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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소수자

복지는 아무나 하나

개나 걸이나 '복지병'을 운운하던 몇년전이 참 격세지감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근래에도 그걸 운운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원로 교육인이 "복지를 실시한 유럽은 다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서브프라임모기지부터 해서 경제위기가 왔는데 그게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습니까? 제가 신문을 잘못 읽었습니까?"라고 물어보려다 말았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을 비롯해 '복지' 담론이 하나의 유행이 된 느낌입니다. 근래에는 박근혜 의원과 정동영 의원도 선두에 서려고 하더군요.

만일 박근혜 의원이 정권을 잡아 작심하고 복지를 편다면, 그것은 독일의 비스마르크 정권과 비슷한 차원일 것입니다. 보수 주도형 복지체제죠. 하지만 저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박 의원이 복지 담론을 펴는 건 자신이 집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돌아봐도 압니다. 대통령후보 시절 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욱 시장만능주의적인, 한국의 대처를 방불케하는 논의를 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 확정되고 나서 그 부유성에 대한 거부감과 도덕성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로소 박 의원은 차별화전략을 썼습니다. 박 의원에게는 복지에 관한 한 이렇다 할 철학이 없습니다. '다 같이 잘먹었으면 좋겠다'는 국민 평균의 감수성에 충실할 뿐이죠. 복지사회로 이행하는 실천방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줄푸세' 운운하면서 감세를 주장한 장본인이 무슨 수로? 아마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MB정권과 비슷한 수준의 정책을 폈을 것이고, 정권을 잡지 못한 이명박 쪽에서 되레 복지 담론을 폈을 겁니다. 정동영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여당일 적 무엇을 했나요? 2002년 대선 시즌에서는 중도개혁파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극좌적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앞장서서 실용주의를 주창하였죠. 최근 '반성문'을 제출하지만 아직까지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진보개혁세력 일각을 보면서도 저는 의아함을 가집니다. 유럽식 복지국가 노선을 이야기합니다. 하기야 요즘은 보수층에서도 '유럽'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진보개혁세력은 '증세' 강령이나 보편적 복지 철학을 뚜렷하게 견지하고는 있습니다. 다만 우려스러운 건 유럽식 복지국가노선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로 이행하는 전략은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유럽식 복지국가의 형성 과정을 대략 살펴보지요. 흔히 세금을 올려 사람에게 투자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성숙한 문화와 정치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보지요. 특수한 사례를 빼자면 복지가 무르익은 국가는 자본주의 모순에 의해 발생한 투쟁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쉽게 말해서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싸움입니다. 게다가 당시의 흐름은 러시아혁명에 얽혀 있었습니다. 러시아혁명은 우리나라의 3.1운동에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을 주었죠. 북유럽이나 서유럽에서도 사회주의정치세력이 등장했고, 이들은 노동계급운동과 제도권에서의 정당활동에 양 중심축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국보다는) 성숙하고 공동체주의적인 기풍을 가진 자본가계급이 '혁명을 당할 바엔 타협을 하자'면서 만들어진 게 복지체제입니다. 국민의식이 발달해 그냥 선거로 증세와 재분배를 결정한 게 아니라는 거죠.

유럽 중에서도 북유럽은 서유럽보다 세율이 더 높습니다. 여기에도 당연히 과정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경우 발렌베리 가문이 국가의 경제력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고, 심지어 경영 세습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혹해 삼성재벌측에서 스웨덴을 잠시 공부하기도 하였다죠? 하지만 세금을 많이 내야 하므로, 한국의 재벌이 발렌베리를 벤치마킹하긴 어려울 겁니다. 스웨덴은 대기업중심체제이고, 동일노동-동일임금 정책이 관철되면서 약한 중소기업이 망하고 그 노동자들은 대기업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반대급부가 높은 세율입니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대기업위주로 가기 어렵고 중견기업 육성으로 가야 하기에, 스웨덴처럼 높은 세율을 부유층에게 매기기는 힘들 겁니다. 그래도, 프랑스, 독일처럼 가려고 해도 갈 길이 멉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의원이 복지정치를 펼 수 없다고 감히 장담하는 것입니다.

