로 여전히 식상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므로 이를 중화할 수 있는 정의당의 진로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측면도 있다.

정의당은 국민참여당 출신(유시민계)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탓에 전통적인 진보정당과는 성격이 다르며, 동시에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 출신들을 아우르고 있어서 제3신당과 가장 비슷한 정당으로 꼽힌다. 당세는 작지만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박원석과 같은 스타 정치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정의당은 이렇다 할 반응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그동안 당원게시판을 통해 타당과의 통합보다는 독자 노선에 무게를 두고 있는 당내 여론이 표출된 바 있으므로 순순히 통합에 응할 것 같지는 않다. 제3신당과의 관계를 두고 당내 논쟁에 돌입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의당이 제3신당과 따로 떨어져 걷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새누리당이 싫지만 그렇다고 새정치연합을 밀어줄 수는 없다’는 여론이 제3신당으로 쏠리면 진보정당들이 모두 변두리로 밀려나갈 수 있고,
 정의당으로서는 이런 여건을 외면할 수 없다.

최근 정의당 당원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녹색당과의 통합에 관해 응답자의 7, 8할이 찬성했는데, 이들 정당과도 통합하는 조건으로 제3신당 참여에 찬성하는 여론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제3신당 창당, 진보정당들의 잠재력을 앗아갈 가능성 있다
정의당은 독자노선 가닥 잡아도 제3신당 외면하기 힘들어
노동당 합류 희박하나 당내 '재편 논의'에 영향 끼칠지도 
 

정동영 합류 문제도 정의당에게 관건이다. 정동영과의 제휴는 가능하더라도, 정의당이 정동영을 신당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편 노동당이나 녹색당은 제3신당 결합 확률이 희박하다. 노동당 당원들은 국민모임 인사들을 곧잘 ‘원로들의 철 지난 합창’ 정도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녹색당과 국민모임은 아예 서로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다. 노동당과 녹색당의 독자노선이 매우 또렷한 데다가 국민모임 입장에서도 당세가 작은 쪽에 무리하게 동참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다만 노동당 내부에서 정의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재편파’가 통합 대상을 제3신당으로까지 넓히느냐가 변수로 남아 있다. 김세균, 노중기, 조돈문 같은 진보좌파 지식인들까지 제3신당에 이름을 올린 마당에 노동당 역시 충격과 소외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다.


제3신당은 새정치연합의 이탈을 얼마나 이끌어낼 것이냐, 새정치연합 이탈 세력과 정의당 등 양쪽을 아우를 수 있을 것이냐, 새정치연합 이탈세력이 없을 경우 통합진보당을 뺀 진보세력을 전반적으로 통합할 것이냐,에 현실정치세력으로서의 성공 요건이 달려 있다.

그러나 제3신당이 중장기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제3신당의 목적은 새정치연합에 대적하는 것인 동시에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것이다. 대체한다는 것은 새정치연합을 누르고 제1야당으로 올라선다는 의미지만, 여기에는 통합야당에서 안정된 지위를 차지할 경우 새정치연합과 통합할 수도 있다는 복선이 숨겨져 있다.

민주당을 제치고 지지율 2위를 달리던 안철수신당(새정치연합)도 역사적으로 구축된 민주당의 구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통합 전철을 밟았었다.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하고 통합 직후 안철수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으나 이제는 ‘도로 민주당’이며 안 의원은 대권은 물론 당권을 얻기도 버거워졌다.

제3신당이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다 해도 새정치연합을 뿌리치기는 난망하다. 오히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새정치연합과 통합하면서 확보할 지분이, 그러니까 통합을 향한 유혹이 더 커질 것이다. 비록 나중의 일일지라도 제3신당은 독자노선과 통합노선의 갈등을 잠재하고 있다.

제3신당은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제2당 어렵다면 생존해서 제3당으로 안착할 길 찾아야


2016년 총선에서 제3신당은 새정치연합과 전면전을 펼칠 수 없다. 새누리당이 약한 호남권에서는 정면 승부가 벌어지겠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 양측의 전면전은 새누리당의 반사이득으로 직결된다.

2004년 총선 당시의 민주노동당만큼 독자성을 가진다면 모르겠지만, 과연 제3신당이 전면전에 필요한 뱃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기였으며 탄핵역풍으로 새누리당의 몫이 현격히 줄었던 2004년과는 달리 2016년 총선은 정권교체의 승부처로 통할 것이다.

그래서 제3신당과 새정치연합의 비호남권 후보단일화는 불가피하다. 후보단일화가 당대당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이뤄지면 그만큼 양당의 차별화가 희석되는 반대 급부가 있다. 국민들 눈에는 ‘다른 당이지만 같은 세력’ 혹은 ‘같은 세력이지만 당이 다를 뿐’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경유하는 동안 통합을 비켜갈 수 있을까. 

제3신당이 새정치연합을 꺾고 제2당에 올라서든 아니면 유리한 위치에서 새정치연합과 통합을 하든, 이는 새정치연합 인사들이 대거 이탈해 제3신당에 참여하는 사건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대거 이탈 역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제3신당은 대성공보다는 생존해서 안정적으로 제3당을 구성하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이 맞다. 이 경우는 정의당 등과의 통합이 필수적이다. 제3신당 인사들이 현실 파악 능력과 강한 돌파력, 힘을 아끼고 집중하는 꾀를 가졌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