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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먼저다

사회통합 바란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성찰하라 (시사IN)

“젊은 친구들이 뭐라는지 아나? 폭동을 바란대”

시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노동부에 떠밀고 경제단체의 행사나 지원하려 한다. 불안정 노동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

 

  조회수 : 20,011  |  김수민 (경북 구미시의회 의원)

 

올 연말 의회 예산심사에서도 한국노총이나 경총으로 지원되는 행사 및 외유성 예산이 최대 쟁점이었다. 예산특위에는 노동자 전반과 무관한 이런 사업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온 의원이 많았다. 협의 끝에 도마에 오른 9개 항목 가운데 5개를 전액 삭감하기까지, 한국노총과 인연이 있는 의원들과 논쟁을 벌였다. 한 의원은 “이렇게 삭감하면 부서의 존재가치가 있겠느냐. 아예 노동복지과 예산을 공무원 인건비 빼고 모두 삭감해버리자”라며 벼랑 끝 전술을 폈다. 나는 되받았다. “제가 얼마 전 조례를 발의할 때 노동복지과는 ‘비정규직 지원은 고용노동부와의 업무 중복’이라며 기피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행사는 왜 합니까? 그것도 노동부에서 하라고 합시다.”

    

지난 11월 제정한 ‘구미시 비정규직 권리 보호 및 지원 조례’는 지방자치에서 어떤 노동정책을 펴야 할지 준비가 빈약했던 내가 시립노인요양병원 간병사 실직 사태, 환경미화업무 외주화 반대 싸움 등을 겪으며 별렀던 고민과 분노를 작게나마 담았다.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를 대하는 사회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고, 다른 의원들의 엄호도 꽤 받았다. 그러나 집행부가 마지막 걸림돌이었다. ‘고용노동부가 할 일’이라던 담당부서는 시행범위를 공공 부문으로 국한하고 민간 부문을 배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센터를 설립해 비정규직 지원사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각종 시책에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및 정규직화 우수 업체를 우대하는 방안을 저버릴 수 없었다.

 

보수의 가치는 사회통합이라는데…

 

조례가 통과되고 난 뒤 인사 온 공무원에게 “신규 사업하기 힘든 거 압니다. 첫 단계로 공공 부문이라도 제대로 챙기시죠”라고 얘기했더니 즉각 “지금도 공공 부문은 잘하고 있다”라는 당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 직후 이게 빈말임이 드러났다. 도서관의 어느 분관에서 일하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80만원대 월급을 받고 있으며, 사용자가 일부러 계약 기간을 6개월씩 끊는 바람에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는 제보를 받았다.

 

구미시 시설공단이 고용노동부의 컨설팅에 따라 간접고용직을 직접고용직으로 전환한다는 소식도 행정사무 감사 과정에서 뒤늦게 알았다. 시가 최소한의 마인드라도 갖췄다면 다른 지역의 몇몇 단체장이 하듯 이를 적극 홍보했을 테다. 이런 판국이니 고작 사용자 단체나 어용노조가 여는 행사를 주요 업무로 삼는 행정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당선자를 포함한 대선 주자들까지 모두 공공 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채택했지만, 아직 시의 행정은 ‘행사장’에 눌러앉아 있다.

 

여태껏 불안정 노동 문제를 등한시한 진보 진영을 향한 (내부) 비판은 많았는데, 이른바 보수 세력도 이제 통감하고 성찰할 때다. 보수의 기치는 사회통합이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가 이등 시민, 유령인간으로 꺼져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통합의 깃발이 나부낄 수 있으며, 여기서 정치를 하고 행정을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차별과 배제로 만든 잔칫상이 당장에 먹기 편할지는 몰라도, 뒤집히고 깨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런데도 구미시정은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 인구를 외면하며 공동체의 와해를 수수방관했다. 

 

친한 아저씨 중에 자영업을 하다 쉰 살이 넘어 최근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분이 있다. 작업장 동료 대부분도 비정규직이다. “젊은 친구들이랑 술 한잔 하는데 뭐라 그러는지 아나? ‘폭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대. 이유도 목적도 없어. 그냥 이놈의 세상 확 뒤집히라는 거야.” 파시즘이란 제도권 정치의 폭압이 극대화되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법이다. 불안을 틈타 ‘안정’을 마케팅해온 보수파, ‘기업하기 좋은 도시’에 노동의 조건과 권리를 파묻어버린 자본가와 관료, 정치인들은 새겨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