요즘 진보개혁진영 일각에서 이름도 외우기 힘든 여러 조직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쪽은 야권을 포괄한 빅텐트론을 펴고 있고, 어떤 쪽에서는 민주당을 제외한 야당들의 연합정당 구성을 이야기합니다. 양쪽의 공통점이라면 한나라당에 대응하는 좀 더 큰 정치세력을 만들자는 것이죠. 그리고 기존의 민주화담론에 보편적 복지 담론을 결합한 형태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까 살펴본 유럽복지국가의 사례를 보자면, 진보와 보수를 명확하게 가를 수 있는 기준은 '노동'에서 나옵니다. '복지'도 보수에서 주장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선별적 복지가 주로 보수파에서 나오는 의견이라면, 진보는 보편적 복지론을 폅니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도 노동계급운동 같은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 없이는 힘듭니다. 몇몇 복지정책이 보편적으로 시행된다 한들, 위로부터, 또는 진보적이라고 해도 정치나 운동의 엘리트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라면 지극히 한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학교무상급식'을 볼까요. 강력하게 조직된 노동운동이 요구한다면 더 빨리, 더 제대로 실시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노조측이 임금협상에서 자본가측에게 "임금협상안을 양보하겠다. 대신 노사 공동으로 정부에 무상급식을 요구하자"고 할 여지도 충분히 있는 거지요.

그런데 현재의 복지 담론에는 '노동'이 쏙 빠져 있고, 박근혜씨나 홍준표씨 등은 나름대로 자신이 복지지향적이라고 착각하며, 진보개혁세력도 정책적 진일보보다는 세력연합부터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일부 진보세력이 이야기하는 연합논의는 유럽에서 나타난 진보좌파정당이 아니라, 미국식 민주당 모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은 '진보'라고 하기는 무리입니다. 제 기억에 따르면 고등학교 교과서 혹은 문제지에도 미국 정치구도는 '중도' 대 '보수'라고 나옵니다.

미국 민주당은 태생적으로 진보정당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계급적이거나 사회경제적인 기준이 아니라, '어느 종교를 믿는가', '어느 나라 출신인가', '무슨 영업을 하는가?', '어느 지역에 사는가' 등을 두고 각축해왔던 것입니다. 유럽 정치와는 다른 미국의 구도를 두고 '미국 예외주의' 담론이 연구되기도 했었죠. 미국 민주당이 상대적 진보색을 띠게 된 건 루즈벨트 집권기, 즉 뉴딜시대부터였습니다. '잊혀진 자들을 위한다'는 모토로 뉴딜정책은 완전고용과 사회보장을 지향하였습니다. 노동운동을 진압하려는 경찰이 정부에 의해 진압당하는 인상적인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식 뉴딜정책은 자본주의의 극복보다는 그래도 '개선 및 유지'에 가까웠고, 유럽식 사민주의보다는 미국식 자유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의 양대노총 AFL과 CIO도 민주당의 지지세력으로 분류되지만, 능동적으로 노조가 정치세력을 형성했던 유럽과는 달리, 양당제 구도에서 민주당을 택해 기울어진 수준입니다. 미국 노조의 이러한 정치방침은 제3의 진보정당이 탄생하는 출구를 막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결국 미국식 정치구도는 유럽에 비해 수준이 낮은 미국식 복지모델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 속에, 때로는 공화당에 의해 복지가 후퇴하고, 때로는 민주당 스스로가 우경화되어 복지를 축소하기도 하는 사태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요즘 참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나 복지를 말한다고는 하지만, 유럽식 복지국가노선을 목표로 설정해두고 그 과정은 미국식으로 밟아나가려는 아이러니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복지사회가 펴는 정책 선례만을 참고할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형성되어왔던 과정과 역사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 스웨덴 노총 LO의 역사만 살펴봐도, 어설프게 복지담론에 편승하는 보수파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내뺄 것 같은데요. 진보개혁진영도 다시 숙고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민주의가 '개량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민주의는 현재 한국의 진보개혁진영보다 더 좌파적인 운동가, 정치인들이 이룩한 것입니다.